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예수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 폰을 창조하기 이전의 한국사회는 인맥이 지금보다 더 중요시되던 시대였다. 다양한 계층의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성공의 필수조건으로 여겨졌고, 더불어 사는 사회의 미덕이라며 강요받았다.
천성이 내성적이거나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섬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들은 느리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쌓아갔지만, 사람들은 성격을 바꿔야 한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한국사회에서 내성적인 사람의 다름은 여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외향적인 성격의 나 또한 이점을 살리지 못한다는 조언 같지 않은 잔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성격도 좋은데 의외로 친구가 많이 없네? 사회생활 잘 못하는 거 아냐?”
나 만의 생각이 단단해지지 않은 청춘의 시절에는, 다수의 말이 옳다고 여겼다. “친구도 인간관계도 다다익선이다.”
내 취향과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가능한 많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친구를 수집하듯 찾아다녔다. 열 명의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천 명의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나의 미래를 위해 유리하다는 일차원적인 생각이었다.
취업과 동시에 인터넷 세상이 열리며, 각종 온 오프라인 모임이 활성화되었다. 동창회, 향우회, 경제모임, 산악회, 와인모임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은 불나방처럼 어디던 찾아다녔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말을 나누었다. 동의할 수 없는 생각과 불편한 행동에도 나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미래가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로
다음 날이면 잊히는 유희의 시간들이 쌓이며, 친구라고 믿었던 이들의 전화번호가 퇴적되어 갔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모임일지라도, 초대받지 못하면 불안했다.
불안을 떨치기 위해 채집하듯 모은 전화번호의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다. 일방적인 말들이 상대에게 화살처럼 날아갈 뿐, 되돌아오지 않았다. 대화가 실종된 소음의 굴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은 늘 공허했다.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은 점점 커져갔다.
인간관계에 대한 강박과 집착에서 벗어나 것은 글쓰기 덕분이다. 학창 시절 농구 이후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고- 즐거워서 하는 최초의 행위가 글쓰기였다. 마흔이 넘어 –코인이 아닌- 좋아하는 일을 채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이가 들수록 책임져야 할 일은 늘어났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글쓰기는 누구의 간섭이나 지시도 받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이기 때문에 더욱 매혹적이다. 분업화, 세분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내 손으로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행위가 주는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세 권의 책을 출간할 수 있었던 것은 기대하지 못했던 행운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며, 생각이 깊어지고 포용성이 커졌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그 일을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사유 없이 유지했던, 나와 취향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단절하기로 했다. 그들과 특별히 싸우거나 논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더 이상 대화가 즐겁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하기로 했다.
명절과 새해에 보내던 단체문자와 밥 한 번 먹자는 안부 전화만 끓었을 뿐인데, 많은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증발했다. 그중에는 수 십 년이 넘은 오래된 인연도 있었지만, 아쉽지 않았다. 살아가며 누구나 겪는, 나에게 집중하는 단아한 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의 질량은 줄었지만. 소수의 지인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제철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술만 있다면 부동산과 주식 이야기 없이도 대화가 존재했다. 삶의 찬란함과 지금 좋아하는 일,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다.
친구와 장은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이 있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 오래된 친구와 입맛에 맞지 않는 장은 정신 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