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영어는 못하지만 글로벌 회사는 다니고 싶어

치열해지는 공부

by JS

Boss: 무슨 일이죠?

(글로벌 기업으로 이직한지 한 달도 못 채우고 사표를 들고 마케팅 상무님 방으로 들어가서 쭈볏되고 있는 나...)

나: 회사를 그만 두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상무님 (고개를 떨구는 바보)


문제는 영어였다. 영어는 쉽게 극복이 되지 않고 나를 힘들게 했다. 마케팅 이론과 실무를 마스터한 박사로 교만하던 나는 알고 있는 것을 잘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회의에 Native가 한 명이라도 있게 되면 모두 영어로 진행하게 되는데 분위기 파악이나 내부 부서나 핵심 부서장간의 알력 다툼같은 것이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이런 걸 파악하는 것이 회의가 주는 선물이다). 내가 만든 자료를 발표할 순서가 되면 너무 긴장이 되서 실수를 하게 되고 귀가 안 뚫리니 질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동료들앞에서 긴장하지 않은 척하는 것이 제일 싫었다.


당시 상사였던 마케팅 상무님은 항상 쿨하신 분인데 그 날은 더 쿨했던 것 같다(대구 천재 소녀라는 별명을 가지고 계셨다. 중고등학교때 공부를 너무 잘해서 고향인 대구 뿐만 아니라 전국 TOP3 를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분의 영어는 감탄의 연속이며 영어 못하는 국내 기업 출신들의 희망이었다. 항상 중학교 수준의 단어만 사용하시고 간결한 단문으로 영어 커뮤니케이션 하시는데 전달력이 좋다. 절대 접속사와 대명사를 난발하지 않으셨다.


"내가 차장님 영어 못하는 거 알고 뽑았어요. 빨리 배워주면 좋지만 우리 조직에서 차장님에게 바라는 우선 순위는 영업과 지금의 브랜드 매니저들과 다른 방법의 커뮤니케이션 해주고 그래서 성과를 내주면 지금 세일즈와 마케팅사이의 긴장이 좀 덜해지길 기대했어요. 이미 잘 하고 있어요."


맞다. 이곳은 다양한 회사의 경력 사원들이 모인 곳인데, 영업들도 영어도 잘하고 전에 다닌 곳에서 기본적인 훈련을 잘 받은 비지니스 맨들이었다. 마케팅에 대해서도 개념이나 용어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케팅에서 전달해주는 신상품이나 프로모션을 절대 무조건 받지 않았다. 광고지원, 프로모션 강도를 경쟁사 대비 프로모션 강도를 꼼꼼히 챙겼다. 이런 이유 회의는 '이 정도면 경쟁사 우위다', '니가 가서 입점시켜봐라.'와 같은 다툼이 많았다.


데이타 중심의 영업과 논리적인 사고가 긍정적이었지만, 국내 영업들이 가지고 있는 '화이팅'이 보이지 않았고 탁상공론이 많고 부딪쳐보는 실행력은 떨어졌다. 이러한 영업은 기존 마케팅 멤버들이 똑같이 데이타와 논리로 설득하려 하니 관계 개선이 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다른 방법은 매장에 그들보다 더 자주 나가고(현장 얘기를 부풀려 거짓말하지 못하도록) 회의 때, 무조건 영업 얘기에 집중하고 감탄하는 피드백으로 그들을 치켜세워 주었다. 이런 모습을 마케팅 상무님이 긍정적으로 보신 것 같았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단순해서 보스가 보이는 신뢰와 칭찬에 이내 마음을 바뀌고 자리에 돌아왔다.

이 사건 이후로도 쭉~ 영어는 지금도 내 인생의 걸림돌이다. 하지만 그나마 글로벌 기업에서 10년 넘게 일했던 것은 이때부터 영어라는 언어를 나의 공부 리스트에 포함시키고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이다. 오피스텔 보증금과 맞먹는 학원비를 탕진하며.... 이 때 책도 많이 못 읽었고 외부 교육도 나갈 수 가 없었다. 이 시간들을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영어에 전념했따.


