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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쟝 몽 Aug 04. 2021

작품은 결코 단편이 아니다

수많은 고민과 반복, 그 이야기를 담는 장편

캘리그라피는 그 깊은 의미에 정렬과 조형미가 스며들어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런 캘리그라피가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캘리그라피 본연의 의미에 집중해서 정렬과 글자 자체가 가지는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정통적인 방법이다. 그뿐만 아니라 쓰여진 문자를 통해 만들어지는 단어나 문장이 가지는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서체가 가지는 형태에 더욱 집중하고, 레이아웃을 통해 그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관람하는 사람은 작가가 가진 역량과 전달하는 메시지를 살펴볼 수 있고, 작가는 스스로가 가진 역량을 더욱 가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첫 번째 방법은 작가가 글씨에 가지는 정성과 고뇌에 대해 엿볼 수 있는 반면, 두 번째 방법은 글씨가 아니라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글씨와 작품은 전혀 다른 분야라고 보면 되는 것인데, 글씨는 작품에 쓰이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그럼 글씨 외에 작품이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구성은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는 구성요소는 메시지, 구도, 재료, 표현방식, Creativity 등이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야 작품인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건 글씨를 쓴다는 행위만으로는 작품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글씨를 쓴다는 것은 정말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회의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며 메모하는 일부터 지루한 교육을 들으면서 종이 한편에 모나미로 하는 낙서까지 일상적인 형태가 있을 것이다. 열심히 필기를 하거나 서예(캘리그라피)처럼 집중하여 다듬어쓰는 글씨도 있다. 이중 글씨를 쓴다는 개념 중에 가장 작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낙서는 분명 작품이 될 수 있다. 그라피티나 Doodling이 예술로 승화되어 이루어지는 작품들도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또 Cursive, Penmanship이라고 불리는 서체는 필기하는 서법에서 비롯된 방식이지만, 단순한 필기가 아니라 체계적이고 정리된 규칙들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종종 작품을 위해 쓰이기도 한다. 즉 글씨는 매개체가 될 뿐이고, 이것이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필자가 말한 요소 중에 '메시지'는 쓰이는 글의 내용이 메시지가 될 수 있고, 그 의미를 형태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이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물론 읽을 수 있는 캘리그라피를 포함해, 작품의 영역에서 캘리그라피를 도형적으로 재해석한 Lettering이나 Graffiti도 작가만의 메시지가 분명 존재한다. 그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구도'와 '재료'가 있을 것이다. 레이아웃을 활용하여 문장의 배치나 강조할 부분들을 정렬하여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구도에 해당하고, 재료는 시각적 표현을 돋우는 요소가 된다. 가장 기본적인 재료에는 종이와 펜 그리고 잉크가 있겠다. 종이의 질감, 무게, 마감처리, 텍스쳐 등을 따질 수 있고, 펜은 자체가 가진 특징을 이해하고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료가 표현을 돋는다는 말을 쉽게 말하자면 같은 형태의 구도라도 종이가 매끈하거나 거친 정도의 따라 느낌이 다를 수 있고, 강렬한 인상을 위해 종이나 잉크가 새빨간 색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활용은 온전히 작가의 능력이다.


기본적인 도구 말고도 캔버스나 물감, 붓 등 미술 재료로 쓰이는 것들도 재료가 될 수 있다. 무언가 써질 수 있다면 도구가 될 수 있는 게 캘리그라피의 매력이니까 말이다. 세상의 발전을 통해 디지털 도구도 충분히 캘리그라피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물론 손으로 쓴 글씨를 디지털화하는 것과 전자기기를 활용해 디지털로 글씨를 생성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좋겠다. 수많은 태블릿 기기들이 쏟아지는 현대에서 이를 활용하고 적용하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좀 더 다룰 예정인데, 아무튼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것도 재료로서의 역할을 한다.


결국 무언가의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재료를 쓰고, 어떻게 활용해서 표현하는지가 'Creativity'의 영역인 셈이다. 물론 독창적이지 않다고 해서 작품이 아닌 것은 아니다. 첫 문단에서 살펴보았듯 캘리그라피 작품은 본연의 형태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기본 형태에서 벗어나 예술의 영역을 건드리고 싶다면, 기초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 스타일은 작가의 창의력을 나타내는 매개체이고 본인임을 나타내는 명함인 것이다. SNS에서 글씨를 보다 보면 아이디를 보지 않아도 어떤 작가의 글씨인지,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 구별된다. 작품도 그렇다. 그룹 전시를 보더라도 저마다의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작품마다 구별이 가능하다. 그만큼 스타일은 중요하고, 스타일을 만드는 발판은 작가의 독창성에 있다. 


Creativity, 독창성이 중요하다고 너무 거창하게 써내려 왔지만, 필자 또한 독창성이란 단어에 갇혀 머리 꽤나 아팠던 적이 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본인이 생각한 것은 충분히 다른 누군가가 똑같이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머리 아팠던 한 때의 고민으로 내린 타협은 너무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적어도 본인은 천재가 아니고 그저 노력하는 사람이다. 완전히 새롭진 않아도 조금씩 방향을 틀다보면 어느새 '내 스타일'이 잡히게 될 것이고, 본인 또한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현재의 쟝몽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쯤에서 글의 제목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작품은 결코 단편이 아니라는 말. 작품은 그동안 쌓아온 역량을 발휘하여 수많은 고민을 거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담긴 메시지는 작가의 인생을 담았을 수 있다. 작품은 한순간의 고민과 획 놀림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한 번의 획에도 연습으로 흘린 땀이 묻어있고, 단순해 보이는 구도에도 많은 고민이 다듬어져 있다. 작품은 감상하거나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러한 이야기를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필자는 정확한 글씨로 쓰여 만들어진 캘리그라피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구성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장편의 캘리그라피 작품을 지향한다. 길이로 인한 단편과 장편의 차이가 아닌, 디테일과 스케일의 차이로 이를 구분하고자 한다.


흔히 '떡밥'이라고 얘기하는 것들이 있다. 주로 영화에서 결말 혹은 중요한 순간에 쓰이는 소재로, 감독이 미리 숨겨놓은 메시지라는 뜻이다. 학생 때 국어시간에는 이것을 복선이라고 배웠고, 같은 맥락에서 게임에서는 '이스터에그'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 본인은 이러한 사소한 것에 굉장히 매료되는 스타일이다. 개발자가 얼마나 자신이 만든 게임에 애정이 있으면 본인을 드러내는 메시지를 게임 속에 숨겨놨을까. 이는 개발자도, 찾는 이용자도 발견되는 순간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새로운 영화가 개봉되면 유튜브에 항상 숨겨진 내용을 말해주는 이들이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이다. 모든 게 디테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영화나 게임도 결국 누군가의 작품이다. 의미와 형태에 정답은 없지만 디테일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디테일은 스타일이 되고, Identity가 만들어지며, 이스터에그가 된다. 그것이 작가를 표현해준다. 결국 작품을 위해서는 디테일을 중요시해야 하고, 구성요소를 하나씩 다듬어갈 필요가 있다. 이것이 필자가 바라보는 작품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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