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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 떨림 Dec 21. 2021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그림책

- 결국 모든 관계의 시작은 자기자신 




1.


  언젠가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는 건 죽은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무서운 일이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 대략 런 내용었죠. 남자와 여자가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그림도 있었어요. 그 글에 격하게 공감한다고 했더니 L이 많이 안 좋게 헤어졌냐고 묻더군요.


  "큰 사건은 없었지만 좋지 않았으니 헤어졌겠죠. 그런데 지금은 그들에게 감정은 없어요."  


  제 대답에 L 고개를 갸웃하면서 감정이 없는데 왜 게까지 싫어하는지 모르겠다고 습니다. 그 말에 저도 왜 그런지 이상했어요. 감정이 없다는 게 진짜인지, 아직도 그들에게 미련이나 미움이 남아있는 건지 생각했죠. 좋았던 날, 서운했던 날, 가슴이 벅차오르며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날, 울면서 이별을 고하고 다시 매달렸던 날이 스쳐갔지만 정말 그들을 향한 마음은 남아있지 않. 더군다나 함께 잘 살고 있는 남편이 있는 걸요. 그런데요, 옛 애인뿐 아니라 다시 만나기 두려운 사람이 몇 명 더 떠오르더라고요. 그들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많이 옅어졌고, 그중 누군가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도 '다시 만나면'이라는 가정만으로도 덜미가 싸해졌죠.


  대체 왜 그럴까, 했는데 오래 지나지 않아 답을 찾았습니다. 바로 그때의 제 모습 때문이에요. 이제 그들은 끊어진 인연이고, 더는 제 머리와 마음을 흔들 수 없어요. 그런데 그때의 제 모습은 여전히 저를 붙잡고 있군요.



2.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을 읽는 내내 관계에 서툴고, 스스로에게 충실하지 못한 제가 보였습니다. 잘못된 방향에서 애를 쓰고, 좌절하고, 회피하고, 차단하고, 누르려고만 했던 제가 명해졌지요. 마음은 억울한데 저를 몰아세우고 다그치던 그때가 떠오르자 L과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때 저는 환경이나 상대 탓을 하면 비겁하나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다 제 잘못인양 죄송하다는 말만 했습니다. 착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욕망을 누른 채 상대가 원하는 대로 했고, 갈등을 피하고 싶어 아니었는데도 동조했습니다. 억압했던 감정은 기어코 튀어오더라고요. 본질은 피한 채 다른 부분에서 떼쓰고 조르고 억지를 부리는가 하면 정확한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지 못한 채 내 기분이 이렇다고만 반복했지요.


  늘 피해자 마인드로 살다가 어느 날, 저도 그들에게 상처와 피로를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았 거죠. 그들은 없어져야 할 제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들을 통해 그때의 저를 상기하 안 되잖아요.



  우리는 모두 자두를 통째로 삼킨 강아지처럼 살아갑니다. 누군가가 주는 상처가 뾰족한지도 모르고 꿀떡 삼키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처가 점차 본색을 드러냅니다. 덮여 있던 과육이 사라지고 자두씨만 남듯, 말과 행동의 포장이 사라지고 뾰족한 실체만 남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을 찔러서 피가 나고 고름이 나게 하지요.  

(중략)

  또 우리는 강아지에게 자두를 먹게 한 저처럼 살아가기도 합니다. 참 무지하게도, 자두가 누군가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악의 없이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건네고,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합니다. 한번 한 말과 행동은 되돌릴 수 없는데도 멈출 줄을 모릅니다. 자신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가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시름시름 앓느냐며 오히려 상대방에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 -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은 작가의 경험, 드라마, 소설, 영화, 인터뷰 등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심리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감과 찔림에 소리 내 웃, 뜨끔해서 탄식을 내뱉, 미처 깨닫지 못한 내용에 감탄했습니다.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도 식상하다는 느낌보다는 괜찮다는 위로와 잘할 수 있다는 응원을 받은 기분이었죠.   

 

  사실 목을 보면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없었습니다.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이래야 한다는 뻔한 내용의 책일 거라 미리 짐작하고 비웃었습니다. 제 의지로 선택한 주제가 아니라 다른 이의 욕구로 주어진 주제였기에 더 그랬죠. 누군가를 첫인상만 보고 다 안다고 착각했던 것처럼 이 책 역시 읽어보지도 않은 채 제 마음대로 판단했습니다. 프롤로그를 읽는데 이 책을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죠. 또 섣부르게 결론을 내린 뒤에 후회하고, 변명했어요.


