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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완 Jan 03. 2024

네 시간의 출퇴근을 버티는 방법

26개월의 군생활을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취업했다. 첫 회사는 자취생의 메카인 신림 역에서 이십 분이 채 안 걸리는 곳에 위치했었다. 그러나 이후 이십 년이 넘는 직장 생활 동안 회사와 집은 멀어져만 갔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아내 HJ와 가정을 이루고, 머리숱이 휑해지며 몇 번의 이직이 있었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입사를 하던 날부터 변하지 않는 단단한 생각이 있다.

‘퇴사하고 싶다!’


어린 시절 공부 외에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다고 지적당하고,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혼나는 일이 잦았다. 누군가의 잔소리와 설득으로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그 결과 나는 얕지만 다방면에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되었고, 싫증 나는 일을 오래 참지 않고, 재미있는 일을 찾다 보니 세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가 되었다. 타고난 성향을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도 인생의 2/5가 넘는 시간을 보낸 곳은 오직 회사뿐이다. 회사를 떠나지 못한 것은 월급의 달콤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다른 길을 걸어보려는 용기의 부재, 회사 밖은 위험하다는 회사를 떠나보지 않은 이들에게서 전파되는 과장된 공포, 적응과 성실로 포장하는

내면의 게으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절대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기필코 떠나고 싶어 하는 이 개미지옥을 어찌해야 할까?


회사생활을 힘들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출퇴근길이다. 얼마 전, 단톡방에 링크 하나가 공유되었다. 집과 회사의 위치를 입력하면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 주었는데, 나는 연봉에 준하는 시간을 길바닥에 뿌리고 있었다.

인구 십만의 소도시에서 태어나, 직장생활 십 년 차에 서울특별시민에서 경기도민이 되었다. 경기도민은 차로 삼십 분 미만의 거리는 슬리퍼를 신고 나간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나는 회사보다 판문점이 가까운 경기도 북부의 집에서 네 시간이 걸리는 출퇴근 길을 매일 순례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지하철 퇴근 장면에 가슴이 먹먹해진 것은 나의 누적된 시간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해가 뜨지 않은 아침부터 경쟁은 시작이다. 마을버스에는 동네사람들과 자리선점을 위한 경쟁을 하고, 지하철로 두 번의 환승을 해야만 강의 남쪽으로 진입할 수 있다. 낮 동안 강의 남쪽에서 먼지처럼 부유하다 -피로와 짜증을 안은 채- 강의 북쪽에 있는 스위트 홈으로 돌아간다. 돈은 시간을 벌어주고, 시간은 여유를 창출하며, 여유는 관대함을 생성시킨다. 가슴으로는 출퇴근 길의 시위를 이해하지만, 지친 육신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킨다. 농구만큼 책을 좋아하니 하루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무려 네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생업을 위한 경제활동, 숙제같은 가족의 대소사, 왜 유지하는지 이유조차 망각한 인간관계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 만의 시간은 이미 증발해 버렸다. 마치 침몰을 위한 항해를 하는 듯한 현대 사회에서 하루 네 시간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청춘의 시절에 비해 육체적 상실이 분명히 있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독서 때문이다. 책이 없었다면 작가라는 부캐도 갖지 못했을 것이며, 글이라는 세계를 만들어내는 창조주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고기도 매일 먹으면 질릴 것이다. 책이 가장 좋은 선택지이긴 하지만 대안이 필요하다.

그래서 매달 마지막 주는 시네마 천국 주간으로 정했다. 나의 취향을 확실히 깨닫게 된 것도 나이가 드는 것의 장점 중 하나이다. 나는 ‘범죄도시’ 보다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고 감흥을 느낀다. 관객이 많이 든 영화와 잘 팔리는 책이 반드시 좋은 영화와 책은 아니다는 생각을 하며, 그래서 내가 돈을 못 버나?라는 팩트 폭력에 좌절했다. 그럼에도 예술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 나의 출퇴근 길을 버티게 해 준다. 어느 해, 연말 그 해 본 영화의 리스트를 보다 유독 ‘찬란’이라는 배급사의 영화를 많이 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배우 소지섭이 ‘찬란’과 함께 돈 안 되는 영화에 함께 투자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지섭은 예술을 해서 번 돈을 찬란하게 쓰고 있었다.


하루 네 시간은 정신적으로 즐거운 시간일지라도, 중년의 인간에게 육체적 무리를 준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그야말로 잠시 누워있다 샤워를 하고 나면 11시다. 나이가 드니 수면시간은 줄었지만, 늦게 자면 다음 날 일상이 버거울 지경이다. 서둘러 잠자기에 들며 하루가 파도처럼 사라진다.

두렵다! 내 인생이 이렇게 마감될 것 같은 확신이.

괴롭다!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선명한 현실이.

어떤 날은 누워있지만 잠이 들지 못하고, 잠이 들지 못하니 생각이 떠오르고, 생각이 이어지니 잠이 들지 못한다. 사력을 다해 오늘을 살았지만, 내일 걱정으로 잠이 들지 못하다 늘 같은 생각의 종착지에 이른다..

“내일은 꼭 사표를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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