1. 우선 3년동안 매일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한시간동안 원어민 선생님과 1:1로 공부하는 학원에 다녔다. 미국에서 공부했거나 살았던 동료들과는 비교 할 수 도 없는 수준이었지만 실망하지 않고 꾸준함을 유지했다.


2.Writing은 직접 업무에서 배웠다. 전임자나 마케팅 상무님이 만들어 놓으신 과거 자료를 보고 단어 선택이나 구조들을 처음에는 무조건 카피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의 변형을 가졌다.


3. Listening은 유럽, 남미, 아시아 이들 영어가 너무 안들렸다. 내 귀보다는 그들의 혀를 탓 했는데, 영어를 잘하면 다 잘 알아 듣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내 귀가 문제였다. 화장품 회사에는 높은 분들은 프랑스 분들이 많다. 프렌치 영어에 귀가 익숙해져야 한다.


4. Reading 공부는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에서 관심있는 아티클을 골라서 영어 선생님과 같이 읽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혼자 HBR을 독해하기는 쉽지 않다.


힘들었지만 다시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리고 영어 따위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 내부 커뮤니케이션, 영업 달래기 같은 필살기같은 열심히하였다. 1년이 지나자 영어 공부도 일상이 되었고 주변 동료나 회사도 나의 영어 실력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러자 장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영어는 하루에 1시간 씩 3년 한다고 해서 가시적인 성과가 그리 많지 않은 공부다. 하지만 어떤 일이 시작해서 싫증이 나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 3년동안 그 이른 아침의 루틴을 생각한다. 추운 겨울 아침 세수의 서늘함과 눈이 와서 언 도로에서 조심 조심 운전하던 생각, 아침부터 너무 말을 많이 하다보니 수업 끝나면 듣던 꼬르륵 소리. 무엇가 꾸준히 무던히 해나가는 것, 공부의 자세일 것이다.


영어가 어느 정도 익숙하게 되면 경력직으로 이직할 때 갈 수 있는 기회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국내 기업 뿐만아니라 글로벌 기업에 지원 할 수 있고 국내 기업의 해외 지사 포지션에 도전할 수 있게된다. 그 외 글로벌 기업이 자기계발과 커리어 관리차원에서 가지고 있는 장점을 정리해봤다.


1. 글로벌 기업은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 마케팅 전략이나 브랜드 자료들이 공유된다. 이 방대하고 다양한 자료는 향후 이것은 전략이나 플랜 작성하는데 유용하다.


2. 글로벌 기업에서 만드는 발표 자료는 한국에 출장 온 본사분을 위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한국 시장의 특성 이해시켜야 하므로 경제/사회/산업 부터 시작한다 커버한다. 이런 자료를 만들다 보면 비지니스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고 전략적으로 해석하는 훈련이 된다.


3. 설득하기 위해 중요한 것- 주장과 의견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숫자 없이 얘기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번 숫자와 함께 이야기해야 수용이 되는 분위기다. 이 능력이 쌓이면 나의 제안의 설득력이 높아지기 위해 숫자를 끼워 맞추는 능력도 생긴다.


정작 글로벌 기업으로 옮기고 공부할 시작이 많이 줄어들었다. 영어가 1 순위였고 직급이 올라가니 야근이 더 많아졌다. 이 때도 책은 많이 샀던 것 같다. 산 책들을 읽지 못하고 집에서 회사, 회사에 집으로 가지고 다녔다. 남편은 이런 나를 보고 "책 이동시키기가 취미인가"라고 비아냥거렸고 책상위에 올려진 책들은 늘 부담이었다.


그러나 일실일득, 7-8년 글로벌 기업에서 업무를 하면서 On-the-Job 트레이닝을 많이 받았고 이는 비즈니스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과 다양한 Backaground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협업하는 방법 같은 실무에서 필요한 기술들과 경험을 얻었다. 정작 책을 읽은 시간이 줄고 개인적인 교육은 못 받았지만 글로벌 기업에서 저마다 가지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었다. 이 때 교육 내용도 유익했으나 다른 아시아 국가의 같은 레벨의 매니저들을 만나 group work를 할 수 있었다. 다른 아시아 나라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들의 유창한 영어 실력과 작아졌지만, <글로벌 기업>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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