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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May 23. 2023

시가 머무는 곳

산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목재 하러 가시던 날


할머니를 잃으신 아버지




그 멀고 먼 눈길을 헤치며


장자인 아버지께 부고가 도착하고


아버의 설음은


온 산동네를 삼키며 흔들었습니다




나무와 함께 쓰러진 아버지


휘청이는 설음은


산사태로 터지고 줄달음치며


산을 넘고 고개를 넘어


할머니 마지막 가는 길


배웅하러 달려왔습니다




가슴을 치던 손으로


구들장을 두드리면서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고


우시던 나의 아버지




그 어려웠던 약진시기에도


큰 아들 밥상엔


흰 밥을 얹어 주시려던


마를 새 없던 할머니의 손


가을걷이 끝나면


또다시 갈퀴가 되어


두 번째 가을걷이에 나서고


그런 어머니를 말리지 못한


아들의 설음은 통곡으로 울립니다




산길을 따라 가시는 어머니


그 뒤로 구불구불  흐르는 서러움들이


흰 눈처럼 쌓이다


달구지 바퀴밑에서 꽁꽁 다져집니다




억척같은 장정들이 얼어서 갈라 터진 땅을 열고


할머니를 산의 품으로 보내드릴 때


아버지는 거기에 말뚝처럼 굳어졌습니다




그날부터 산이 되신 아버지


마음 한구석에 하늘 같은 어머니를 모시고


차갑게 언 산속에 누워계실 어머니를


꿈길에 발 시리다고 찾아오신


어머니를


가슴에 품고


슬픈 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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