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이 필요한 시대>
2022년 8월, 여자농구 국가대표 소집을 앞두고 팀의 박지수 선수가 대표팀에서 제외되었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전년도 시즌 MVP이며 WNAB에서도 뛴 경력이 있는 역대 한국 여자 농구 최고의 센터 자리를 예약한 박지수의 나이는 겨우 25살이다. 박지수는 대표팀뿐만 아니라 소속팀 훈련에서도 제외되었다고 한다. 박지수를 주저앉힌 병명은 아킬레스건 파열이나 반월판 손상 등의 육체적 부상이 아니라 공황장애였다. 2020년 도를 넘는 악의적인 댓글로 우울증 초기증세를 겪던 그는 결국 팀 훈련도중 호흡곤란 증세가 심해졌고, 공황장애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정신적 건강은 육체적 건강과 별개이다. 일반인보다 월등히 높은 신체능력을 갖춘 프로선수들조차 쓰러지게 만드는 것이 마음의 상처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얼마나 돌보고 있나? 각종 비타민과 자양 강장제를 챙겨 먹으며 주기적으로 건강검진까지 받지만, 마음의 생채기는 무시하거나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기까지 한다. 문명의 발달로 인간은 과거에 비해 육체적으로 훨씬 편리한 생활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캐피털리즘의 과도한 성장으로 인해 정신적으로는 더 고통받고 있다. 공황장애나 우울증은 더 이상 TV 속 연예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화 벨소리에 화들짝 놀라거나,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면서도 쉬이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리던 저자가 정신과 전문의와의 대화를 풀어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베스트셀러가 되었겠는가.
박지수 선수의 소식을 접한 내 감정은 팬심과 측은지심을 공존이었다. 나는 농구대잔치를 오감으로 체감한 바스켓볼 키즈이다. 남자농구보다 세계적 경쟁력이 높은 여자농구의 팬이며, 어쩌면 100년 안에 나오기 힘든 기량을 갖춘 박지수 선수의 괘유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나 또한 수년 전 공황장애로 고통받았고, 여전히 극복하는 과정에 있다. 박지수 선수가 겪은 호흡장애는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글이나 말로는 그 공포를 설명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고 당연한 일인 호흡을 자신이 통제하지 못할 때 느끼는 공포감이란. 나의 경우 호흡곤란은 주로 밀폐된 공간에서 수시로 찾아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금요일 밤 마트에서, 주말 낮 극장에서, 혼자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일상이 공포가 되는 순간 지옥이 펼쳐진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한의원을 찾았다. 한방 치료를 통해 증세가 호전되자 일상에서도 마음을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고, 그 끝에서 글의 주제인 명상을 만났다. 처음에는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하면 명상이 될 거라 오판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30초도 앉아 있기 힘들었다. 명상에 관련된 책과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2개월짜리 명상 기초수업을 듣기도 했다. 이후 명상의 효과를 확실히 체험하고 수 년째 명상을 이어오고 있다. 명상을 통해 치유 효과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두뇌활동이나 육체적 피로 해소에도 도움을 받고 있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는 샤워 도중이나 아무 생각 없이 걷는 도중, 또는 명상 도중에 자주 떠오른다. 우리의 뇌도 휴식이 필요하다. 24시간 쉬지 않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지만, 결코 효과적이지도 않다. 프로선수들이 무리한 경기일정 탓에 부상이 발생하기도 하고, 적절한 휴식을 취한 후 더 높은 경기력을 발휘하는 듯이 우리의 마음과 뇌도 휴식이 필요하다. 나도 20~30대 시절 자기 계발 강박에 시달리며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쉼 없이 달려왔고, 그러다 100세 시대의 반환점도 돌지 못하고 잠시 주저앉았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개인의 경험에 기반한 주관적인 생각이다. 이제 다수의 경험과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명상의 효과에 대해서 알아보자.
