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꽃들이 어제보다 그늘을 조금 더 넓힌다.

--오규원의 <날이미지 시>--2

by 백도바다

오규원(1941~2007) 시인은, 보통 사람이 호흡하는 산소의 20%밖에 호흡하지 못하는 '만성폐쇄성폐질환'

을 앓다 2007년 겨울에 타계했다. 임종 직전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라는 마지막 문장을 손가락으로 제자 손바닥에 써서 남겼다.


비가와도 이제는--오 규 원



비가 온다 어제도 왔다

비가 와도 이제는 슬프지 않다

슬픈것은 슬픔도 주지 못하고

제 혼자 내리는 비뿐이다.


슬프지도 않은 비 속으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비 속에서

우산으로 비가 오지 않는 세계를

받쳐들고

오, 그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비가 온다

슬프지도 않은 비

제 혼자 슬픈 비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비에 젖고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오늘도

假面도 없이

맨 얼굴로

비 오는 세계에 참가한다.


어느 것이 假面인가

슬프지도 않은 비

제 혼자 슬픈 비


비가 와도 젖은 자는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나를 젖게 해 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 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 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 가다가 언덕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魚族은 강을 거슬러 올라

하늘이 닿은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번뇌, 날짐승 이런 이름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여름에는 저녁을 -- 오규원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 위에는 멍석

멍석 위에는

환한 달빛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는다


마을도

달빛에 잠기고

밥상도

달빛에 잠기고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밥그릇 안에까지

가득 차는 달빛

아! 달빛을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날이미지의 시론--오규원



* 80년대 후반부터 나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고의 흔적은 그 무렵 쓴 여러 작품에도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본격화된 것은 90년대 초부터이다. 나는 나(주체) 중심의 관점을 버리고, 시적 수사도 은유적 언어체계를 주변부로 돌리고 환유적 언어체계를 중심부에 놓았다. 그리고 관념을 배제하고 언어가 존재의 현상 그 자체가 되도록 했다. 그리고 현상 그 자체가 된 언어를, 즉 사변화되거나 개념화되기 전의 현상화된 언어를 ‘날이미지’라고 하고, 날이미지로 된 시를 ‘날이미지시’라고 이름 붙였다.


<날이미지와 시 / 오규원 / 문학과지성사 / 2005>


* 내 시를 읽는 다수의 독자가 가장 당황하는 점은 시의 투명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태까지의 애매한, 불투명한 시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투명성 자체가 엄청난 억압이 되는 것이지요. 즉, 그것이 추상적이든 피상적이든 간에 의미로 점철되어 있는 시에 익숙한 사람에게 해석을 주는 시구가 없는, 살아 있는 현상만을 제시하는 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까 해석하지 않아도 되는, 직관에 의해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 바로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명시적인, 누군가가 정해주는 그런 해답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지의 폭죽인 봄의 꽃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어도 ‘봄의 꽃들이 어제보다 그늘을 조금 더 넓힌다’는 사실적 현상은 이해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앞의 것은 이해의 통로가 확정되어 있고, 그러니까 의미가 정해져 있고, 뒤의 것은 그 의미가 해석하기 나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늘이 조금 더 넓어져 있는’ 현상의 근거가 여럿이고, 또 흔히 볼 수 있는 사실적 현상이며 지금까지의 시가 선택하지 않은 의미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 속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읽어내는 데에 곤란을 느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누군가가 정해준 의미가 없으면 눈앞의 세계까지도 전혀 볼 수 없는 형편인 것입니다. 내 시는 이러한 투명한 현상을 나타내는 세계이지요. 모든 존재는 존재의 현상으로 스스로를 말하지요. 그 스스로 말하는 것을 관념이나 사변으로 왜곡하지 않고 옮겨놓을수록 진실에 접근한다고 보아야지요.


<날이미지의 시 / 한국현대대표시론 / 태학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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