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 덮밥

by 소심한소소

이십 대 중반 뉴질랜드에서 보낸 시간은 지독히도 외로웠다. 대부분의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는 마음이 통하지 못했다. 처음 본 나에게 살갑게 구는 사람을 볼 때면 '서양인이라 스스럼이 없구나' 생각하기 전에 알찐거린다는 생각이 앞서 같이 웃어주거나 입을 여는 것이 싫었다. 홀로 이곳저곳 휘적거리며 걷다 보면 나도 모르는 길에 가서 닿기 일쑤였다. 이틀에 한 번은 길을 잃었고, 헤맸다.

그즈음 적은 일기를 보면 '꽤' 아프다 '꽤' 힘들다 라는 말이 자주 보였다. '꽤'라는 달갑잖은 부사 밖에 떠올리지 못할 만큼 미숙했고 그 시간을 담담하게 걸어가기엔 아직 어렸다.


자연스레 혼자 밥 먹는 날이 많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았던 그날. 그때도 역시 길을 잃어 헤매다가 처음 본 일본식 덮밥 집 앞에 닿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나무 테이블이 대여섯 개 놓여있고 나처럼 혼자 밥 먹는 사람 몇이 보였다.



いらっしゃいませ




이랏샤이마세. 내게 '어서 오라' 고 했다.

뉴질랜드에 간 이후 누구에게도 들어 보지 못한 것 같은 눈물 나는 인사.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았던 긴 시간이 인사 한마디에 그만 눈물로 터져 나왔다. 고소한 기름 냄새와 함께 앞에 놓인 돈가스 덮밥을 입에 넣지 못한 채 한참을 앉아 바라봤다. 이 밥을 이렇게 쉽게, 빨리 먹어 버려도 되는 걸까. 이 식당을 나가면 또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또 혼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 두렵고 서러웠다. 뉴질랜드라는 나라에 있는 일본 음식점. 까만 눈동자의 사람들. 식당 안에 앉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사연을 지녔을 것만 같다는 근거 없는 생각과 함께 아무도 해준 적이 없는 위로를 스스로 만들어 받았다.


왠지 모르게 밥알이 자꾸만 목에 걸려 밥을 반도 넘게 남겨두고는 밖으로 나왔다. 차게 식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길을 우산도 없이 오래도록 걸었다.

다시, 끝날 것 같지 않은 외로움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돈가스 덮밥을 먹을 때면 그날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스스로 선택한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하던 작고 덜 여문 마음. 긁고 긁어 나와 주변을 아프게 만들었던 뾰족한 마음으로 단단하게 뭉친 명치끝. 그 시간을 함께 걷던 사람들을 외면하고 안아주지 못했던 모난 마음.


시간이 지나 불혹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어리고 미숙해서 그날의 돈가스 덮밥을 먹고 싶어 지는 날이 있다. 하지만 돈가스 덮밥을 먹고 나와 보고 싶은 사람에게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면 혹은 '아 너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난 적어도 그날로부터 한 뼘 즈음은 자라긴 한 걸까.


더이상 스스로 외로운 길을 택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감자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