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완 Aug 30. 2024

집은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이라는 생각

 오십에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던 경제적 비책은 아파트 대신 빌라를 매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가 아파트 대신 빌라를 매매할 수 있었던 것은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영혼까지 끌어 모아 대출을 받았더라면 아파트를 매매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때의 결정은 결국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해 주었고,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수 있었던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언론에 등장하는 부동산 전문가와 지인들의 말을 따르지 않고, 우리의 가치관과 취향을 고려하여 내린 결정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빌라의 주거환경이 아파트보다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빌라는 50세대가 넘는 대단지로 아파트의 모든 장점을 갖추었지만, 가격은 같은 평수의 아파트 삼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아파트가 미래에 얼마나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빌라 매매는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열광하는 걸까요?

문명이 고도화되고 산업이 발전할수록 근로환경은 척박해지고 개인의 삶의 질은 퇴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기간 내에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에서 아파트는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대안처럼 보입니다. 주식시장에도 개미가 있듯이 부동산 시장에도 개미가 존재합니다. 제가 지켜본 부동산 시장은 집 한 채를 가진 개미가 돈을 버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다수의 부동산을 보유한 A는 한 곳의 부동산이 가격이 하락해도 버틸 수 있으며, 상승한 다른 부동산을 처분하여 금전적 이익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머피의 법칙일까요? 개미가 보유한 한 채의 아파트 가격은 잘 오르지도 않고, 다른 지역의 아파트만 오릅니다. 개미의 집 주변 아파트 가격이 동반 상승해도 문제입니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판다고 해도 함께 가격이 상승한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 실질적 이익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온 나라에서 오직 내가 가진 단 한 채의 아파트 가격만 수직 상승해야 하는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매불망 기적을 기다리다 은행 배만 불리는 악순환의 반복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집니다.

 내 아파트 가격만 오르는 기적이 일어나도 실질적인 이익이 실현되는 것은 매도 이후입니다. 아파트 가격이 너무 오르면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차후의 문제입니다. 누구도 상투를 잡고 싶어 하지는 않으니까요! 위안이라면 그저 집 앞 부동산에 붙어있는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숫자일 뿐입니다.

 부부가 억대 연봉을 받는 친구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과도한 업무로 번 아웃이 온 아내가 휴직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벌어도 돈이 늘 부족했기에 친구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내가 쉬는 기간 동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수입에 맞춰 지출을 줄였더니 가계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친구의 결론은 돈은 많이 벌어도 늘 부족지만, 적게 벌면 거기에 맞추어 살아진다는 것입니다.


 돈은 얼마나 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고 중요합니다.

많은 이들이 목표한 돈을 모으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희망을 뒤로 미룹니다. 그 돈만 모으면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살 거라고 굳은 다짐을 합니다. 개인마다 목표로 하는 금액도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목표한 100억에 도달한다고 해도 사고의 자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돈은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지고 200억을 달성하기 위해 다시 달릴 것입니다. 그러나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각자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의 끝에 먼저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나 올라야 할 각자의 산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산을 오르기 전 너무 많은 짐을 경쟁적으로 배낭에 구겨 넣습니다.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이들은 초입에서 지쳐버리며, 한 치 앞만 보고 걷느라 멀리 볼 수 있는 시력을 상실한 채 몸만 자라게 됩니다. 짐을 줄이면 여정이 수월해지는 것을 알지만, 버릴 수 지혜와 남과 다른 관점을 가질 용기를 가진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사유하는 것은 서툴고, 남을 따라 하는 것은 쉽기 때문입니다. 이 산을 오르며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같은 산을 남보다 빨리 올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산을 오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산을 오르는 타인의 속도나 그들이 메고 있는 배낭을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산을 인생이라고 부릅니다.


<덧붙이는 음악>

 고향의 시골집 마당에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수국이 가득했습니다. 여름 해 질 녘, 꽃들이 다치지 않게 완만한 곡선을 그려 물을 뿌려 주다 보면 시간과 빛이 만들어내는 무지개가 피고는 했습니다. 돌아보면 불편한 점들이 많았지만 그 집은 참으로 안락했었습니다.

 도시에서의 첫 집은 장마철이 되면 곰팡이가 피어나는 반 지하였고, 두 번째 집은 다른 집 보다 달이 가까이 있던 옥탑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집으로 가는 길은 늘 행복했습니다.

 오늘도 고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당신에게 김윤아의 ‘Going Home'은 안온한 위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전 02화 오십에 회사를 그만둔 세 가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