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BTS와 차은우의 공통된 숙명

숙명 :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 또는 피할 수 없는 운명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가진 남자라면 -죽도록 피하고 싶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군대라는 운명이 20대의 청년들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전쟁으로 남과 북의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38선이라는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두 나라는 여전히 대치중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남성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3년 내에 군대에 입대한다. 인생에서 육체적 에너지가 절정에 달하는 시기이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끓어 넘치는 때에 입대를 하는 이유는 취업을 하기 전에 군복무를 마치기 위함이다. 어차피 맞아야 할 매라면 빨리 맞는 것이 속 편하다는 심리도 작용한 것이다. 그만큼 군대가 한국 남성에게 주는 압박감은 숙명이라는 말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최악의 인생 과제이다.

군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고강도의 훈련이 아니라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없고, 씻고 싶을 때 잘 수 없는 자유의 실종일 것이다. 2025년 1월에 입대를 한다면 18개월의 복무기간 동안 배치받은 부대에서 생활을 해야 한다. 가족이나 친구의 면회가 허용되고 이따금 외출과 휴가가 주어지지만, 20년 넘게 자유롭게 살다 맞이하는 군 생활은 감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드물지만 훈련도중 부상을 당하거나 심지어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발생하다 보니 아직도(?) 어린 아들을 군대로 보낸 부모의 마음도 무겁다.

심리적 중압감과 육체적 한계를 이기지 못해 탈영을 하거나, 군 입대 자체를 거부하는 특수한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의 한국 청년들은 숙명을 받아들인다.

"그래! 한국에 태어났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 내 가족,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입대 전날의 모습은 어느 가정이나 비슷하다. 아들이 좋아하는 불고기와 잡채를 동시에 요리하는 엄마는 정신없이 분주한 와중에도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다. 아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과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걱정이 잡채처럼 뒤섞여 있다.

'혹시나 괴롭히는 선임병은 없을까? 훈련은 도대체 얼마나 고된 것일까? 애가 예민해서 잠을 잘 못 자는데 여러 사람이 모여서 자는 내무반에서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은 없을까? 강원도의 겨울은 도대체 얼마나 추울까?'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손이 쉬지 않고 움직였고, 그렇게 열 명이 먹어도 다 먹지 못할 각종 산해진미가 차려진다.

"어서! 밥 먹자."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어른이 된다고 말하던 아버지의 목소리에도 물기가 서려있다. 평소라면 잡채며 불고기에 갓 담은 겉절이를 빛의 속도로 먹어치우던 아들이 도통 먹지 못하자 부모의 억장은 무너지고 만다. 집안에서 오직 여동생의 젓가락만이 밥상을 유영한다.

"왜 입맛이 없어? 내가 다 먹는다. 근데 내일 갠 온데? 너 그래서 엄마 아빠 못 오게 하는 거지?"

군 입대를 앞둔 X에게는 이제 막 100일을 넘긴 여자 친구가 있다. 현실 자매답게 X는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을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대응한다.

"닥치고 밥이나 먹어라."

"야! 군대 너만 가냐? 얼굴 좀 펴! BTS도 가고 어! 차은우도 가는데!"

사실 여동생도 오빠의 입대가 실감이 나지 않지만, 온 가족이 울상을 한 채 밥도 제대로 먹지 않으니 분위기 전환을 위해 자신이 악역을 자처한 것이다. 세계무대를 호령하는 K팝 스타도 군 입대라는 숙명은 피할 수 없다.

다음 날 아침, X는 엄마를 먼저 안아본다. 마지막 포웅이 언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 뒤에서 어정쩡하게 기다리는 아빠를 보니 참아왔던 눈물이 끝내 터지고 만다. 아들의 우는 모습을 보니 아빠도 울음을 참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