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터박스 Jul 09. 2021

이번 생은 8남매의 둘째입니다.

#3. 아픈 손가락 ( 쌍둥이 셋째): 만남은 짧지만 기억을 기억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2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병원에 대한 공포를  이 드라마를 통해 극복하고 있습니다.


셋째둘째인 쌍둥이 동생입니다  교동 마님 할 때 산통이 시작되어 밤 9시에 태어났고 무려 새벽 2시에 셋째가 태어났으니 엄마는 그때까지 산고가 얼마나 심했을지 출산 경험이 없는 저는  마음속으로 가늠해 볼 길이 없습니다.



셋째는 20대 중반 이른 나이에 결혼과 출산을 했습니다.

젊고 건강한 산모였죠.

기형아 검사며 모든 검사에서 정상이었고 건강했던 아이가  태어난 날 잘못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산부인과에서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제 첫 조카는 병명도 제대로 갖지 못한 발달 장애 아이가 되었습니다.


장애  아이의 엄마가 다 그렇듯(지켜보니 정말 다 그렇습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제 몸이 부서지는 것도 모르고 안고 업고 뜁니다.  

앉아 밥 먹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결혼 전 날씬하고 누구보다 예쁘게 꾸미기를 좋아했던 셋째는 출산 후부터 병원 생활을 하느라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했고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자신이 산후우울증이 온지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골다공증이 심해지고 치아는 벌어지고 셋째는 제 몸이 망가지는 것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슬의 생 2  1비와 당신을 보고 셋째에게 다시 가은 엄마라고 불러줄 용기가 생겼습니다.

작년  우리 첫 조카 가은이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주 아기였을 때는 스스로 기고 앉고 했는데 몸이 커지면서 가은이는 앉는 걸 하지 않았습니다. 몸이 자라면서 다리 발달이 더뎌지고 골반이 무너져서 앉아있으면 통증이 느껴져서인데 말을 못 하는 아이인지라 찡그리고 싫은 내색을 하면 엄마인 셋째는 용케 다 알아듣고 편히 뉘어주고 하더라고요.  

 코로나로 인해 수술이 연기되고 미뤄지면서 가은이에게 기회가 와서 고관절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수술을 말렸습니다. 할머니께서 고관절 수술을 받으시다 돌아가셨거든요. 주변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고관절 수술을 받고 잘 성장하는 모습을 본 셋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어 했습니다.  수술 후 깨어나 바나나 먹고 있단 소리를 가족 단톡방에서 확인했는데 바로 그날 새벽에 가은이는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황에 울음도 안 나오더라고요.


제 핸드폰에는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조카를 보면서 찍어둔 동영상이 있습니다. 잠자듯이 예쁘게 누워있습니다. 하얗고 고운 얼굴... 살아가는 게 비현실적인 순간입니다.


장례식장은 에너지가 하루 종일 바닥에 낮게 깔려있었습니다. 그 적막을 깨는 건 역시 은수 은강이.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 그 기운이 우리를 이끕니다.

늦은 밤부터 늦은 새벽까지 셋째의 동지들이 한 두 명씩 조를 짜서 조문을 왔습니다. 모두 발달장애 아이들 둔 엄마들입니다. 그들의 위로만이 셋째에게 유일한 위로였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례식 이후 가족 단톡방에선 가은 엄마라는 호칭 대신 셋째의 이름을 직접 불렀습니다. 가은이를 잊고 산 사람은 살아가야 하니까요.

가끔 집안 물건 어딘가에서 가은이 흔적이 나오면 그걸 끌어안고 울고 있는 셋째를 마주하기도 하고 우진학교 선생님들이 가은이를 기억하고 안부를 물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그들의 위로가 셋째를 다독여서 고맙기도 했지만

애써 잊고 잘 살아가는 셋째에게 가은이의 부재를 각인시키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슬의 생 2 1화 비와 당신을 보면서 반성이 되었습니다.


" 남들은 아픈 일인데 빨리 잊으라고 하는데..

우리 연우 빨리 잊고 싶지 않아요. 세상에 너무 잠깐 있었던 아이잖아요. 저라도 우리 연우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요 선생님"


셋째가 하는 말 같았습니다. 가은이 엄마로 오래오래 기억되고 싶을 텐데 우리가 너무 가은이 이야길 못하게 압박감을 준건 아닌지.


매주 꽃 한 송이 들고 가은이 납골당에 다녀오고 그때마다 카톡 프로필에 새 꽃 사진이 올라옵니다.

보고 싶은 마음에 온 몸이 아프다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구나


시간은 참 빠르다 아직 내 옆에 있는 거 같은데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잡고 싶어도 붙잡아지지 않아서 힘들어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고 싶다. 보고 싶어서


지난 1년간 셋째 카톡 프로필 메시지입니다.

얼마나 가은이가 보고 싶을까요.

얼마 전부터는 굳은 의지를 보이며 자신의 삶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은 자신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피를 나눴고 한배에 태어난 쌍둥이이지만 아픔은 온전히 셋째만의 몫입니다. 이 서글픈 삶 앞에서 매일 번뇌하지만 또한 번뇌 끝에 별게 없다는 걸을 압니다.


같이 있는 시간 지금 이 순간,

짧은 이 찰나에 함께 하였음을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가은이를 보고 싶어 하는 셋째에게

제든 커피 한잔 마시면서 툭툭 이야기 꺼내도 좋은 편안한 기족이길 바라봅니다.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첫 조카는 하얗고 고운 얼굴로 있으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이번 생은 8남매의 둘째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