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열두 달 2월-1

by 김재완

2월의 첫 째 주 화요일은 알코올중독이 분명한 박상무의 제물로 김팀장과 재경팀장이 참지와 함께 올려졌다. 박상무는 법인카드를 개인용도로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 대신 초과예산을 과도하게 사용한다. 그래도 임원진 중에서 유일하게 업무용으로만 사용하고, 영업실적도 좋아 사장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 늘 미간을 좁힌 채 인상을 쓰고 다니지만 사원급 직원들과 파스타 점심 회식을 하고, 임원들 누구에게도 줄을 대지 않거나, 대지 못한 팀장들을 따로 불러 오늘처럼 저녁을 사주기도 한다. 시대에 맞지 않게 상대방에게 술을 권하고 말을 너무 많이 하긴 하지만 다른 임원들과의 술자리보다 마음은 편하다. 다만 다음 날 귀와 속이 아프다. 첫 잔부터 폭탄주를 마시는 박상무와 달리 김팀장은 좋은 안주에 전통주를 곁들이는 걸 좋아한다. 금요일 저녁 솜씨 좋은 아내가 해준 요리에 한산 소곡주 한 잔으로 행복과 풍류를 만끽하는 타입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둘이 이직까지 함께 한 것은 회사에서 맺은 인연이기 때문일 것이다.


“야! 김팀장! 너 인마 내가 저쪽 회사에서 대리 때부터 쭉 지켜봤는데, 원래 말도 잘하고 직원들하고도 잘 어울렸잖아. 근데 이직하고 팀장 달더니 말수도 줄고, 사람들하고도 안 어울리고 왜 그래? 너 설마 팀장이라고 가오 잡냐?”

삼십분 새 폭탄주 세잔을 연거푸 마신 박상무의 목소리는 단독 룸을 넘어섰고, 술을 따르는 손은 이미 떨리고 있었다.

“팀장 나부랭이가 무슨 가오를 잡습니까! 그냥 회사사람들이 무서워요. 상사는 지랄할까봐 무섭고, 밑에 애들은 무시할까봐 무섭고, 동료는 뒤통수 칠까봐 무서워서요. 나이 드니까 회사에서는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

“야 이씨! 누구는 회사가 재미있어서 다니냐? 이 새끼 이거 약해빠졌네. 너 그런 약한 생각으로 임원 달겠냐?”

“저는 일 안하고 사내 정치하고, 동료들 가슴에 피멍 들게 한 대가로 다는 게 임원배지라면 안 달아도 상관없습니다.”

“지랄하고 있네. 지 혼자 고고한 척. 그럼 회사 관둬. 인마!”

“관두고 싶어요. 근데 먹고 살아야 해서 다니는 겁니다. 팀장님은 안 그러세요?”

입사 한지 3개월째인 재경팀장은 말수가 적은 건지 박상무 눈치를 보는 건지 별말 없이 넙죽넙죽 술만 받아먹는다. 안주 빨을 안 세우는 걸 보니 회를 싫어하거나 술꾼임에 틀림없다. 회식자리는 또 다시 트렌드에 맞지 않게 2차까지 이어졌다.

“그만 일어나시죠. 상무님! 저희는 내일도 실무 해야 하는 팀장 나부랭이입니다. 그리고 오늘 금요일 아니고 화요일입니다.”

“야 씨! 빠져가지고! 3차 안가고? 집에 간다고? 넌 애도 없는 새끼가 머 한다고 맨날 퇴근하면 집으로 가냐? 아참! 애 있으면 퇴근 더 늦게 하지. 흐흐흐. 아? 근데 아직도 화요일이냐?”


대리기사를 불러 박상무를 보내고 나니 아직도 광역버스와 지하철이 다니고 있었다. 택시를 타면 집에 30분은 일찍 도착 할 테고 몸도 편할 것이다. 하지만 광화문 사거리에서부터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로 진입하고도 한 참을 북진하는 동안 택시미터기를 보면 마음이 불편할 게 뻔하다.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택시를 번갈아보며 시간을 벌 것이냐, 돈을 절약할 것이냐 로 고민하는 동안 광약버스가 눈앞에서 지나갔다. 결국 지하철로 향하며 김팀장은 아내에게 전화를 해 택시와 BMW중 고민을 하다 광역버스를 놓쳤다는 넋두리를 한다.

“아니 먹는 데는 돈 안 아끼면서 택시비는 왜 그렇게 아껴! 집에 와서 씻고 나면 1시는 될 텐데, 그냥 택시 타고 오지. 암튼 못 말려. 취한 거 아니지? 계단 조심하고. 조심히 와요.”

2년 사이에 5억이 오른 서울에 아파트를 가진 재경팀장의 택시는 이제 곧 집에 도착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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