<명상의 효과>
명상은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최근 들어 Mindfullness 마음 챙김 의 용어로도 불리고 있다. 흔히 하는 오해들 중에 명상은 종교적인 행위에 가깝기에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상의 효과는 과학적으로 이미 입증됐다. 미국 위스콘신대 신경과학 연구팀은 2002년부터 명상 전문가를 대상으로 10년 넘게 연구를 진행했다. 프랑스 승려 마티유 리카르가 명상을 하는 동안 그의 머리에는 200개가 넘는 센서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뇌에서는 신경과학 역사상 기록된 적이 없는 수치의 감마파가 감지되었다고 한다. 감마파는 집중력, 기억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는 일반인을 상대로 명상의 효과를 입증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8주 동안 명상을 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교 분석한 결과 명상을 한 집단의 스트레스 대응력이 더 높았고, 학습과 기억능력이 개선되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캐나다의 몬트리올대학은 명상과 육체적 통증에 관한 연구를 시행했다. 1천 시간 명상을 한 그룹과 전혀 명상을 하지 않은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전자는 열판의 온도가 50도일 때부터 통증을, 후자는 48도에서부터 통증을 느꼈다고 한다.
이런 실험 결과 때문일까? 구글, 애플, 골드만삭스, 나이키, HBO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이 직원들을 위한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이 직원의 복지만을 위해서 명상을 권장할까? 업무적으로도 더 나은 성과가 나온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구글은 실리콘벨리에서 명상문화가 가장 잘 자리 잡은 곳인데, 그 이유는 구글의 창립멤버이자 천재 엔지니어로 불렸던 차드 멍 탄 때문이다. 모두가 부러워할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는 예고 없이 찾아온 우울증에 빠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명상을 만나게 되었다. 이후 명상의 효과에 완전히 심취한 그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내면검색’이라는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이 프로그램은 구글 직원들에게 실제로 적용되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과학적인 기관을 꼽으라면 어디가 떠오르나? 카이스트는 인문학 연구단체 플라톤 아카데미와 협업하여 명상과학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유수의 대기업에서 직원을 위한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총아이자 대변인이 자본주의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명상에 돈을 쓰고 있다. 이제 명상에 빠진 개인들을 살펴보자.
<명상하는 유명인>
최근 10년간의 독서 중 가장 인상적인 책을 꼽으라면 단연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이다. 전 세계 지성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카피는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사피엔스, 호모데우스에 이어 인류 3부작의 마지막이라는 그의 또 다른 저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빌게이츠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빌 게이츠는 명상이 미신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으로 인해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고, 잘못된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이제는 명상이 마음을 단련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유발 하라리는 명상을 하지 않았다면 사피엔스 같은 책은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참고로 그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명상인 고엔카의 윗빠사나 명상을 수행한다고 한다.
유발 하라리, 빌 게이츠와 외모와 업적 면에서 상당히 유사한 두 명의 천재도 명상과 관련이 깊다. 우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개미’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집사부 일체에 출연하여 아이디어의 원천은 명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베르베르의 전 세계 책 판매량은 2천만 부가 넘는데, 천 만부가 한국에서 팔렸다). 안경을 낀 마른 몸매와 시원하게 밀어버린 헤어 스타일까지 하라리와 베르베르는 프로필 사진을 서로 바꾸어 사용해도 열혈독자가 아니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두 사람은 닮았다.
빌 게이츠 필생의 라이벌 스티브 잡스의 명상 사랑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위인전의 표상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를 보면 잡스는 명상뿐만 아니라 걷기에도 진심이다. 잡스는 중요한 일을 논의할 때조차도 걸으며 대화를 한다. 걷기와 명상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혼자 몰래 흐뭇해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잠시 옆길로 새자면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팬이 아니라도 이 책은 매우 흥미롭다. 나는 이 책을 읽고도 여전히 애플 제품을 사용하지 않지만, 스티브 잡스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명상은 스포츠 스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2010년 대부터 남자 테니스 세계 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조코비치는 명상과 식이요법을 통해 경쟁자뿐만 아니라 자신을 넘어서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마케팅 측면에서 최고의 스포츠 스타라 할 수 있는 마이클 조던 또한 경기 전 명상으로 집중력을 높였다고 하니 이쯤 되면 명상이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제 생활 속에서 명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자.