  물론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연한 거죠. 너무나 복잡하고, 얄궂고, 다양하고, 시시 때때 변하는 그  마음을 어떻게 책 한 권으로 알 수 있겠어요. 다만 이제는 저를 이해하고, 제 마음을 다독여주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 지금 제 옆에 있는 당신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졌지요.



3.



"말도 안 돼! 날보고 더 이상 어쩌란 말이야.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난 세상에 다시없는 친절한 곰이라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던 친절과 배려가 어느 순간부터 억지와 피곤이 될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하는 게 좋았지만 상대가 점점 선을 넘으면 힘들어지죠. 그럴 때는 자신의 욕구와 불편한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근데 그게 참 어려워요. 『곰씨의 의자』 곰씨처럼 말이죠.


  곰씨는 의자에 앉아 시를 읽고,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합니다. 그날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커다란 배낭을 멘 토끼가 곰씨의 앞을 지나갑니다. 곰씨는 탐험가 토끼가 잠시 쉴 수 있도록 의자를 내어줍니다. 그때 무척이나 슬퍼 보이는 무용가 토끼가 지나갑니다. 조용히마을에 살던 무용가 토끼는 깡충깡충 춤을 추었다고 마을에서 쫓겨났지요. 탐험가 토끼는 무용가 토끼를 위로하고, 그 둘은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태어나고 또 태어납니다. 이제 곰씨는 의자에 앉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없습니다. 토끼들이 매일 찾아와 곰씨에게서 떨어지질 않거든요. 즐거운 토끼들과 달리 곰씨는 웃을 수 없습니다. 토끼들에게 가끔은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해야 하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네요. 곰씨는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토끼들이 의자에 앉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번번이 실패하고 말지요.   


  곰씨는 자신을 '다시없는 친절한 곰'이라 규정합니다. 친절한 곰이기에 자신을 찾아오는 토끼들에게 혼자 있고 싶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토끼들에게 나쁜 곰이 되면 안 되잖아요. 아무도 앉지 못하게 의자에 똥을 쌀지 언정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는 없죠.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에서는 욕구를 대변에 비유했습니다. 대변이 마려운 사정과 대변을 보는 모습 숨기고 싶지만 대변 자체를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다면서요. 욕구도 마찬가. 대변을 참고 참고 참으면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듯이 욕구도 참고 참고 참으면 애써 숨겼던 추한 모습이 튀어나올 수 있니다. 그렇기에 대변도, 욕구도 문제가 생기기 전에 해결해야 지요. 다른 사람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멋있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어 욕구를 감추다 보면 좋은 사람은커녕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도 되지 못한답니다. 오히려 이상하고 어리석고 피곤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저처럼 말이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좋은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했지만, 남들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지요. 결국 저다운 삶도 살지 못하고, 인정받는 삶도 살 수 없었습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데, 제가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괴리감에 괴로웠습니다. 착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갖진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기준이 되는 것들은 타인의 시선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우리는 여기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며 살아가게 됩니다.

-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 -




"이 모자로 골랐어."
"아냐, 이 모자가 더 잘 어울려. 이걸로 해."

  모모는 바나나 우유를 좋아합니다. 야구도 좋아요. 모모의 색은 노란색입니다. 모모에게는 토토라는 단짝 친구가 있습니다. 토토는 당근 수프를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 토토의 색은 주황색이. 모모는 토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참 잘 압니다. 그래서 토토에게 더 멋진 자동차 장난감을 골라주고, 더 잘 어울리는 모자를 씌워줍니다. 게다가 모모는 자기의 마음도 적극적으로 표현한답니다. 하트 모양의 풍선을 선물로 주고, 토토의 몸만큼이나 커다란 꽃다발을 안겨주기도 하죠. 그런데 토토는 모모랑 놀지 않겠다고 하네요.



 우리는 착각합니다. 내 생각이 가장 평범하고 상식적이라고 믿고, 나의 선호가 보편적인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내가 하는 말에 당연히 남들도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지요. 이런 착각을 심리학에서는 '거짓 일치성 효과'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또는 모두가 일치된 생각을 할 것이라는 오해라고 할 수 있지요.
(중략)
  우리는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거라는 착각 속에 살기 때문에,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이 틀렸다고 단정 짓게 됩니다. 내 생각이 옳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니, 너 또한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충고로 포장한 비난을 하기도 하지요. "내가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서운해하지 말고 들어"라는 말로 물꼬를 트고 이내 상처가 되는 말을 쏟아냅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얼굴을 보고 잔소리를 하고, 인터넷 세상에서는 모니터 뒤에서 조언을 가장한 악플을 달게 되는 것이죠.
(중략)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마치 그 의견이 옳고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거부감이 들지요. 하지만 다른 생각의 수용이 곧 그 의견에 맞춰서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 -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조망수용 능력'이라합니다. 초반 모모에게는 이 능력이 거의 없습니다. 모모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토토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자기에게 멋진 게 토토의 눈에도 멋질 거라고 판단하죠. 그래서 토토의 선택을 무시하 자신의 뜻을 강요합니다. 맘에 들지, 라는 물음은 질문의 형식을 빌린 확신의 언어죠. 친구를 위해서 한 모모의 행동이 토토에게는 강제와 강요가 된 셈입니다.


