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들러 갔다가...김밥을 받았다.

by 김재완

퇴근길에 자주 듣는 라디오 프로에서 배철수 DJ가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에 대한 불평을 줄여야 한다고.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나도 일조했기 때문이라고. 나의 발을 저리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지낸다. 얼마 후, 배철수씨는 TV 토크쇼에서 민주화를 위해 학생운동을 한 동년배에게 부채 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처럼 나이 들어가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나는 X세대다.

나는 최루탄 가스를 마신 선배들 덕분에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 수 있었고, IMF의

직격탄을 맞았다고 하지만 지금의 청춘들보다 수월한 취업 전쟁에서 운 좋게 살

아 남았다. 나와 같은 행운을 누리지 못한 청년에게 미안하고, 우리에게 힘든 일

을 미루지 않은 선배들에게 감사하게 됐다.


그래서 촛불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2019년 가을의 대한민국은 한 집단에 분노하고 있다. 그들은 학창 시절 단지 공부를 잘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진 권력을 감히 국민의 뜻에 반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사 온 지 얼마 안된 집 구석 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그해 겨울에 쓰던 LED 촛불을 챙겨 오긴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네.”

그렇게 우리는 돗자리와 생수를 챙기고, LE 촛불 대신 스마트폰에 촛불 앱을 설치한 후 서초동으로 향했다.


9월의 마지막 토요일은 이상기온이라고 할 만큼 몹시도 뜨거웠다. 아내는 촛불은 추울 때 들어야 제 맛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하철 3호선은 많은 사람으로 인해 냉방장치가 소용이 없었고, 어제 회식으로 과음을 나는 벌써 지쳐가기 시작했다.

오후 6시가 넘어 교대역에 내리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출구를 나가려는 인파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설마 다 집회 가는 사람들은 아니겠지? 오늘 10만 명 정도 예상한다던데?”

“겨울처럼 10만 30만 이런 식으로 차츰 늘어나겠지 않을까?”


지하철역 도착 10분이 지나서야 역사 밖이 보이기 시작했고, 모두 굳은 표정이었다. 집회를 나온 우리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표정은 더운 날씨 때문에 더욱 굳어졌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외쳤다.

“물에 빠진 배를 11시간 동안 조사해봐라. 우리가 자장면 아니라 탕수육도 사주지.”


마침내 역사를 빠져나온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조국 지키기가 이렇게 힘드네. 벌써 지친다. 지쳐.”

그때 할머니 한 분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찾더니 김밥 한 줄을 나에게 내밀었다.

“집에서 싼 거요. 힘내요. 젊은 양반.”

그리고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셨다. 어서 나를 따르라는 듯이 힘찬 발걸음으로!


노부부를 따라 잠시 걷다 보니 8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수많은 촛불들이 보였다. 마치 위대한 자연 앞에 선 기분이었다. 그 순간 하늘 위에서 드론이 날기 시작했고, 촛불들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를 환영하는 격한 인사처럼 들렸다. 어서 오라고! 잘 왔노라고! 함께 촛불잔치를 벌여보자고!


우리는 중앙 무대 근처는 가지도 못하고 자리를 잡았다. 옆자리에는 동탄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두 가족이 자리를 잡았다. 마른 체구의 아빠가 대형 깃발을 들고 있었고, ‘검찰개혁’이라는 대형 글씨 아래 깨알같이 동탄XXXX라고 적혀 있었다. 엄마가 돗자리를 펴자 언니는 숙제하고 동생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막내는 아빠 목에 올라타 주위를 들러보며 어른들의 구호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저 신나 보였고,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반대편 차선에서는 한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LED 초를 주변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엄마가 지나치면 아이가 엄마에게 빠진 친구를 가리켰다. 저 친구의 작은 손에도 촛불을 안겨 주자고.

나는 사직 야구장에 온 것처럼 신나게 소리를 질렀고, 그렇게 목이 쉬었다. 공식 행사를 마친 후에는 여기저기서 강강술래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못 가본 분들에게 강추한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춘 하나의 멋들어진 작품이다.

촛불잔치의 현장에는 언론에서 말하는 지역 간 세대 간의 갈등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챔피언들만 있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몸은 지쳤는데 뇌에만 아드레날린이 주입된 것처럼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불과 일주일 만에 빅뱅급의 폭발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서 혼자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원인 중 하나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끝나지 않을 전쟁인 칼로 물 베기라는 부부싸움에서도 절대 준수해야 할 교전수칙을 그들이 어겼기 때문이다.


“가족만은 건들지 말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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