<일상의 명상법>
NBA의 슈퍼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명상 앱의 빗소리를 들으며 팀원들과 명상을 한다고 한다. 명상에 대한 관심과 앱의 사용은 팬데믹 시대를 맞아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유료 명상 어플 CALM은 2021년 기준 기업가치가 22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인들 중에도 어플이나 유튜브를 통해 명상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넷플릭스 구독자라면 ‘헤드 스페이스 명상이 필요할 때’를 추천한다. 스님이 공동 창업자이기도 한 명상 어플 헤드스페이스가 넷플릭스에 론칭한 것인데, 친절한 설명과 방법이 비교적 자세히 나와 명상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참고로 필자는 유튜브에서 ‘요가소년’과 ‘채횐의 귓전명상’을 구독 중인데, 어플이나 명상채널, 책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조금씩 경험해 보며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기를 권한다.
생업에 종사하며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장시간 명상을 하기는 쉽지 않다. 필자의 명상 패턴을 잠시 소개하겠다. 출근 시간 마을버스에서 10분 동안 (마을버스 종점에서 승차하기에 앉은 채로 이동이 가능하다) 호흡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업무를 하는 도중에도 화를 부르는 일과 사람은 늘 존재한다. 그런 순간이 오면 잠시 짬을 내어 흡연실 대신 빈 회의실을 찾는다. 호흡명상 5분이면 놀랄 만큼 차분해지는 당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담배가 스트레스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끽연의 행위에 호흡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는 이완명상을 하며 하루의 피로를 푼다. 잔잔한 목소리자 지시하는 대로 호흡을 하고, 지친 몸의 구석구석을 스캔하다 보면 내 몸에 딱 맞는 부드러운 마사지를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명상 초기에는 누워서 이완명상을 10시도 되기 전에 잠이 드는 경우가 잦았다. 명상은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명상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눈치챘겠지만, 이 글의 제목 ‘나를 만나는 길’ 은 2022년 5월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을 빌린 것이다. 카메라는 틱낫한 스님이 프랑스에 설립한 명상 공동체 플럼 빌리지의 모습을 담았다. 스님은 1926년 베트남에서 태어나 평생을 반전운동과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했고, 마틴 루터 킹 목사에 의해서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이 영화의 내레이션은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았다. 베네딕트라는 거물급 스타가 이런 저 예산 다큐멘터리 영화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틱낫한 스님의 명상 제자이기 때문이다. 베네딕트는 교양미가 넘치는 대표적인 배우인데, 역시나 명상을 하고 있었다. 영화의 곳곳에 팃낫한 스님의 글귀를 읊조리는 베네딕트의 목소리가 별처럼 뿌려져 있다. 잔잔하다 못해 자칫 졸릴 수도 있는 이 작품은 영화와 명상의 경계를 넘나 든다. 고백하자면 명상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에겐 지루할 것이다. 그러나 명상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겐 성지 순례 같은 영화임에 틀림없다. 영화 후반부에 생전 스님이 남긴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짧은 말씀 안에서 명상의 의미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지금 이 순간 과거의 상처와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들로 인해 마음이 고통받고 있는 모든 이들의 쾌유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마음챙김 수행은 항상 도착하는 겁니다. 지금 여기에 도착하는 것.
우리는 늘 달려왔지만, 아직 도착하지 못했어요.
항상 뭔가를 찾고 구하고, 갈망하지만 찾지 못했지요.
그래서 계속 달립니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더 많이 달려야 찾을 수 있을지 몰라요.
자신에게 없다고 믿는 행복의 조건을 찾고 있는 것일 수도 있죠.
달리는 것과 찾는 것이 습관이 됐습니다.
삶과 그 경이로움은 오직 현재의 순간에만 우리 곁에 있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오직 현재의 순간만 있지요.
그래서 마음 챙김 명상은 지금 여기로 돌아오게 하고,
삶을 더 깊이 사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삶을 낭비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