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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짜장면 좋아하세요?

by 김재완

결핍은 최고의 동기부여이며, 상실은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최고의 각성제이다.


나에게 28개월간의 군 복무기간은 자유를 그저 흘러 보내지 않고 가치 있게 사용하리라는 동기부여가 되었으며, 1년간의 외국생활은 한국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 시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 만나지 못한 가족과 친구도 그리웠지만 정작 내가 가장 그리워한 것은 짜장면이었다. 한국의 대표메뉴인 불고기나 김치가 아니라 중국에서 유래된 짜장면이라니! 그러나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한국인들 중 상당수가 나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그만큼 짜장면은 한국인에게 보편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지닌 특별한 음식이다.


부모님 손을 잡고 어른의 세계로 가는 관문이었으며, 부모님 곁을 떠나 이사를 한 날 짜장면을 먹으면 어린 시절로 회귀시켜 주는 다락방 같은 존재이다.

“욱제야! 짜장면 왔다. 나머지는 밥 먹고 정리하자.”

공기마저 낯설었던 서울살이는 반 지하 원룸에서 시작되었고, 몇 년 후 이사를 한 곳은 인근의 옥탑 방이었다. 짐이라고도 할 것도 없는 조촐한 이사였지만 혼자서는 서글픈 일이었다. 용달차에서 내린 짐을 옮겨 준 것은 친구들이었다.

“거기 일단 신문지를 깔자. 고춧가루도 팍팍 뿌려서 빨리 먹자. 배고프다.”

짐이 채 정리되지 않은 작은 집의 공간에서 서둘러 먹던 짜장면은 유년시절 부모님에 기대어 먹던 음식이 아니라 세상의 짐을 짊어진 어른이 먹는 음식으로 변모해 있었다. 가난한 청년도 부유한 장년도 이삿날은 공평하게 짜장면을 먹었다.


스마트폰이 출현하기 이전부터 짜장면은 배달음식의 대명사였다. 친구와 함께 했던 당구장, 연인과 머물렀던 공원은 물론이고 휴가지의 해변과 등산을 마친 산 아래, 심지어는 죄와 벌이 있는 유치장에도! 철가방에 담기기만 하면 대한민국 구석구석 닿지 않는 곳이 없는 마법의 음식이기도 하다.


이 매혹적인 음식은 화교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화교는 한국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는 중국계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최초의 화교는 1882년, 청나라 군대와 함께 들어온 40여 명의 상인이었다. 이후 중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를 피해 더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으로 유입되었다. 가난한 국민들의 삶은 국경과 이념을 넘어 늘 고달프다. 화교의 숫자가 증가하자 세계 곳곳에 있는 차이나타운과 같은 거리가 인천에도 조성되었고, 이 거리에 위치했던 공화춘 (등록문화재 제246호)에서 짜장면이 시작되었다. 공화춘은 무역상에게 숙박만 제공하던 곳이었는데 손님이 늘기 시작하며 음식을 찾는 이들도 생겨났다.


“배가 고픈데, 간단히 먹을 것 좀 없소?”


손님들의 요구에 공화춘에서는 춘장을 기름에 볶아 국수에 얹어 팔기 시작했다. 오늘날 짜장면의 조상이 탄생된 순간이다.

“여기 음식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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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글을 쓰고 때때로 방송과 강연장에서 말을 하며 살아가는 낭만 아조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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