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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Oct 30. 2023

시가 머무는 곳

노을을 삼킨 그녀

그해 추석달은 분홍빛을 가득 품은 크고 둥근 해를 닮았었다

서산에 지는 저녁노을을 마주 보고


서로를 닮은 색을 품고 싶었던


달과 해의 사이


가윗날 하늘에


진분홍빛이 물든 아름답고 아픈 엽서를


무한정 펼쳐내고


홀연히


다시 못 올 강을 건너


하늘을 날아 오른 그런 널


준비 없이 놓쳐버린 빈 손에


갈고리 같은 비수 하나씩 쥐워주면서


사정없이 가슴을 찌르게 하고


저물어 가는 붉은 노을의 여울을 삼킨 달은


모두를


달 속으


붉게 타는 노을 속으로 이끌어간다


사라진 노을 끝자락을 놓쳐버리고


달이 수면에 떨어져 흐름을 멈추자


둥둥 떠 흘러가는 창백한 얼굴 하나


굴절된 손 사이로 건져 올려도 부서져 내리는


차가운 달빛의 눈물


그 흐른 눈물을


죄인처럼 마시게 하고


네가 거닐었던 세상 어두운 뒤골목에


그 발자취 따라 서성이다


너의 귓속으로 들어가 퍼덕이는 소리의 날개로


여러 심장 갈갈 리 찢어놓고


네 자취를 가슴마다에 조각조각 끼워 넣고 떠나버린 너


너의 환한 얼굴 뒤에 숨겨진


감추려 애쓰던 증폭된 너의 아픔이 예리한 비수가 되어


세상을 두쪽으로 갈라놓아


모든 빛을 삼킨 채


검은 들녘으로 던져버린


그 짧아서 안타까운 찰나


그 뒤편에는 한동안 길고 긴 암흑만 가득히 죽음처럼 고요하게


우리의 숨통을 짓누르는


늦은 시간


너를 놓을 수 없었던 가여운


너의 맑은 웃음이 동화처럼 피어나는 환영을 끌어안고


울고 웃던 그 여인의 눈에 비낀


눈부신 너의 모습으로 행복해하던 그 순간순간들이


햇빛에 투시되어


구멍 뚫린 가슴 사이로 바람처럼 사라진 심장 한 조각


쓸어 쓸어 다 닳아 떨어진 가슴


흩어져 가는 네 모습 모아보려고


야윈 손가락 사이로 부서져가는 삶의 심장부


그 여인의 세상은 어둡고 추운 동굴이 되었다


해마다 달이 차고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저 푸른 하늘에


능금알처럼 붉어가는 저녁노을을 무심히 한 모금씩 마시고 있는


황홀한 모습으로 젖어들면


까무룩이 노을을 삼키는 그녀,


그렇게 노을빛으로 투영된 그녀가


우리의 마음을 긋고


가윗날 하늘로 아득히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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