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잎의 여자> 이 시만 기억하면 곤란합니다.

-- 오규원의 <날이미지 시>--3

by 백도바다

이 시는 너무나 유명하여 꼭 소개 하여야 할 듯....


오규원의 <한 잎의 여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오규원



씨앗은 씨방에

넣어 보관하고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있는 바람은

잔디 위에 내려놓고
밤에 볼 꿈은

새벽 2시쯤에 놓아두고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기는 일이다


가을은 가을텃밭에

묻어 놓고
구름은 말려서

하늘 높이 올려놓고
몇송이 코스모스를

길가에 계속 피게 해놓고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다가오는 겨울이

섭섭하지 않도록
하루 한 걸음씩 하루 한 걸음씩

마중가는 일이다


문장” 대표를 지낸 오규원은 초기시에서는 이른바 해사적(解辭的) 기법과 기지에 찬 언어 구사를 통해 독특한 내면 공간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이후 기존 형식의 파괴에 더욱 힘써 자본주의 소비 문화의 타락상과 허구성을 방법론적으로 비판하였다. ‘현대성의 무의식’이라 할 수 있는 일상성의 세계를 아이러니 정신과 패러디 수법으로 비춤으로써 산업사회의 세속적이고 속악한 소시민적 삶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비판하였다. 그가 스스로 ‘인용적 묘사’라고 명명한 기법에 바탕을 둔 이른바 광고시는 대표적인 예이다. 언어와 이미지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시 쓰기 방식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와 실험의식을 보여준 시인으로 평가된다. – 한국현대문학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출처]



물물과 나--오규원



7월 31일이 가고 다음날인

7월 32일이 왔다

7월 32일이 와서는 가지 않고

족두리꽃이 피고

그 다음날인 33일이 오고

와서는 가지 않고

두릅나무에 꽃이 피고

34일, 35일이 이어서 왔지만

사람의 집에는

머물 곳이 없었다

나는 7월 32일을 자귀나무 속에 묻었다

그 다음날과 다음날을 등나무 밑에

배롱나무 꽃 속에

남천에

쪽박새 울음 속에 묻었다



오후와 아이들--오규원



한 아이가 공기의 속을 파며 걷고 있다

한 아이가 공기의 속을 열며 걷고 있다

한 아이가 공기의 속에서 두 눈을 번쩍 뜨고 있다

한 아이가 공기의 속에서 우뚝 멈추어 서고 있다

한 아이가 공기의 속에서 문득 돌아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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