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며, 착하게 살면 손해를 보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세상은 착한 사람들로 가득 차기를 바란다. 어쩌자는 말인가? 착하게 사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일까? 타인이 나의 시간과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묵인하는 것은 착한 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현인들의 말과 글을 통해 해답을 찾아보자.
먼저 한 장의 그림을 살펴보자. 예술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라파엘로에게 프레스코화 제작을 의뢰한다. 라파엘로는 1501년부터 제작에 착수하여, ‘아테네 학당’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완성한다. 이 작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고 사색하고, 무언가에 열중하는 모습이 담겨있는데, 등장인물이 가히 인문학의 드림 팀이라 할만하다. 센터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차지한다. 플라톤의 옆에서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는 소크라테스이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 중에 장군의 복장을 한 이가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추측도 있다. 스토어 학파의 창시자 제논 외에도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모습도 보인다. 왼쪽 하단에는 손으로 들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두꺼운 책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있다. 중앙부 계단에 자유로운 포즈로 널브러져 있는 이는 견유학파의 대표 철학자 디오게네스이다. 왕이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었을 때도 저 자세로 ‘햇빛을 가리니 그저 비켜만 주시오’라고 말했을 것 같다.
‘아테네 학당’을 볼 때마다 저 들에게 단 십 분이라도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언어의 제약은 번역 어플이 어느 정도 해결해 주겠지만, 저 들을 다시 만나려면 시간을 초월해야 한다. 타임머신의 발명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유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 소크라테스와 식사만 할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걸겠다고 했는데, 집념이 강한 그가 소원을 꼭 이루었기를 바란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원한다면 살아있는 석학들의 강연을 보거나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밤하늘에 별처럼 넓게 뿌려져 있는 위대한 생각들을 하나의 플랫폼에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의 EBS에서 21세기 판 아테네 학당을 재현해 냈다.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라는 제목 아래 세계적인 석학들을 한데 모았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 30개국이 넘는 나라에 출간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 등이 우선 눈에 띈다. 이 들 외에도 세계 최고 권위 대학의 교수들과, 노벨상 수상자들이 EBS 아래 모인 것이다.
강연의 주제는 아테네 학당보다 스펙트럼이 넓다. 철학, 사회, 과학, 수학, 인공지능, 젠더, 천문학, 예술 등 너무나 다양하다. 당신이 궁금해할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당대 최고의 권위자를 통해, 수업료 한 푼 내지 않고 시청 가능하다.
이 프로그램의 방영 소식이 국내에 알려지자 EBS가 수신료의 가치 이상을 구현한다는 네티즌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위대한 수업의 최현선 PD의 인터뷰에 따르면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교육방송만을 송출하는 국영방송사의 존재 자체에 놀라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위대한 수업의 모든 강의를 소개하고 싶지만, 독일의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강연을 통해 착하게 사는 것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독일 철학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10년 넘게 철학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프레히트의 첫인상은 잘 생겼다 이다. 1964년 생이지만 카메라를 바라보는 눈빛에서는 청춘의 강렬함이 느껴진다. 깊은 사색과 사유로 인한 것일까? 군살 하나 없는 몸매에 곱게 빗어 넘긴 단발머리는 21세기 철학자의 이상적인 모습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과 현대사회의 고뇌, 자신만의 관점을 하나의 예술품처럼 빗어내는 그의 강연은 철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나 하고 느끼게 한다. 그의 책들은 수십 개 국에서 출간되었고, 3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나는 누구인가’와 ‘사냥꾼, 목동, 비평가’ 등이 있다. EBS의 위대한 수업에는 ‘일상의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총 6강이 올라와 있는데, 그중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를 살펴보자.
강연에 따르면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도덕적인 행동이나 타인을 위한 행동은 대부분의 사회에서 권장하지도 않고, 심지어 유용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이런 흄의 주장을 인마나엘 칸트가 반박했다. 칸트는 ‘아무도 나를 보상하지 않고, 박수 쳐주지 않고, 심지어 나의 선한 행동을 비난하더라도 나 자신은 선하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선에 대한 보상은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를 양심이라고 불렀고, 칸트는 이를 ‘자기 존중’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프레히트는 두 철학자의 주장을 비교한 후, 인간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기 위해 세 가지 형태의 이중잣대를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1. 나를 의심하는 사람을 깎아내린다.
2. 나의 잘못을 인지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더 하다고 항변한다.
3.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외면하기.
실제 예를 들어 조금 더 쉽게 풀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21세기 들어 금융산업이 발달하면서, 화이트 컬러 범죄가 폭증했고 새로운 사기 수법이 나타났다. 은행금리를 상회하는 투자수익을 올려주겠다며, 투자자를 모으고, 일정기간 투자자가 현혹될 만한 배당금을 지급한다. 투자자로부터 믿음을 끌어내고 욕심을 부추긴 사기꾼은 더 큰 투자금액을 요구하고, 투자자는 망설임 없이 거액의 돈을 맡긴다. A투자자에게 일정기간 지급되었던 배당금은 사실은 B투자자의 투자금이었다. 이렇게 남의 돈으로 사기꾼은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다 자취를 감춰버린다. 이런 사기꾼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이중잣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1. 너는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냐? 왜 남의 행동을 네가 판단해. 너나 잘하세요.
