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조력자들

지루하고 치열한 투쟁이 지속될 수 있었던 건, 그대들 덕분에

by JS

영국 떠나는 전 날 아들을 불러 얘기를 시작했다. 친정 엄마가 알아서 잘 챙겨주시겠지만, 그래도 성인인 남편보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제일 걱정되었다.


나: 준호야, 엄마 내일 가는데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어서 얘기해 주려고 하는데.. 친구들에게 엄마가 영국으로 MBA 하러 갔다는 말은 하지 마. 아마 친구들이나 친구들 부모님들도 이해 못 할 것 같아. 괜히 우리 집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아들: 엄마(한숨 한번)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얘기하면 엄마 아빠 이혼한 줄 알겠죠. 누가 진짜 공부하러 간 줄 믿겠어요 말 안 할 거니까 걱정 마세요(한숨).


헛웃음이 나오면서 대견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유학 계획을 세우고 오픈하니 얘기를 들은 지인들은 5:5로 나뉘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중학생 아들을 떼어 놓고 가느냐!라고 모성애까지 동원해서 강경하게 반대했던 그룹과 '나도 가고 싶었는데 너라도 가서 꼭 꿈을 이루고 와라'라고 오히려 등 떠밀던 대리 만족 지지파. 이들의 의견들이 서로 팽팽히 맞섰지만 아들이 중학교 1학년이라는 점은 모두가 걱정해 주었다. 지지파들도 내가 대단한 것보다는 친정어머니와 올곳이 혼자 아들을 감당해야 할 남편의 결심에 부러움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 항상 자식 의견을 존중해 주셔서 어떤 결정에도 지지해주시던 우리 엄마는 본인 자식의 이기적인 선택에 놀라셨고 사위에게 미안해하셨다. 그러나 엄마는 떠나는 날, 돌아온 날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본인의 속 얘기를 하지 않으셨다. 성인이 된 후 지켜본 우리 엄마의 지지와 신뢰는 내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데 큰 역할이 되었다. MBA가 무엇인지, 딸내미가 저렇게까지 해서 얻으려고 하는 게 무엇일까 모르지만 믿어주셨다.


마지막 남편, 남편은 본인이 생각하는 철학과 사상을 생활에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내의 사회생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래왔다. 내가 많은 시간을 내 개인적 공부와 회사 일도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배우자의 이해와 협조가 가장 큰 조력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매일매일 싸워가며 지금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을 것 같다. 영국으로 떠나면서, 입장이 바뀌어 그가 떠나고 내가 남게 되면 이성적으로는 지지해줘야 하지만 저렇게 웃으면서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1년 6개월 후 돌아와 보니 그는 운동으로 다져진 몸짱이 되어 있었다. 가족과 보내야 할 시간이 주어졌을 때마다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참 건전한 이탈이다.


시상식에 나와서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연예인들이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쩜 저리 준비성이 없을까? 더 멋진 말이 있을 텐데.....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들은 그냥 진심을 전달한 것이다.

내가 공부를 통해 무엇을 얻었든 간에 그 지루하고 치열했던 과정을 지켜보고 도와준 가족들이 없었으면 아무 금방 포기했을 것이다. 어디선가 자기만의 공부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우선 조력자부터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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