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고치기

이름이란 무엇인가

by 지안


그런 일이 있었다.

언젠가 병원에 명단을 올리고 기다리는데, 내 앞에 아기 이름과 내 이름이 같았다.

아기의 엄마는 아기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고, 혼자 머쓱해하고 있었는데, 아기 엄마가 진료 후 접수대 앞에서 아기를 챙기고 있던 와중 내 이름이 불렸다. 자연스레 아기 엄마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진료실로 향했다.


뜻 지, 평안할 안.

그게 현재 나의 이름이며 6년째 사용 중이다. 이름을 신청할 때만 해도 이렇게 아기들 이름으로 흔히 쓰이는지 몰랐는데, 법원 승낙까지 떨어지고 나니 그제야 사방에서 똑같은 이름이 들렸다. 특히 애기들 이름으로 많이 쓰이는 줄 알았다면 조금 더 고민해 봤을 텐데, 그전까지 왜 한 번도 들어 본 기억이 없는지, 내 이름이 되고 나니 그제야 익숙해져서 들리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없었다.

무엇보다 처음 인터넷 작명으로 수많은 이름을 봤던 때, 이름을 발견하고 마음에 훅 치고 들어왔을 정도로 뜻이 좋았다. 작명을 통해 받은 이름 하나하나 발음해 보면서, 뜻을 고려하면서, 그렇게 이름을 골랐다.


이름을 바꾼 이유?

이름이 싫어졌던 시기가 아주 명확해서 그때가 몇 년 전인지 헤아리다 문득 '아, 그때 처음 이름에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었구나.'하는 기억이 떠올랐다. 정확히 언제인진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쯤이었을 거다. 가족끼리 저녁을 먹으며 TV를 보다가 인간극장 같은 다큐 프로그램이 나왔는데, 그 다큐에 나온 아이 이름이 나와 같았다. TV를 보던 엄마가 던졌던 한마디. "ㅇㅇ들은 다 저렇게 통통한가." 지금도 몇 번의 다이어트와 몇 번의 요요로 체격이 건장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우량아였던 나는 늘 통통했다. 첫째라는 이유로 먹이고 싶은 걸 다 먹여왔던 당시 부모님의 사랑도 있었겠지만, 원체 내 몫을 잘 찾아 먹는 편이었다. 슬슬 외모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던 때 들었던 그 한마디가 나름 크게 치고 갔던 것 같다. 이후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 이후로 동명의 사람을 마주칠 때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체형을 확인했다. 계기는 기억에서 잊혔어도 자라면서 습관 또는 버릇되었을 정도로 인상 깊었던 순간이었다.


그런 와중에 고등학생이던 당시 몇 개의 시리즈가 나왔을 정도로 M사의 시트콤이 흥행했다. 그 시트콤 속 센캐 며느리의 이름과 내 이름이 비슷했고, 아나운서도 아닌 고딩들이 장음, 단음 따위를 구분할 리도, 발음의 차이를 구분할 리도 없었다. 부러 나 들으라는 듯 배우 이름을 말하며 날 힐끔거리던 눈이 있었다. 지금 같은 성격이었다면 '어쩌라는 거야.'하고 넘겼을 텐데, TV도 안 보던 내가 처음부터 그게 배우 이름인지 알 턱도 없었고, 내용도 이해가 안 되니 마냥 찝찝하고 신경 쓰였다. 시트콤의 시대가 끝나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는데, 그때도 손님들이 명찰을 보면 아 그 배우? 이런 반응이 생각보다 잦았다. 그때마다 무슨 오기인지 "그분이랑 저는 가운데 글자가 달라요." 해명했다. 참 뭐 그렇게 아득바득했나 싶지만 이름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을 때라 더 듣기 싫었던 것 같다. 친하지도 않은 대학 동기가 굳이 이름의 발음을 세게 굴려 가며 말할 때도 싫었다. 대학 입학 후 특정 사건 이후 성격이 변했는데, 소심했던 성격에서 활발하게 바뀌면서 뭔가 이름까지 세게 발음하는 것을 듣고 나니 초딩 때 조폭 마누라 같은 이미지가 씌워지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당장이라도 이름을 바꾸고 싶었지만, 절차도 잘 몰랐고, 아빠가 허락하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고, 취업하며 살다 보니 개명 후 번거로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이제 막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갈 즈음 사기를 당했다. 세상 그 잘난 척 다 하면서 살았는데, 사기를 당했다는 게 믿기질 않았고 먹고살기에 팍팍해서 안 그래도 힘든데, 딛고 나갈 통로가 보이지 않았다. 경찰서를 들락거리며 정신없이 살다 어느 정도 사건이 잠잠해졌을 때쯤 개명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섰다. 이름 탓은 아니겠지만 이름이라도 바꿔보고 싶었다. (나름 성명학 사유로.) 아빠를 설득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당시 난 눈에 보이는 게 없었고, 사실상 통보에 가까웠다. 아빠가 사전을 뒤져가며 이름 짓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물었을 땐, 이름 비하인드를 알고 있던 난 반박에 성공했고 그렇게 물 흐르듯 허락을 받아냈다.


이미 이름은 골라 놓은 상태였다. 몇십만 원짜리 작명은 생각도 못 했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지만 5만 원 안팎이었던 인터넷 작명 사이트에 생년월일시를 적으니 백 개가 넘는 이름이 나왔다. 그중 이름으로 쓰기 어려운 대부분을 걷어내고 하나하나 발음하며 뜻을 보며 골라내니 7개 정도로 추려졌다. 주변에 투표도 받아 가며 드센 발음의 원인인 성씨와 붙여 수십 번 불러가며 정했다.


개명이 확정되고 핸드폰 명의 바꾸기, 신분증 재발급, 네이버 실명인증 등을 하고, 은행, 보험, 카드사 순차적으로 처리했다. 여러 복잡한 일들을 처리하고 나니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익숙해져 있었고, 기분 탓 인지 이전보다 삶의 무게도 조금 가벼워졌다. 걱정이랄 게 없어졌고, 하면 해 하는 생각으로 살기 시작했다. 먹고사는 게 여전히 팍팍하지만,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고, 공부라는 새로운 길도 한번 시도해 봤다.


이름이 주는 힘이 어디까지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냥, 변화가 필요했고 그게 이름이었다. 어렸을 때의 콤플렉스와 똑똑한 척 자만했던 내 밑바닥의 콜라보였다. 뜻 지, 평안할 안. 이젠 좀 굴곡 없이 평안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였다. 지난 6년처럼 최소 60년은 파도 하나 없는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듯 그렇게 살고 싶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과 같은 나비효과는 더더군다나 바라지 않는다. 현재까지의 삶 중 도전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시기지만 이 날갯짓이 어느 것에도 영향을 주지 않고 그렇게 흩어져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달리지도, 넘어지지도 않는. 그저 털레털레 걷는 지금과 같은 평온함이 최대한 오래 유지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