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읍-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콧 속이 금세 얼어버리는 추운 날. 그런 날이면 엄마는 천 원짜리 지폐를 몇 장 넣은 작은 양은 냄비 하나를 쥐어주며 감자탕 포장 심부름을 보내셨다. 나는 신바람이 나서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냉큼 냄비를 받아 짧은 다리로 종종 거리며 감자탕 집으로 뛰어갔다. 야물지 못한 손에 들린 냄비 속 지폐가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몇 번이고 확인할 때 즈음에서야 감자탕 집에 도착했다.
간판 없이, 테이블도 없이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포장 판매만 하던 모래내 시장 근처 작은 감자탕 가게.
가게에 어울리지 않게 덩치가 큰 (어릴 적 기억이라 왜곡인지 모르지만) 사장님은 사람 좋게 껄껄 웃으며
"네가 심부름을 열심히 하니 예뻐서 감자를 하나 더 넣었다"는 말씀을 빼놓지 않으셨다.
그러면 난 다른 손님이 냄비 안에 들어 있는 감자 한 알의 존재를 눈치챌까 싶어 얼른 뚜껑을 닫고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도착해서 노란색 뜨게 모자를 벗을 때 즈음이면 손발과 얼굴이 꽁꽁 얼어 있었다. 입김을 호호 불어 손을 녹이고 따듯한 방에 앉으면 잠시 뒤에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감자탕이 보글보글 끓는 냄비와 밥 두 공기가 차려진 낡은 밥상을 들고.
밥 먹자
그날의 밥상에는 감자탕과 밥 두 공기가 오도카니 차려져 있었다. 엄마가 포실포실한 감자를 반으로 나눠 앞접시에 담아주면 그제야 아랫목에 묻어두었던 손발을 빼고는 상 앞에 앉아 뜨거운 감자를 오물오물 씹으며 빙긋 웃었다. 엄마도 하루 종일 쉬지 못한 다리를 주욱 펴고 앉아 말간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엄마의 고단한 하루가, 철 모르는 딸내미의 하루가 저물어 갔다.
지금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자주 먹지도 않는 감자탕은 먹을 때마다 나를 그 추운 날의 쪽방으로 데려간다.
엉덩이를 델 정도로 뜨거웠던 아랫목.
뱃속까지 뜨거워 급하게 찬물을 마시게 하던 감자 한 알.
손바닥보다 조금 컸던 세탁소 쪽방 한편에서 엄마와 활짝 웃으며 나눠 먹던 감자탕.
그 따듯한 기억.
또 그 기억 너머
고단했던 젊은 엄마의 얼굴에 비치던 선득한 그늘,
기껏해야 서른 초중반이었을 어린 엄마가 무겁게 둘러업었던 것에 대해 이제야 조금이나마 돌아보게 된다.
생전 해본 적도 없는 세탁소를 덜컥 맡아하며 갓 낳은 아이 하나는 등에 둘러업고
또 다른 하나를 먹이겠다며 때마다 거르지 않고 밥상을 차리던 파리했던 엄마의 얼굴.
이제 와서야 그날의 엄마가 나보다 훨씬 어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젊고 곱고 하고 싶은 게 많았을 그 꽃다운 명숙씨는 좁디 좁은 세탁소에서 소란도 떨지 못하고 저물어 갔다.
이제는 다 늙어진 엄마의 손 마디 마디에 철모르는 딸의 웃음이 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