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 연말정산
다음날 아침 김팀장은 좀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몇 번째 끈 알람인지 잊은 지 오래다. 아직까지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걸 보니 약간의 여유가 있다. 숙취 때문에 머리도 깨질 것 같다. 늘 그렇지만 회식 다음 날은 더 출근하기 싫다. 그는 16년 개근상이 몸에 DNA로 자리를 잡은 탓인지 20년 가까운 회사 생활동안 지각이나 무단결근 한 번 없었다. 나이가 들면, 팀장이 되면 출근도 덜 힘들고 하루 쯤 편안한 마음으로 결근도 하며 살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직 다음 알람까지 5분의 시간이 더 있다. 왜 좋아하던 음악도 알람 음으로 사용하면 싫어지고, 주말에는 알람 없이도 눈이 떠질까? 또한 어찌하여 대저택도 아닌데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가기가 이리도 힘든 것일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3분을 더 보낸다. 이제 출근할지 알람을 끄고 미친척하고 처 잘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 막상 회사를 안 간다고 결심하면 잠은 달아날 것이고,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다 보면 집에서 퇴근 시간을 맞이하며 후회를 할 게 뻔하다. 며칠 되지도 않는 휴가를 그렇게 날릴 순 없다. 침대에서 분연히 일어나려고 결심을 굳힌 순간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여보! 이제는 일어나야 해!”
결혼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20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쫓기던 퇴직을 한 아내는 엘리베이터 앞에까지 나온 것도 모자라 창문을 열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보니 없는 힘도 솟아나는 것 같아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그러나 비슷한 표정을 한 채 버스를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면 출근도 안했는데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왜 살아야하는 지 이유도 모르는 하루가 시작된다.
지하철역 앞 단골집에서 커피를 사들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옆 사무실이 아침부터 시끄럽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눈치 빠른 송과장이 자초지정을 들려준다. 베이비부머세대 남자 부장이 모든 부서원에게 8시까지 출근을 지시했다고 한다. 다른 팀원들은 기업이 바라는 이상적인 회사원의 모습을 충실히 연기하며 다른 부서보다 1시간이나 일찍 출근했다. MZ세대인 막내직원은 부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유일한 직원이었다. 한 달을 지켜보던 부장은 근무 기강과 단체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언성을 높였고, 막내 직원은 시대의 변화와 개인의 사생활을 역설하며 부장의 괴변에 맞섰다.
“부장님! 사규에도 분명히 9시 출근이라고 나와 있고, 회사차원에서 내려온 지침도 아닌데 부장님이 무슨 권한으로 이러시는 건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머!? 부장의 권한으로 그런다. 너 일 없으면 맨날 칼퇴근 하잖아. 한 시간 일찍 나오는 게 그리 대수냐?”
“일 없는데 왜 퇴근을 안 해요? 부장님도 퇴근 하세요. 저는 회사 일 외에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아침엔 주짓수 체육관 가고, 퇴근 하면 미술 학원 다녀요. 24시간을 회사원으로 살고 싶지 않아요.”
“예지 너! 회사에서 월급 받고 살면서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어?”
다른 세대의 상이한 가치관이 충돌했고, 고성이 오가며 결론도 없이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송과장이 자리에 앉으며 김팀장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어제 애들이랑 예지씨랑 술 한 잔 했어요. 오늘 그만 둔다고 하내요. 팀장님은 옆방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팀장은 사내시스템에 비번을 세 번째로 입력하며 대답한다.
“주인보다 무서운 게 직분이 가진 책임을 넘어서서 일하는 충실한 마름이야. 예지씨랑 점심이라도 먹자”
점심을 먹고 자리로 돌아온 송과장은 스마트폰으로 월급을 확인하고, 그 모습을 본 김팀장은 은행홈페이지를 열어 공인인증서로 로그인을 한다. 2월 달은 연말 정산된 금액까지 입금되어 일 년 중 입금액의 앞자리가 바뀌는 유일한 달이다. 김팀장은 매달 이 금액이 입금되면 대출금도 조금 더 빨리 갚고, 전무한 노후대비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겠다며 입맛을 다신다.
“팀장님! 삼성 다니는 애들은 매달 이 정도 월급 받겠죠? 기분이 어떨까요? 암튼 우리한테는 이 월급이 마약이고 힐링 그 자체입니다. 참, 팀장님 후배 분이 하는 먹태집은 괜찮데요? 어제 뉴스 보니까 먹태에서 이물질인지 먼지가 나왔다고 하던데요?”
김팀장이 군 입대 전만해도 9급 공무원은 인기직종이 아니었으며, 기업은 본인이 그만 두지 않는 이상 평생 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자영업자 또한 성실히 노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따르기도 하는 납득이 가능한 세상이었다.
IMF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낯설기만 하던 계약직이라는 단어가 일상이 되었고, 줄어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낙타들은 제 살을 깎아야만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기술은 발전하고 문명은 진보하는데 왜 생활은 퇴보하는 걸까? 김팀장은 나이가 들수록 겸손해 지는 것이 아니라 궁금한 것이 많아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게 된다.
김팀장은 단축번호 1번을 누르며 사무실을 나간다.
“여보! 오늘 소고기 먹으러가자.”
가방이나 좋은 차, 큰 집에 욕심을 내지 않는 아내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김팀장은 파이낸스 센터에 분위기 좋은 스테이크 집에 가자고 말한다. 그러나 아내는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양을 먹을 수 있는 대도식당이 가고 싶다고 한다.
“분위기는 다음에 내요! 예전에 법카로 얻어먹던 대도식당이 갑자기 가고 싶네. 회사 다닐 땐 회식이 그렇게 싫더니.”
전화를 끓은 김팀장은 회사 건물 아래 편의점으로 내려가 로또를 산다. 1등이 아니라 2등이라도 당첨되면 아내에게 샤넬 백을 꼭 사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