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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하 Mar 05. 2022

무책임한 나라도
내가 먼저 좋아해 줘야지.

선택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결혼과 이사. 인생에 크다면 큰 그 두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체험하면서 절실히 느꼈다. 나는 정말 쉽게 선택을 하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인데, 심지어 카페에 가면 라떼를 먹을지, 아메리카노를 먹을지도 한참을 고민하는 편이다. 왜 그런 사소한 것까지 고민을 깊이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마음을 더 깊이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속에는 '책임감'이 있었다. 


책임감이 도대체 뭐지. 

사전을 검색해보니 정의는 이렇다.


 책임-감 (責任感) :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


중히 여기는 마음이라, 그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그 일을 통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 완벽하게 일을 처리해내기 위해서 더 나를 몰아세우고, 과한 업무도 해내려고 애쓰는 것. 사실 결국 '책임감'은 '잘 해내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감정을 더 깊이,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면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될 때가 있다. 회사일도 아니고, 고작 카페에서 먹고 싶은 커피를 고르는 소소한 일에도 잘하고 싶어서 애쓰고 있다니. 결혼과 이사는 물론 중요한 선택들의 연속이지만, 고민해서 선택하는 일은 결국 '나에게 잘하는 것'인데 나에게 인정받으면 되는 일인데 말이다.


'책임감'을 다시 검색해보니 이런 뜻이 나온다.


책임() / Responsibility : 자신이 행사하는 모든 행동의 결과를 부담하는 것을 뜻하는 한자어다. 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을 책임감()이라고 한다.


내가 하는 행동의 결과를 내가 부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 다시 말하자면, 행동의 결과가 반드시 성공이냐 실패냐로 결론지어지는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최선을 다해서,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가장 좋은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되는 거다. 그러면, 결과가 좋았든 나빴든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라떼냐 아메리나노냐의 문제에서 설령 라떼를 선택해서 실패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더라도 '라떼를 먹어서 좋을 것 같은 나'를 위한 선택이었으니, 나는 충분히 책임감 있는 선택을 한 것일 테니.


책임감의 정의를 깊게 들여다본 후부터 종종 소소한 선택의 순간에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주문이 있다. "아니면 말고."


어차피 결과를 내가 책임지는 일이라면, 내가 겪어보고 아니면 다시 하면 그만이다. 고작 이 우주 속 작은 먼지 같은 나라는 인간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다 책임질 수는 없으니까. 때때로는 무책임해져도 괜찮다. 어차피 인생은 예측 불가능에 알 수 없는 일 투성이니까. 가끔 이렇게 무너지고 무책임한 나라도 내가 먼저 좋아해 줘야지. 그래도 괜찮아, 하면서. 뭐든 그냥 선택해 보는 거다.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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