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
<글 소개>
유일한 무기였던 청춘검은 녹이 쓸고 이가 빠졌지만, 퇴근길에서 전설속의 자아를 찾아가는 회사원 김팀장의 성장소설입니다.
마흔을 앞뒀지만 여전히 솔로인 송과장과 마흔을 훌쩍 넘겼지만 딩크족으로 살아가는 김팀장은 대회의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시무식을 기다리고 있다. 둘은 한 팀이지만 지방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닮은 구석이라곤 없는 단짝이다. 충청도가 고향인 송과장은 상사에게는 직언을 후배에게는 늘 웃는 낯으로 대하며, 핵인싸로 재직 중이다. 반면 경상도 출신의 김 팀장은 송과장을 제외한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또는 어울리지 않고) 일만 하는 캐릭터이다.
사장이 대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인사팀장이 간사한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우렁찬 목소리로 외친다.
“일동기립”
모두의 예상을 깨고 연임이 되어 기분이 몹시 좋아 보이는 사장은 신년사를 위해 기운차게 연단에 오른다.
“씨발. 이러다 내년엔 애국가 부르겠어요.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이 엄숙한 분위기 어쩔!.”
송 과장의 낮은 지저귐에 상관없이 사장의 일장 연설이 시작 된다.
“여러분은 왜 구글 직원처럼 일하지 못합니까?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나와 여러분 중 누가 더 이 회사에 오래 다니겠습니까? 바로 여러분입니다.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 하세요.이 회사가 여러분 거라고 생각하면 근무시간에 노닥거리고, 인터넷 하겠습니까? 본인은 이번에 연임이 확정되면서 회장님께 내 회사처럼 생각하고 일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왔습니다.”
신정연휴 다음 날 계열사의 사장들은 그룹본사로 출근하여 회장님을 알현하고, 각 계열사는 그 다음날 시무식을 자체적으로 하고 있었다. 둘이 근무하는 회사는 계열사 중에서 매출이 가장 낮다. 새로 부임하는 사장들은 직원의 복지와 5년 장기계획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단기간 내에 장부상의 이익을 만들어 잘 나가는 계열사의 사장으로 가기 위한 간이역정도로 생각한다.
“지랄하네. 씨발! 회사가 구글이 아닌데 어떻게 구글 직원처럼 일을 해. 사장 새끼들은 시무식 연설문 다 공유하나봐요. 존나 창의성이 없어요. 주인이 아닌데 무슨 주인의식을 가지래. 지나 우리나 같은 종놈이면서!”
송과장이 입에 걸레를 물고 새해 첫날부터 사장을 향해 쥐 죽은 듯이 낮은 소리로 맹렬하게 뒤 담화를 하는 동안 김팀장은 지난 20여년의 시무식을 떠올려본다.
사원, 주임을 거쳐 대리 때 까지만 해도 시무식 날은 의욕이 넘쳤으며, 나와 회사를 위해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이 열흘은 유지되었다. 또한 사장이나 임원이 된 사람들은 머가 달라도 다른 이들이며,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훌륭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프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팀장이 되어 돌아보니 진짜 프로는 드물었고, 자신의 영달에만 신경 쓰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냉혹하지만 성공한 샐러리맨이라고 칭송했다. 그는 마침내 회사에는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이 있을 뿐이고, 입에 걸레를 물어봐야 현실은 변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사장은 기획팀에서 준비한 모양만 그럴싸한 차트와 이해하기 힘든 숫자가 난무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실적부진의 원인을 오직 직원들의 무능함과 나태함으로 몰았다.
“그래서 올해도 연봉은 동결입니다. 올해는 여러분들이 제발 구글 직원처럼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여 내년에는 반드시 연봉이 오를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올 한해만 더 허리띠를 조이고 함께 고통을 분담한다면 내년에는 반드시 연봉인상이 될 겁니다. 여러분 힘든 거 내가 다 압니다. 우리 다 같이 파이팅 합시다.”
직원들은 연봉동결 소식을 점심메뉴가 김치찌개에서 부대찌개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며 사장에게 박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