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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X의 사유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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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완 Feb 21. 2024

짜장면 좋아하세요?

군 생활 동안 불고기와 김치보다 열망한 음식이자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먹은 첫 끼는 짜장면이었습니다. 짜장면은 한국인에게 보편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지닌 특별한 음식입니다. 부모님 손을 잡고 어른의 세계로 가는 관문이었으며, 부모님 곁을 떠나 이사를 한 날 먹으며 어린 시절로 회귀하게 해주는 다락방 같은 존재입니다.

친구와 함께 하던 당구장, 연인과 함께 있던 공원은 물론이고 산과 바다 심지어 죄와 벌이 있는 유치장에도. 철가방에 담기기만 하면 대한민국 구석구석 닿지 않는 곳이 없는 마법의 음식입니다.     

 

짜장면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이 매혹적인 음식은 화교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화교는 우리나라로 이주하여 살고 있는 중국계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최초의 화교는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군대와 함께 들어온 40여 명의 상인입니다. 1884년 조성된 청나라 조계지는, 현재 차이나타운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후 격변하는 중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더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의 개항 항을 통해 유입되었습니다. 민초들의 삶은 국경과 이념을 넘어 늘 고달팠습니다. 한국의 화교들은 국경과 인접한 중국 산둥성, 베이징, 허베이성 출신들이 많습니다.     

화교의 숫자가 증가하자 청관거리가 조성되었고, 이 거리의 대표적 맛집 공화춘(등록문화재 제246호)에서 짜장면이 시작되었습니다. 공화춘은 원래는 무역상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인데, 손님들이 늘기 시작하니 간단한 요기 거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춘장을 기름에 볶아 국수에 얹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짜장면 나왔습니다.”

한국 최초의 짜장면은 고기도 채소도 해산물도 없는 간편식이었습니다.   

  

짜장면의 성장은 역설적이게도 화교에 대한 차별정책과 한국인의 가난에서 기인합니다. 1945년 당시 국내 화교인구는 60만 명에 달했으나, 1961년 이후 한국정부의 강력한 화교 차별정책으로 1975년에는 5만여 명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화교들의 사업을 위한 인 허가에 제한을 두는 것은 물론이고 부동산과 동산의 매매거래를 제한합니다. 자동차 할부 구매 시 3급 이상 공무원의 보증을 요구하는 조치에서 알 수 있듯이 화교에 대한 차별정책은 극심했습니다. 한국 회사에 취업이 어려웠던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라와 인종을 불문하고 부모는 강합니다. 화교들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밀가루 포대를 이고 주방으로 들어와 수타면을 뽑고 화염에 가까운 불 앞에서 춘장을 볶았습니다. 재일 한국인이 먹고살기 위해 일본에서 파친코 산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화교들은 중식당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1층에는 식당, 2층에는 살림집이 들어설 수밖에 없었으며 중국집이라는 개념은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1961년 대홍수, 이듬해 태풍 노라와 살인적인 가뭄이 이어지며 1962년 쌀 한가마의 가격이 전년 대비 400% 상승하게 됩니다. 한국에는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은 밀가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쌀에 익숙한 한국인은 밀가루 음식을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정부는 분식장려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하였고, 식당에서 쌀을 팔지 못하게 하는 날까지 지정합니다. 이를 계기로 라면과 함께 짜장면이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정부의 가격제한 품목에 포함되며 대표적인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고, 90년대 경제성장으로 인해 외식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국민 음식의 지위를 확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짜장면은 한국 근현대사의 태동과 함께 했으며, 도무지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로 저만치 달아나는 스마트시대에도 노포의 메뉴판과 쇼핑몰의 키오스크에 다이아몬드처럼 박혀있는 대견한 음식입니다.     


짜장면의 역사는 배고픈 한국 서민과 차별받은 화교인의 생활력이 만들어낸 눈물 젖은 융합물입니다. 최근 타국에서 살았던 한국인의 이야기가 영화와 책을 통해 각광받고 있습니다. 파친코와 미나리가 다른 나라에서 살아낸 1세대의 이야기라면, 독서광 오바마가 추천하여 빅 히트를 기록한 'H마트에서 울다 ‘는 오늘을 살아가는 한인 3세의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이국땅인 한국에서 살았고, 살아냈으며, 여전히 살아가는 화교의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습니다. 차별이 국경과 인종을 넘었지만, 용서와 화해가 시대를 초월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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