  『곰씨의 의자』의 곰씨처럼 토토도 자기의 욕구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진심을 우물거리거나 억지로 고맙다고 할 뿐이죠. 그러다 토토는 모모가 자기에게 줄 선물을 찾는 동안 너랑 놀지 않겠다는 쪽지만 남기고 떠납니다. 모모에게는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일이죠. 토토는 억눌렀던 자신의 욕구를 모모와 절교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오래 전의 저도 그랬어요. 저 역시 갈등의 원인을 해결하는 대신 그 대상을 끊어버렸지요. 뜬금없고 갑작스럽게요. 그래서 토토가 왜 그랬는지 충분히 알아요. 단짝 친구이기에 나와 너는 다르다고 말하기가 어려웠겠죠. 거절을 하면 안 될 것도 같고요. 모모의 강한 기운에 눌리기도 했을 거예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면 좋을 텐데 그럴 리가 있나요. 서운한 감정은 커지고, 나중에는 미우면서 미안하고, 고마우면서 부담스러워지죠. 진심을 전했다면 상대는 얼마든지 이해해줬을 텐데 왜 참기만 했을까요. 왜 참을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 그래야 한다고 믿었을까요. 기회는 있었는데 왜 또 피하고 차단했을까요. 저에 대한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토토에게 투사되어 이 친구가 예쁘지만은 않네요.


 


"얼굴이 왜 그러냐?"
"고양이가 사라졌어요."
"아, 나보단 낫네. 나는 모자랑 열쇠 꾸러미랑 말이 다 사라졌다고!"
 

  오랜만에 만난 A와 B가 갈등을 겪었습니다.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며 힘들다는 A를 향해 B가 배부른 소리라고 한 거죠. B는 A에게 그깟 게 뭐가 힘드냐며 비꼬더니 화를 냈습니다. 표현이 거칠고 무뚝뚝해서 그렇지 속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했던 B가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에게 날을 세우고 있더라고요. 퉁명스럽게 자신의 분노를 툭툭 던지는 B가 점점 부담스러워졌습니다. B는 자신의 사정과 속마음을 잘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자신이 겪고 있는 갈등의 일부를 내뱉습니다. 그럴 때면 분위기가 어색해지지요.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무슨 일인지 물어봤자 제대로 말을 해주지 않을 게 뻔하니 저를 비롯한 친구들은 형식적인 위로의 말을 하며 넘길 수밖에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의 <달콤한 레몬형 합리화> 부분을 읽는데 그림책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가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B가 연상됐죠. '달콤한 레몬형 합리화'는 얼굴이 찌푸려질 만큼 신맛이 나는 레몬을 달콤하다고 하는 것처럼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방어기제입니다. 결코 감사할 수 없는데 감사하다고 말하고, 힘든데도 괜찮은 척을 하는 거죠. 자존심에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정말 불행해지고 싶지 않아서 아닌 척하고 포장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곪는 줄도 모르고 말이에요. 레몬이 시다고 털어놓고 공감을 받으면 될 텐데 비웃음과 무심함이 돌아올까 봐 더 감춥니다.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의 브루는 사라진 고양이 때문에 슬픕니다. 자신의 아픔을 얘기하지만 누구에게도 공감과 위로를 받지 못합니다. 공감은커녕 그깟 일로 왜 그러느냐는 비난과 내가 너보다 더 불행하다는 분노를 듣습니다. 그들이 자기보다 더 슬프고 심각한 일을 겪는다고 생각하니 브루는 미안하고 위축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브루의 슬픔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개가 다가와 왜 그러느냐고 물었을 때, 브루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다시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 얼버무린 것일 수도 있고, 상대의 상황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했을 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판단했을 수도 있고, 고양이가 사라진 일을 하찮게 여기는 그들의 강압적인 태도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B를 생각합니다. B의 얘기에 온전히 귀를 기울인 적이 있는지, 이런저런 힘겨운 일을 겪은 B를 따뜻하게 위로해준 적이 있는지, 친구의 아픔이 무엇인지 제대로 물어본 적이 있는지, 진심으로 그녀의 고통에 공감한 적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내내 뜨끔하더군요. 강하고 공격적이었던 그 순간이 B가 가장 여리고 약한 순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때 적극적으로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는데 불편하고 부담스럽다며 멀리 했어요.  


