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의 떨림 Aug 28. 2020

<가지 않은 길이 후회되는 날> 가지 않은 길

- 이런 날 시 한 편

                                                               

<이런 날 시 한 편>의 '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날(day)이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나를, me)'라는 주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가지 않은 길이 후회되는 날> 가지 않은 길

아빠는 한 회사를 30년을 다녔다. 회사를 퇴직한 후에는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했고, 재개발로 동네가 사라지자 일흔이 넘은 지금은 경비를 보고 있다.  엄마 역시 재개발이 확정되기 전까지 의상실을 운영하면서 밤낮없이 일을 했다. 그 뒤에는 요양사 자격증을 따고는 그쪽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직장생활을 할 당시 아빠는 수당을 받기 위해 야간 근무를 자처했다. 그 때문에 아빠의 얼굴은 일주일에 한 번만 볼 수 있었다. 슈퍼를 운영할 때에는 손님이 없어도 밤 12시까지 문을 열어놓았고, 명절에는 잠깐 차례를 지내고는 가게 문을 열었다. 하루라도 문이 닫혀있으면 손님들이 떨어진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랐기에 어린 시절의 나는  한 직장에 오래 머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 외의 길은 없는 줄 알았다.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벌려면 밤낮없이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사회생활을 해보니 그게 얼마나 힘들고 버거운 일인 줄 깨달았다. 하루하루가 지겹고, 숨 막히고, 답답하고, 두렵고, 재미없었다. 조직 생활은 너무 버거워서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다. 어린 마음에 돈보다는 자유가 더 시급했다. 학교를 핑계로 2년 이상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고, 졸업을 앞두고 들어간 회사는 2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정착하겠다고 들어갔지만 내 길이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끝냈다.


그 뒤로 밥벌이 생활과 백수생활이 반복되었다. 일반 회사원, 학원 강사, 대필 작가, 방송국 작가, 시민단체 활동가, 도서관 사서 등등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다양한 일을 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이게 아닌데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가, 하는 회의가 늘 가득했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커서 어떻게든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야 안심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내 존재를 부정하면서 나를 못살게 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정착할 수가 없었나 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갈 수 없었던 길을 갈망했다. 그런데 요즈음은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한다. '정착의 길'에 대해 말이다. 엄마 말처럼 한 직장에 진득하게 붙어있었다면 어땠을까. 답답한 삶을 살고는 있겠지만 지금도 그리 시원시원한 삶은 아니니 뭐.


한 직장에 쭉 다녔다면 여기저기 이 일 저 일에 치여서 상처를 덜 받았을지 모른다.  새로운 환경과 일에 적응하기 위해 에너지를 덜 쏟았을 테고, 매번 이력서를 쓰면서 조마조마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승진을 통해 무슨 직급이든 하나는 달았을 테고, 얼마 되지 않은 돈이라도 꼬박꼬박 저축을 하면서 통장에 잔고가 늘었을 것이다. 이 놈의 회사 때려치우겠다고 마음을 먹다가도 월급과 수당이 들어오는 날짜를 계산하면서 꾹 눌렀을 것이다. 이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워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하루하루 피를 말리며 출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안정된 삶 앞에 번번이 좌절감을 느끼면서 불안한 일자리 정책과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을 원망하고 있을 수도 있다.


글을 쓰고 나니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이 사라진다.


지금 이 길에 가시만 있었던 게 아니었듯이 내가 가지 않은 그 길이 마냥 꽃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지나온 길에도 꽃은 피어났고, 향기가 풍겼다. 앞으로 가야 할 길에도 가시와 꽃과 열매와 자갈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꽤 멋있는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당신이 선택한 길에도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부드러운 흙과 맑은 물과 진한 초록색 나무가 당신의 길을 아름답게 할 것이다. 중간중간 가시밭길이 있지만 당신이라면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함께'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그러니 더는 가지 않은 길을 안타까워하면서 가야 할 길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으면 좋겠다.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 나 있어,

나는 둘 다 가지 못하고

하나의 길만 걷는 것 아쉬워

수풀 속으로 굽어 사라지는 길 하나

멀리멀리 한참 서서 바라보았지.


그러고선 똑같이 아름답지만

풀이 우거지고 인적이 없어

아마도 더 끌렸던 다른 길 택했지.

물론 인적으로 치자면, 지나간 발길들로

두 길은 정말 거의 같게 다져져 있었고,


사람들이 시커멓게 밟지 않은 나뭇잎들이

그날 아침 두 길 모두를 한결같이 덮고 있긴 했지만.

아, 나는 한 길을 또 다른 날을 위해 남겨두었네!

하지만 길은 길로 이어지는 걸 알기에

내가 다시 오리라 믿지는 않았지.


지금부터 오래오래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 택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