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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월드 Jul 09. 2024

한수진에 대해서

나의 이쁜 오해영.

그 애에 대해서 말해야겠다.

이름은 한수진

이 세상에 한수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는 널렸을 것이기에 실명을 감추지 않는다.

그 애는 예뻤다.

그냥 이쁜 수준이 아니라 독보적으로 예뻤다.

나와 한수진은 초딩 때 학원에서 처음 만난 이래로

중, 고등학교를 같이 나왔다.

우리가 청소년이던 그 시절에

<반올림>이라는 청소년드라마가 핫했는데

난 캐스팅디렉터가 우리 동네에 와서 그 애를 어서 캐스팅하지 않고 뭐하고 있나 생각을 했다.

처음 만난 우린 단숨에 친해져 버렸다.

그때 내 얼굴과 더불어 내 사춘기를 점령해버린 여드름 때문에 자신감은 없고 열등감만 있는 딱한 청소년이었기에

예쁜 애들은 어디 섬 야자나무 같은 데 싹다 갖다 묶어 놔야 된다는(착하지도 못했다.)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한수진을 본 순간 그냥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 애였다.

그렇게 친해진 우리는 버디버디 아이디(천리안이 아닌 게 어디여)로 절친 중에 1번임을 강조하는 닉네임을 서로에게 지정해주고 

옷도 잘 입는 걔가 입는 옷은 다 따라 입고

걔와 붙어 다니는게 무슨 훈장이라도 된 양

"내가 얘 친구예요"라고 동네방네 내적자랑을 했다. 그런 소녀시절이었다.


그렇게 중딩이 된 우린 2학년에서 3학년 넘어가는 시점에, 반이 갈라졌고 발 맞춘 듯 관계도 찢어져 서로의 절친 자리를 다른 이로 대체했다.

동등한 입장인 척 해버렸다.

그녀가 본인의 절친자리를 놓고 대기표를 들고 선 애들 중에 골라 대체했다면 내 옆자리는 그냥 대체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것들이 그 시절엔 왜 그리도 거대해 보였는지

난 끝난 교우관계의 원인이 내 외모에 있다고 생각해 매일밤 거울 앞에서 호르몬에 대적하기엔 효용가치가 턱없이 부족한 여드름 치료제와 사투를 벌이며 조상탓을 했고 불효를 했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 애는 무리의 중심에서 그렇지 않아도 예쁜 이목구비에 화장을 얹어 나날이 리즈를 갱신했고 화려한 청소년 시절을 날았다.

쓰고 나니 좀 짠한 내 청소년기는 이후 다른

이런저런 재미로 무탈했고 나는 탈선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 애의 이름이 오해영이 아니고 내 이름도 오해영이 아니라 우린 평범하게 각자로 멀어져 우연히 고등학교 어느 화장실에서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으며 서로를 지나칠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나간 추억이 된 나의 이쁜 오해영을

금 내가 추억하고 끄적이는건

아주 가끔씩 간헐적으로 그 애가 꿈에 나타나는 까닭에

해서 오늘 아침도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한 개도 안 늙고 주름 하나 없이 간 청소년의 모습으로. 참내.

잠재의식에 남아 있던 그 애가 이렇게 잊을 만하면 한번씩 꿈으로 발현되는 것을 보니

그 시절의 내 이상과 욕망과 좌절과 슬픔이 결코 작지는 않았나 보다 싶은 것이다.


드라마 <또 오해영>에 이런 대사가 있다.


"만약 이쁜 오해영과 바꿔 살라면 그렇게 하겠냐고"

여기서 그냥 해영이는

그건 아니라고 자신이 여기서 좀더 나아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나에게 묻는다.

"넌 한수진과 바꿔살 기회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니?"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때때로?"


그래서 난 더 살아 보겠다.

마음에 걸리는 독보적인 어떤 것이 있어 포기할 수 없는 내 인생을 향해.

그나저나

그 앤 어떻게 살라나,

결혼은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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