2. 나도 잘못은 했지만, 나 보다 더한 사기꾼이 얼마나 많은데! 재벌들이 안 내려고 하는 상속세에 비하면 내가 사기 친 금액은 돈도 아니야.
3.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난한 것이 죄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많이 벌면 최고지. 내가 왜 남까지 신경 쓰고 살아야 해?
프레히트는 도덕적이지 못한 것에 대한 문제 인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유는 선한 인간에 대한 열망이 과거보다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의 부를 부러워하는 것이지 결코 그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며, 선하지 못한 인간은 결국 사회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한다. -제발!- 다가올 미래는 과거보다 도덕이 더욱 중요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며 강의를 마무리한다.
과연 그의 말처럼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질까? 아직까지는 프레히트의 주장이 현실과 동떨어진 철학 책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른 두 현인들의 주장도 살펴보자.
일본의 니시나카 쓰토무 변호사는 1만 명의 의뢰인을 만나 그 들의 삶을 면밀히 분석한 후 ‘운을 읽는 변호사’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일본에서 무려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세상에는 운이 존재하며, 그 운을 얻는 방법까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저 사람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며 부러워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운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운은 추상적이며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보다는 미신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운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선하게 살며 덕을 쌓는 것이 인생에 운을 부르는 방법이라고 역설한다.
‘천작을 갈고닦으면 인작이 저절로 따라온다’ 즉 인덕을 쌓으면 부나 권력이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뜻이다.
저자는 책에서 맹자의 말을 인용하며 실제로 일상에서 착한 일을 하여 운을 불러오는 사례들을 들려준다. 필자도 이 책을 읽기 전 유사과학이나 사이비 종교 같은 책이 아닌가 의심하였나, 노 변호사가 만 명이 넘는 의뢰인을 만나며 일상에서 벌어진 일들을 통해 얻은 결론에 동감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읽기도 쉽고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치게 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여기서는 목차 일부만 소개하기로 한다.
-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끼리끼리 모일까’
-소매치기와의 인연이 소매치기만 모이게 한다.
-도덕적 과실을 깨닫는 데서 운이 시작된다.
-나만 잘되길 바라면 운이 돌아선다.
-자신만을 위해 돈을 쓰는 부자는 반드시 불행해진다.
-소송을 막는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다.
야구선수는 야구를 해야 돈을 벌고, 가수는 노래를 해야 돈을 벌듯이 변호사는 소송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니시나카 쓰토무 변호사는 소송을 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쌍방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이고,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게 되면 왜 선하게 살아야 하고, 어떤 원리로 운이 우리 생에 찾아오는지 납득이 되니 필독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구독자 116만 명에 누적 조회수가 7억 뷰를 넘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통해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지 고찰해 보자. 법륜 스님은 모든 것을 소유한 누구처럼 다정한 말투는 아니지만, 고매한 정신에, 이해하기 쉬운 일상의 언어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중년의 한 방청객이 스님에게 성토하듯 질문한다. 자신은 평생을 착하게 살아왔지만, 그런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세상은 착하게 살면 성공할 수 없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호위 호식하며 사는 것을 보니 너무나 억울하다는 것이다. 짧게 질문하겠다는 그는 하소연을 이어갔다.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도 처벌을 받지 않거나, 죄 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은 사람을 보면 속상하다고 했다.
질문을 가장한 하소연을 한참 듣던 스님은 먼저 속상함의 근본 원인을 짚어냈다 세상의 기준을 너무 돈에 맞춘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이어서 나쁜 자들은 대체적으로 결과가 나쁘며, 언론에 나오는 한 두 명 때문에 속상해하지 말라고 하셨다. 세상이 칼로 무 자르듯 정의가 실현될 수는 없으나, 대체적으로 정의롭다는 것이다. 이 말씀에 나도 동의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극적인 뉴스에 반응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뉴스는 선한 사람들의 선한 행동을 보도하기보다, 악인들의 더 악한 행동을 보도하며 이익을 추구한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당신이 나쁘게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살라고 말한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라고, 착하게 사는 것이 더 쉽고 마음도 더 편하다는 것이다. 스님의 말을 듣다 보니 어려운 말도 아닌데,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다.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고, 때린 사람은 웅크리고 잔다는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K스님의 말은 독일의 잘 나가는 철학자 프레히트와 일본의 운을 믿는 변호사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현인들의 말을 빌린 이 글이 소소의 악인을 계몽시키지는 못하겠지만, 다수의 선인들이 자신이 옳았다는 마음의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