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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월드 Jul 22. 2024

귀하에게

JYSY

새벽에 빗소리를 들었는데 실컷 자고 일어나니 비가 그쳐 있습니다.

장마가 소강상태에 접어 들었는데 무덥지 않은 걸 보니 곧 또 한바탕 내릴 건가 봅니다.

이 틈을 난 기다렸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의무가 없는 날에 푹 잔 잠 덕분에

나무늘보 같이 느릿느릿 커피 앞에 안착해 눈을 뜹니다.

꿈뻑꿈뻑 세상 돌아가는 일과 무관한 하루를 시작합니다.

45도 각으로 상체를 접고 쪼르륵 커피를 빨며

이 땅에 사는 팔자 좋은 인간 중 한 명이 된 것에

흡족해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귀하를 생각합니다.

말똥한 정신이 돌아오기 전에 세상과 차단한 나의 시간에 귀하만 생각할 겁니다.

이젠 어느 곳에라도 귀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도통 알 수 없기에 나의 세상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몽롱하게 선명해진 귀하와 나는 함께 있습니다.

황당한 마음이 든 때가 있었습니다.

시간을 샀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귀하라는 사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어둔 창문으로 간밤에 들려온 빗소리에 생각나는 사람이 귀하라는 사실을 나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성이 들어오기 전에 먼저 자리잡는 귀하를

세상 돌아가는 일과 상관없는 나의 시간에 초대합니다.

쓰다보니 벌써 정신이 또렷해져 버렸습니다.

시커매진 구름 밑으로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니 다시 비가 내리려나 봅니다.

그럼 미련없이 일어나

귀하를 생각할 다음 틈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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