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처음으로 마주하는 오늘이라서

청춘찬가

by 지안


브런치에 올린 대부분의 글 문체가 다소 딱딱하고 나름 진지한 분위기라 날 실제로 보지 못한 분들은 내가 생각도 많이 하고 조금 진지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데, 평소 말투가 너무 날것이고 나이에 비해 철없어 보이기도 해서(???:인터넷 많이 하는 사람 같아) 그 부분을 가리려 더더욱 정제된 글쓰기에 노력하고 있기도 해서 그렇지, 사실 음... 속칭 '대가리 꽃밭 = 나'인 삶을 살고 있다.


20대 초 특정 사건 이후 소심한 성격에서 나름 활발한 성격으로 바뀌었지만, 내면까지 바뀌긴 어려웠는지 20대 중후반 겪은 사기 전후로 걱정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죽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우울감이 심했고 무력감에, 멍청하게 사기를 당했다는 자기혐오도 있었다. 이후 이러나저러나 사건이 해결되니 그 뒤로 성격이 아닌 뇌 구조가 바뀐 것 같다.


고민, 걱정이라는 게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 회사로 이직하기 직전, 전 직장 업무량이 미친 수준이라 학기 중 휴학을 하고 나니 좀 약간의 현타와 우울감은 있었지만, 주변에서 추천해 준 예능으로 내면을 달래고, 그 회사에서 탈출까지 성공했다.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현 직장에서 적응도 잘했다. (당연함. 구 직장 재취업임.)


휴학/이직 등의 고민이 있긴 했지만, 잠깐의 바람처럼 스쳤고 누군가 잘 지내냐고 묻는다면 '매우 까진 아니어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한 번 관련해 글을 쓸 예정이긴 하나 고민이 없는 게 고민인 사람인데 그렇다고 해서 매일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최근 업로드한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형이라고 기재해 둔 것처럼 공석에 대한 상실감이 수시로 솟아났고 학기 중이라 할 일은 할 일대로 많아 지친 상태였다. <익숙해지지 않는 것>을 업로드한 다음 날, 출근하던 중 길에 막 피기 시작한 꽃들을 보고도 화가 나서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메모장을 켜서 글을 퍼부을 정도로 내내 감정적이었다.


KakaoTalk_20250403_084427856.jpg 뒤 내용까지 적지 못했지만, 잔뜩 짜증이 난 상태


걱정/고민이 없는 사람이라곤 하지만 원체 감정의 폭이 큰 사람인 데다 어제는 또 출근길 대중교통까지 따라주지 않아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회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부정적인 감정은 잊혔지만 혼자가 되는 퇴근길에 다시 지치고 무력감이 들었다. 지하철에서 버스로 환승하고 창밖을 보다, 노래 하나가 생각났다.


세븐틴 - 청춘찬가


이것 또한 언젠가 글로 적히는 날이 오겠지만 세븐틴 입덕한 지 이제 막 3년 차가 된 캐럿이라 당연하게도 세븐틴 노래를 좋아하는데, 무슨 노래 좋아해? 하는 질문에 추리고 추려도 10곡 이상은 나오는 와중에도 힘들 때 찾아 듣는 곡은 한 곡, [청춘찬가]다.


청춘찬가.PNG


'아, 너무 힘든데 오늘은 도서관 가지 말까.' 하다가도 노래 한 곡에 '아, 일단 가.'하고 집을 지나쳐 도서관으로 향했다. 강의 한 편을 보고, 노트북 업데이트를 마치고 나니 겨우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회사에서 퇴근하기 전 간단히 챙겨 먹은 저녁이 그새 소화되었는지 출출하고 기운도 없는 게 집에 가고 싶었다. 한 시간 앉아 있자고 왔나 조금 의지박약이 아닌가 생각하다가도 '엥? 집에 안 가고 도서관 와서 앉은 것부터 잘한 거임.' 하며 쿨하게 짐을 챙겼다.


한 곡 반복으로 노래를 들으며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는데, 골목에 꽃나무가 세 그루 있었다. 사진을 찍진 못했지만, 활짝 핀 꽃을 보니 전날과 달리 또 예뻐 보였다. 사람이 이렇게 단순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는데, 굳이 복잡할 필요도 없지 싶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다 보니 'ㅋ... 오늘도 내가 해냄.' 상태로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집에 와서 허기를 달래기 위해 라면 하나 끓여 먹고, 보다 만 강의까지 마저 보고 나니 <내가 해냄>의 뿌듯함이 두 배였다.


<살고 있다> 보다 <살아내고 있다>가 더 어울리는 요즘, 고민이 없는 게 고민인 나도 이렇게 버거울 때가 있는데, 주변에 숱한 걱정과 고민을 듣고 있으면 말뿐인 위로조차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괜히 위로랍시고 '마음에 여유를 갖고 천천히 생각해 보자.' 라던가, '어떻게든 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던가 하는 그런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어쩌다 그렇게 말이 튀어나오면 더 미안해지기도 했다. 그저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해 줄 수 없어도, 당장 '그래도 오늘을 버텼으니 잘했다.', '오늘을 살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거야.' 하는 말이 위로로 닿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는 모두 오늘을 처음 살고, 내일을 처음 마주하는 사람이라 어설픈 게 당연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말들조차 가시처럼 박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주 아주 잠깐이라도 지친 하루 끝에 나 자신을 토닥토닥하며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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