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내 인생 영화 중의 하나인 첨밀밀을 TV를 통해서 봤다. 인생에 초점이 속도에 있었을 때는 한 번 본 영화나 책을 다시 읽는 행위에 대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읽어야 할 책과 봐야 할 영화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인생의 초점을 방향에 두게 되면서 책장의 손때 묻은 책을 다시 꺼내 읽고 좋았던 영화도 다시 보고 있다.
영화 속 장만옥과 여명은 여전히 20대인데 나만 5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20년만에 다시 본 첨밀밀은 여전히 좋았고, 그 덕에 내 인생의 영화를 돌아보게 되었다.
영화 시네마천국을 극장에서 본 게 중학교 3학년인지 고등학교 1학년인지로 –남들이 보면 싸우는 톤으로 - 고향친구들과 오랜만에 신나게 떠들었다. 늘 차분함을 유지하는 찬동이가 검색 창을 열었고, 1990년 7월에 개봉한 영화임을 확인했다.
1990년 4명의 시골 고등학생들은 시네마 천국과 동시상영중인 OO부인을 보기 위해 가슴을 졸이며 극장으로 들어갔다. 우리의 관심은 오직 다음에 상영되는 OO 부인이었고 막 시작된 시네마 천국의 배경이 이탈리아인줄도 몰랐다.
“뭐냐? 영어 아니네?”
방화(?) 아니면 할리우드 영화만 있는 줄 알았던 우리는 호기심에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모두가 그랬듯이 시네마 천국에 매료되고 말았다. 영화의 엔딩장면을 수 놓은 키스씬을 통해 남녀의 육체적 접족이 아름답고 고결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도 감동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춘기 소년들은 OO부인을 과감히 포기하고 극장을 나섰다.
1997년!
제대를 하고 나니 IMF로 인해 세상이 잿빛으로 변했다. 내 청춘의 앞날 또한 출구 없는 터널에 놓인 고물 차 같았다. 책과 비디오를 보며 잠들지 못하는 밤을 달래다 비트를 보게 되었다. 영화란 자기의 상황과 맞물릴 때 더 몰입하게 마련이다. 정우성의 외모가 내 외모와는 전혀 맞물리지 않지만, 방황하는 청춘이라는 공통분모는 분명히 있었다.
비트를 보고 방문을 여니 새벽 3시. 삐삐 안내음을 정우성의 내레이션으로 바꾼 후, 자전거를 끌고 고향의 아스팔트를 질주했다. 인적 없는 시골의 2차선 도로 위를 오토바이를 탄 정우성이 된 것처럼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두 손을 놓은 채로……
복학생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S와 비포 썬 라이즈를 보았고, 맥주를 마시러 갔다. 술이 약한 나는 맥주 500을 마시고 20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저기……우리도 영화 속 제시와 셀린처럼 각자의 친구에게 전화로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장면을 재현해 볼까?”
지금의 내가 그 때의 나를 만났다면 맥주잔으로 내 머리를 쳤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떠하랴 나는 20대였고, 사랑의 묘약이라는 술까지 마신 상태였다.
그녀가 웃었고, 나는 술 기운을 빌어 손으로 전화 모양을 만들어 욱제에게 전화를 거는 시늉을 한 후, 독백을 시작했다. 내가 요즘 매일 이야기 하던 S와 영화도 보고 맥주를 마시며 꿈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곧 고백 할거라는 말을 S를 앞에 두고 지껄였다.
그 날 이후로 그녀와 나는 극장에서 타이타닉과 쉬리까지 쭈욱 함께 보는 사이가 되었다.
29살의 나이에 떠난 캐나다 어학 연수 6개월이 지나자 향수병이 시작되었다. 식탐이 많은 나는 한국의 음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살을 앓았다.
홈스테이 집에서 파티가 열린 날 두툼한 스테이크는 허기만 증폭시켰고, 고추장에 고추를 찍어 먹으며 캐나디언의 박수를 받고 있자니 한국 음식이 더욱 그리웠다. 자장면! 자장면과 순대만 먹을 수 있다면 많은 걸 포기하거나 희생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캐나다에서 귀국 하는 날 점심은 중국집, 저녁은 김떡순으로 만찬을 즐겼다.
음식 다음으로 한국의 영화가 그리웠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한국영화의 흥행신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는 엽기적인 그녀를 빌려 친구들과 모여 앉았다. 불과 몇 개월 만에 화면을 통해 본 한국의 거리를 넋을 놓고 보았다. 급기야 차태현이 술집에서 소주를 마시는 장면에서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나의 20대가 타국에서 엽기적인 그녀와 함께 종료되었다.
농구선수라는 꿈이 있었지만 직업으로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스스로의 판단 하에 포기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왔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건가? 한 번뿐인 인생을 내가 하고 싶은 길이 아닌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일을 생각 없이 가도 되는 건가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그런 감정들은 현실을 핑계로 슬며시 밀쳐 놓았다.
그리고 43살이 되던 해에 뒤통수를 맞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나에게만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터졌다. 회사에서 한직으로 좌천을 당했다. 힘들었지만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좌천 되었지만 인생에서 좌초되지 않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인 글 쓰기를 시작해보기로 했고,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의 월터처럼 상상만 하던 일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당신의 상상이 현실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은 하나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그냥 해! Just do it
두 번째 책이 출간되고 취향이 비슷한 후배의 추천으로 개봉한지 20년 가까이 지난 밀리언 달러베이비를 봤다.
32살에 권투선수에 도전하는 주인공에 43살에 글쓰기를 시작한 내 모습이 투영되어 몰입하게 되었다. 그녀와 내가 늦은 나이에도 주위의 무관심 아니 비웃음에도 시작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권투를 하고 글을 쓰는 시간만은 나의 우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아르바이트로 삶을 이어가는 웨이트리스도, 내일 잘려도 이상하지 않은 김차장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당당히 맞선 파이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행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었고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사회적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보았기에 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 없는 생을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