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가면서 마케팅 영역에서 자기 계발과 경영서까지 주제가 확대되었다. 이때 메모했던 나의 독서 메모장을 보면 지금까지도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베스트셀러들도 많다. 메모를 했던 이유는 경영서 특히 자기 계발서는 다 읽고 돌아서면 하얗게 백지상태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메모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책을 다 읽은 후에 가끔 메모를 들여다봐야 주요 키워드나 주제를 다시 상기시킬 수 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은 소설을 많이 읽었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모든 소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감동적인 소설은 여운이 오래가고 10년 이상이 지난 후에도 스토리 구조와 주인공 캐릭터가 생생한다. 그런데 왜 경영서적들은 내용이 금방 뇌에서 휘발되는 것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독자의 주도성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독자들이 이야기에 빠지게 되면 좀 더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작가가 주는 내용 이상 것을 머리속에서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인생을 소재로 다루는 것이 소설이고 문학이니 “나라면 어떻게 할까?‘, “저런 남자랑 결혼하기 어렵지” 와 같은 공감과 일체감이 레벨을 높이 올린 채로 읽어나간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경영 특히 자기 계발 같은 책들은 독자가 게으르게 된다. 작가가 논리나 사례로 본인을 설득해 주길 기대한다. 특히 경영서에 제시된 상황들은 100%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몰입하기도 어렵고 뭔가 저자가 준 것 이상 상상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공부하고 있는 주제와 일의 업무가 일치했던 나의 공부는 탄력을 받았다. 읽고 배운 것을 업무에 바로 적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예를 들면 소비 심리학의 선택 이론에서 30개의 다른 종류 잼을 진열해서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 종류별 품목수를 4개나 5개로 줄여서 팔게 되면 매출이 30개를 팔 때보다 4배 이상 좋다는 실험 결과를 보여주었다. 너무 많은 선택이 주어지면 사람들은 금방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당시 샴푸 담당이었던 필자는 평상시 별생각 없이 늘렸던 품목수(SKU)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한 근거도 있었고 다행히 영업은 이런 세부 사항을 인지를 못할 것이다. 결과는 4배 매출 상승은 아니지만 품목을 20개 이상 줄였는데 매출은 줄지 않았다. 결국, 물류비용과 포장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입사 한지 4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신규 샴푸를 출시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이 의사결정 또한 장 노엘 캐퍼러 교수 같은 마케팅 구루들이 동일하게 조언하고 있는 이론과 연관이 있었다. 고만고만한 여러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게 되면 내부 자기잠식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강한 브랜드 하나를 육성해서 라인을 확장하는 제안이었다. 당시 회사는 생활용품 부문에서 여러 개의 샴푸를 운영했고 화장품 부문에서는 브랜드 이미지를 헤어케어 전문 브랜드로 잘 관리하던 미*센 브랜드가 있었다. 미*센은 헤어케어가 주력이었다. 이런 배경하에 미*센 브랜드 아래 프리미엄 샴푸를 출시하고 광고홍보를 이 브랜드에 집중하였다. 결과는 마케팅 교과서에 나온 것과 유사한 대 성공이었다. (장기적으로 더 잘 관리해서 메가 브랜드가 된 것으로알고있다). 담당이었지만 출시한 브랜드가 잘 되서 행복했고, 마케팅의 석학들의 이론을 내가 대신 증명한 것 같은 우스운 동지애도 혼자 느꼈다. 시너지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한 순간이었다. 아마 나는 이 시절이 가장 겸손하지 못한 어설픈 지식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신제품이 계속 잘 팔리자 성공사례를 만들었을테 다른 성장을 도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표를 쓰고 그 당시 국내 기업 마케터들에게는 이직이 어려웠던 글로벌 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내가 떠난 이후로 이 회사는 성공을 거듭해서 브랜드 자산도 강화하고 아시아 지역으로 비즈니스를 확대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comfort zone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이 의사결정 때문에 감당할 어려움도 많았다. 또 다른 결핍을 만났고 그걸 극복해서 더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 공부의 지형이 넓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