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쟝쟝 May 15. 2022

너무 대낮의 산책

김개미 외, 매우 혼자인 사람의 일하기

요즘에는 붕어빵도 찾기 어렵지만, 호떡이야 말로 하늘에 별 따기라는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리고 새롭게 개척중인 산책 코스, 집이랑 멀지 않은 삼거리에서 호떡 트럭 발견!! 왠지 맛집일 것 같아 눈도장으로만 찍어두었다. 지난 주 부터 기온도 떨어지고 밤의 시간이 부쩍 길어져 기분이 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세로토닌의 부족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적정 수준의 일조량을 축이기 위해 저녁 달리기를 줄이고 오전 산책을 일상에 추가했다. 


도로 옆이 아니고서는 이어폰도 끼지 않고 세상의 부스럭거림을 배경 음악 삼아 걷는다. 플레이리스트 업데이트에 게으른 나는 혼자 지내면서 달리기나 반복적인 작업을 할 때를 제외하고 거의 음악을 듣지 않는 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끔은 잔잔한 클래식 음악도 내 귀에는 자극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구나한다. 에어팟의 주요 용도는 음악을 틀지 않은 노이즈 캔슬링 기능. 그러고 보니 클럽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데, 신입생 때 딱 한번 가본 나이트(클럽이 없는 지방 도시였다)에서 스피커를 견디기 너무 힘들어서 이런 곳에 다신 오지 않아야지 마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 음악을 항상 즐기는 종류의 사람은 아닌가 보구나, 적으면서 이렇게 스스로를 또 한번 알아가는 군. 


어쨌든 오전 중에 하는 산뜻한 산책은 프리랜서의 특권이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어 새삼스러이 흐뭇했다. 더구나 요즈음의 하늘은 치명적이고, 가로수의 단풍은 감동적일 정도라… 대낮의 햇빛을 반사해 진한 색으로 빛나는 도로와 건물은 보는 이의 시선을 구석구석 잡아두고 마는 것이다. 작년이라면 카페인에 의지해 집중력을 불태울 이 시각에 그야말로 정처 없이 걷고 있구나 깨닫는 건, 그런데 발길이 가 닿는 곳 마다 근사한 낙엽들이 뒹군다는 건 나를 미소짓게 한다. 


“(105) 한동안은 일이 없다가 한동안은 몰려오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들어오는 대로 받기 십상이라 그러다가는 일에 파묻혀 있다가 오히려 빵꾸만 내고 건강도 망가질 수가 있다. 그러니 애초에 게으름을 피우면 그럴 일이 없다. 따지고 보면 그게 나한테 맞는 전략이다. 꼼꼼하거나 치밀하지는 못해서 계산을 하고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나도 욕심이 없지는 않아서 대개는 일단 받고 본다. 까딱하다가는 한 치 앞도 못 보고 일을 그르친다. 게으름은 욕심과 이로 인해 생길 탈을 통제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그런가하면 프리랜서의 단점도 있다. 이를테면, 이번 주의 경우 두 개의 마감이 겹친 주제에 주말마저 신나게(마치 직장인처럼)놀아버린 나 자신의 만용때문에 건너건너 이틀이나 밤을 새워 일해야 했다. 심지어 어제 오전 열한시에서 오늘 아침 8시까지, 밥 먹는 시간 잠깐 외에는 거의 20시간을 쉬지 않고 일했다. 두 시간 자고 일어나 더 잘까하다가 사과 한 알을 먹고 나와 햇살 받으며 걸었다. 뚝뚝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잎사귀를 멍 때리고 생생히 감상하다보니 놀랍게도 피곤이 가셨다. 나는 3시에 잠들어 8시에 일어나고, 보통 밤이 깊어질수록 집중이 잘되는 올빼미 족이며, 오전 시간을 꾸물럭 거리면서 가사노동을 하며 졸음을 커피로 쫓는 편인데, 저녁 달리기를 이제부턴 오전에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 싫은 날은 산책하고. 어, 뭔가 라이프 스타일이 더 효율적이어진 것 같아! 나 자신이여! 이렇게 또 진화하는 것인가!


