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아

by 필마담

아이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유난히 발이 찍힌 사진이 많다. 렌즈를 아래로 향하고 "띠띠"거리면서 세상을 담고 있다.

이 사진에서 눈에 띄었던 건 아이의 발이 아니었다. 내 화장품 가방이었다. 아이는 저 가방을 "어푸푸"라고 부른다. 엄마가 화장품 바르는 모습을 묘사한 단어다.


아이는 종종 저 가방을 열어본다. 가방 안에는 작은 샘플용 화장품들이 모여있다. 다수의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이래저래 얻은 샘플용 화장품을 버리지 않고 모아 두고 있었다.

아이는 가방을 열고 화장품을 꺼내고(정확히는 바닥에 쏟고) 하나씩 하나씩 발라본다. 그 모습이 마냥 귀여워 보이지 않았다. 화장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였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선생님 말씀으로는, 요즘 어린이 교육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들지 않는 것이란다. 그래서 놀이에서도 남아의 역할, 여아의 역할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자도 아이를 업고 달래며 설거지도 한다. 나는 이런 교육방식에 찬성을 표했다. 하지만, 화장품을 바르는 아이를 보며 인상 쓰는 나는 어떤가. 파우더를 바르고 립스틱을 바라는 모습을 마냥 예쁘게 보지 않는다. 참 이중적이다.

시대별로 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다를 것이다. 나도 "라떼는~"이 어울리는 나이다 보니 아이의 물건을 살 때면 소위 남아색이라는 걸 사게 된다. 색상을 고를 일이 생기면 분홍색보다는 파란색을 선택하게 된다.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의 공식을 배우던 세대답게.

아이는 단지 엄마가 좋아서 엄마를 따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아이가 재미로 찍은 사진에 엄마는 진지함이 담긴 글을 더한다.

지금 이 글은 나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성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불편하고 불만을 가졌던 내가 아이에게도 ‘남아는 ~야 한다’라는 공식을 들이대고 있다니.. 옳지 않다.


아마 아이는 또다시 화장품을 바를 것이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그래도 괜찮아' 아이의 행동에 답을 두지 않으며 존중하겠다는 다짐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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