  브루에게 화를 내며 내가 더 힘들다고 말한 그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거죠. 자신의 감정을 무시당하며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처지를 내세우고 주장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들 역시 누군가가 자신의 고통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길 간절하게 바라고 있겠죠.


  날이 밝으면 친구에게 전화를 해야겠어요.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으며 한 발 다가가 보려고요.  

 


  상처를 회복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힘들다는 것을 인정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공감이죠. "그랬구나. 정말 힘들었겠다." 이 한마디에 마음속에 굳어져 있던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 느껴본 적 있지 않나요? 그런데 이 반응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솔직하게 내가 먹은 레몬이 정말 시다고 털어놓아야 하는 것이지요. 자존심을 지키려고 내 레몬은 정말 달콤하다고 말하면서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독심술사가 아니니까요.
  물론 이야기를 털어놓으려고 해도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도 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 아무도 나를 위로해주지 않을 때, 망설이다 겨우 말을 꺼냈는데 오히려 무심한 반응이 돌아와 더 상처를 받을 때가 있지요. 하지만 이런 반응은 당신이 미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무심한 것은 각자의 삶이 치열하기 때문이지요. 그들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럼 어쩌라는 말일까요? 공감을 받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공감을 해줄 수가 없다니 말입니다.
  세상에 아무도 내 편이 되어줄 수 없는 상황에도, 여전히 내 편이 되어줄 단 한 삶이 있습니다.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 스스로에게만 솔직해져도 우리는 위로받을 수 있거든요.

-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 -



4.


  오랜 시간 오해하고, 착각했습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이해해야 하고,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어요. 나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게 '나만을 위하는 것'이라 착각했지요. 그래서였나 봐요, 겸손한 자세로 타인을 대하고 싶었는데 저를 하찮게 여기며 비굴하게 굴고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때면 하향 비교를 통해 우월감을 얻으며 타인의 삶을 마음대로 평가하고 판단했습니다. 역시 그 흔하고 식상한 말이 진리였어요.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상대를 알 수 없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는 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오랫동안 힘겨워한 끝에 저를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부족한 능력도, 부정적인 감정도 다 제 것이기에 끌어안아보자고 결심하고 있지요. 더불어 괜찮은 부분도 찾아보고 인정하는 중입니다. 어깨를 으쓱하며 씩 웃을 수 있는 구석이 저에게도 있더라고요. 여전히 아니었으면 하는 모습이 있지만 그때마다 저를 다독이고 있어요. 이렇게 몇 번 하면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더는 저를 미워하지는 않겠죠.


  그리고 이젠 과거의 저도 다독여보려 합니다. 조금씩 나아지려 애쓰고 있으니 응원하려고요. 그때의 제가 부끄럽다는 건 지금의 제가 성숙했다는 증거겠죠.


  아직 남아있는 그들에 대한 미움과 원망도 조금씩 내려놓으려 해요. 분명 속 좁고 복잡한 제 마음이 사실을 부풀리고 편집해서 미움을 만들었을 거예요.


  관계에 관한 책들을 통해 당신을 알고 싶었는데 저를 더 많이 보고,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저와 좋은 관계를 맺어보려고 해요. 당신 덕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서툴고, 미숙하고, 어리석은 우리가 함께 웃고 울 수 있어 감사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비 온 뒤 곰팡이 핀 지하실 같습니다. 비는 막을 수도 없고, 왜 오냐고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그 일은 이미 벌어지고 말았으니까요.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방치해두면 냄새가 날 겁니다. 지하실에 물이 스며들도록 놔두면 곰팡이가 더욱 심해지고 말 겁니다. 그러니 이제 곰팡이를 깨끗이 닦아내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밝은 색의 페인트로 벽을 칠하고, 예쁜 화분을 가져다놓는 거예요. 그 후에 전등도 달아 불을 켜면 더 좋겠지요. 그럼 어두웠던 방이 환해질 겁니다. 이미 상한 마음에 물을 주지 마세요. 상처가 무럭무럭 자라나도록 방치하지도 말고, 상처를 키우지도 마세요. 이제 그곳을 더 아름다운 것들로 덮어보세요. 향기로운 것들로 채워서 가꾸는 거예요. 어느 날 돌아보면 여러분의 마음이 아름다운 정원으로 변해 있을 겁니다.

-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 -

  


*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 신고은 지음, 포레스트북스 펴냄

* 곰씨의 의자, 노인경 지음, 문학동네 펴냄

* 모모와 토토, 김슬기 지음, 보림 펴냄

*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안 에르보 지음, 이경혜 옮김, 한울림어린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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