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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VS 순례자의 길

by 김재완

출근은 늘 힘들지만, 월요일이 더 힘들고, 새해 첫날은 일 년 중 가장 힘든 날이다. 한 해의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평소 두 배의 금액을 투자하여 복권을 산다. 그러나, 복권을 긁고 나면 좌절감만 곱절로 늘어날 뿐이다. 미세한 희망마저 사라진 후의 출근길은 새어져 나오는 한숨으로 버스 창에 성에가 낄 지경이다.

월요일을 더욱 힘들게 하는 원흉은 회의이다. 위대하고 전능한 사장님이 잡스나 머스크처럼 확실한 비전과 비상한 두뇌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직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한다면 회의도 버틸만하고, 회사도 다닐 만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사장이 직원들에게 부진의 원인을 추궁하고, 책임을 전가하기 바쁘다. 월급 루팡이 자생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다. 모든 기업이 마찬가지지만, 수직문화가 더 강한 한국의 특성상 회사의 성패는 오직 리더 한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장님들! 제발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말을 하지 말아 주세요. 그건 진짜 주인이 가지는 거고, 회사가 망하면 너 때문이고, 잘 돼도 너 때문이니 일 좀 제대로 합시다.”


형식적인 시무식이 끝난 후, 팀장 급이 참석하는 새해 전략회의가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워크숍이 사라지고 회의는 늘어났다. 회의실에는 수십 명의 중년남성들이 마스크를 낀 채 어깨가 맞닿도록 앉았다. 기획팀의 대리가 회의 시작을 알리며 불을 껐다. 모두의 시선이 정면의 슬라이드를 향한 순간 내 숨도 멈추었다. 공황이 몇 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손바닥을 시작으로 온몸의 구멍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발가락 끝의 미열조차 얼굴로 역류하는 듯했다. 얼굴이 붉어지고, 정상적인 호흡이 되질 않았다. 마스크를 벗고 숨을 거칠게 내쉬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회사 점퍼를 벗고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떨어지는 매출로 올 한 해는 모두가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며, 그 각오는 피똥이 나올 때까지 뛰어야 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 와중에 나는 ‘여기서 이대로 죽으면 산재처리가 될까’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바깥바람을 쐬니 호흡이 차츰 돌아오기 시작했으나, 술을 마신 사람처럼 붉게 변한 혈색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삼십 분을 셔츠차림으로 거리에 서 있었다. 영하의 차가운 날씨지만 골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봄바람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는 바쁠 것이고, 엄마는 놀랄 것이고, HJ는 당황할 것이다. 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가족에게 걱정만 던져주기는 싫었다. 그래도 갈 곳은 집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두 시간 동안 깊게 생각하고 단단하게 결심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 사람이 먼저다. 내일은 반드시 사표를 내야겠다.’


내 인생에서 계획대로 된 것이 얼마나 있을까? 아니 있기나 했나? 나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사표를 내지 못하고, 힘겹게 숨만 쉬며 겨울을 보냈다. 봄이 오고 만물이 소생하고, 사장이 또 바뀌었다. 월급쟁이 사장은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해 직원들을 압박하고,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내기 위해 비용을 절감하다 자신이 잘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오 년 동안 다섯 명의 사장이 부엌을 들락거리는 도둑고양이처럼 회사를 오갔고, 직원들은 각양각색의 인간군상에 맞추어 카멜레온처럼 변해야 했다. 세월을 먹으며 옆 자리로 옮기는 변화에도 질색하게 되었는데, 사장이 년 단위로 바뀌는 변화는 이십 년이 넘는 직장생활 동안 처음 겪는 새로운 지랄 맞음이었다. 사원, 대리 시절에는 차장이나 부장이 되면 회사가 다닐 만할 거라고 착각했다. 세상의 부조리와 회사의 불합리함을 깨우치게 되며 회사 생활이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세상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이 정신적으로는 더 편했었다.


출근을 하기 싫은 것과 빨리 퇴근하고 싶은 것은 상수이고, 봄이 되니 낮 동안 사무실에 앉아 있기 싫은 변수까지 생겼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고 봄은 퇴사의 계절이다. 주말권으로도 진입하지 못한 수요일 아침,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9층까지 뛰어서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문을 열고 사무실 안에 들어서니, 나와 같은 표정의 사람들이 같은 책상, 같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시 숨이 막혀왔다. 데스크 탑이 켜지자마자 회사 전산을 열어 휴가를 등록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회사 밖으로 나갔다. 단 한 번의 결석도 없이 12년의 학창 시절을 보냈고, 지각, 결근 한 번 없이 20년의 직장생활을 보냈다. 반백 년을 살며 처음 저지르는 일탈이었다.


단골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궁리했다. 일탈이 적응이 되지 않는지 신나기보다는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다. 커피를 마시고 마음이 안정되니, 평일 낮의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었다. 한 참을 고민하다 손미나의 ‘엘 카미노’를 보기로 했다. 전직 아나운서 출신인 손미나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버리고 세상에 뛰어든 후,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삶은 찾은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작가 알랭드 보통이 운영하는 ‘인생학교’의 한국 교장으로도 재직한 바 있는 그에게 더 관심이 간 이유는 나와 비슷한 나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대기업도 뛰쳐나오지 못하는데, 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깡으로 KBS를 박차고 나왔을까? 그냥 날 때부터 나와는 다른 종족인 걸까?’

손미나에 대한 나의 감정은 경외감, 부러움, 호기심이 잘게 섞여 있었다. 이번에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도 데뷔를 했는데, 나의 버킷리스트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직접 걷고, 그 과정을 필름에 담아낸 것이다. 영화의 제목은 엘 카미노였다 (The Way)

나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극장으로 향했다. 평일 대낮에 영화관으로 들어서는 것만으로 짜릿한 전율이 일어났고, 영화가 끝난 후 나에게 새로운 길이 열릴 것 같은 불길하지도, 그렇다고 희망적이지도 않은 그저 단순하지만 강력한 예감이 들었다. 마침내 영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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