“(29)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단한 자기 규율까지 만들어가며 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삶이 나에게 적합한 형태의 삶임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삶을 직접 조직하고 이끌어나가는 감각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혼자 일하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독과 고립 속에서도 온전한 충만감의 조각 같은 것들을 발견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낮밤이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 오늘은 웬만하면 깨어있을 예정이다. 재밌는 스릴러 소설을 찝어 두었고, 봐둘 영화도 선택해 놓았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잠에 대한 욕심이 없어진 것도(틈틈히 낮잠시간도 껴서 언제나 넉넉히 잔다) 프리랜서의 장점이지 싶구나. 


물론 이것은 내가 일을 막 끝낸 시점이라서 느끼는 기분이고, 평소의 일없는 놈팽이 나는 대체로 세상에서 튕겨져 나온 것만 같은 불안함과 고독한 사투를 벌인다. 그런데 오늘의 자유 산책은 매일매일 반복하고 싶은 종류의 어떤 것이라서 가능하면 대낮 산책을 위해서라도 오래오래 프리로 살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free. 이 불안을 자유의 대가라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과 불안, 모든 것을 나 혼자서 조절하고 설계해야한다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친구처럼 여겨 만나면 또왔구나 상냥하게 인사해봐야지.. 불안이 찾아오면 산책하고 달리고, 외로움이 찾아오면 재밌는 책을 읽고, 맡겨진 일은 성실하게 잘해내고, 일상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는 기분과 빈 시간의 자유로움 충분히 만끽하면서 그렇게 오래 오래 건강히 지내면 좋겠다. 


마주친 노점에서 올해 첫 귤을 한 봉지 샀다. 주황색 바탕의 이 책이 생각 났던 것은 (나 자신을 과신해서 이번 주가 개망진창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일과 삶을 잘 조율하고 싶어졌기 때문이지 싶다. 책에서 만난 혼자있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과 라이프 스타일을 좋아하는 눈치였다. 애석하게도 업으로 삼은 일을 좋아하기 보다는 할 수 있어서 하게 된 축에 속한다. 생각해보면 나의 사회 생활이란 ‘일을 너무 좋아해서 일이 곧 나’인 사람들과 ‘일하기 싫어서 떠넘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간은 없는 건가… 하는 부정의 부정 연속이었다. (전자는 위험했고 후자는 한심했다. 나는 어땠나. 후자가 되기 싫어 전자라고 최면을 걸어보았으나, 아닌 건 아니라는 씁쓸한 인식만 남아) 이젠 일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일을 떠넘길 수도 없게 된 제3의 지대를 개척해야한다. 


사실 일단 그저 살아남자! 살아남아야 한다!!!모드 였는 데, 회사에서 처럼 무조건 존버!도 아니고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살아남아야할지도 내가 알아서 해야하는 거라 어리둥절이었다. 그리하여 혼자 일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 이야기는 도움이 되었다. (다들 기본 적으로 일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들이라 멋있어서 좀 쭈그러든 건 사실임..) 신입 때 눈물 콧물 쏙 빼가며 일을 배우는 것 처럼, 내가 나를 잘 다루는 법을 알아가는 것이 프리랜서로의 기량을 갖추는 출발점 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퇴사를 하고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불안함도 있지만 이제야 내 삶이 내 것이 되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더 많다. 여러모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오전의 햇살을 가로질러 산책하고, 집안을 정돈하고 책상 앞에 앉아 저녁 늦게까지 집중해서 일하고, 맥주 한잔 하면서 책이나 영화를 보는… 나는 나랑 잘 지내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신입 프리랜서다. 


“(210) 가끔 나는 자문해본다. 혹시 스스로에게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닌가? 조금만 피곤하면 쉬라고 하고, 작은 미션 하나라도 완료하면 마구 보상을 주려 하니, 이거 너무 자신을 삼대독자 대하듯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프리랜서라는 캄캄하고 외로운 터널에 들어선 이상, 나는 억지로라도 나에게 잘해주려는 태도를 조금 더 고수하고자 한다.(…)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은 별다른 게 아니라 마음이 요구하는 바를 귀담아듣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그다음에 온다. 스스로를 아낀 힘으로 타인도 아끼고, 자기 내면을 살핀 눈으로 세상도 살피고 헤아리는 일. 그래서 세상에 꼭 필요한 목소리와 시선을 만들어내는 일. 쉽지 않은 그 단계를 가능케 하는 마음의 근육이 사실은 자기 돌봄의 지난한 노력 속에서 키워지는 거라고, 집순이는 오늘도 굳게 믿고 있다.”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

2021-11-12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선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