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가지는 나였다.

by 지안


어제 출근하면서 본 버스 밖 풍경은 완연한 봄이었다.

봄에 뭐라도 있는 양, 봄에 환장한 사람처럼 봄봄 거리니 참 우습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시선 끝에 꽃이 맺히지 않은 마른나무들이 보였다. 순간 '그래, 마른 가지도 사랑하지.' 생각했는데, 그 순간이 또 좋아서 적어두고 어디에 쓸까, 고민했다.


어제의 상쾌함과 달리 오늘은 아침부터 되는 일이 없었다. 평소보다 막히는 도로에 버스 이동 시간이 두 배 소요됐고, 결국 13분이나 지각했다. 내가 먹고 싶었던 카페 메뉴는 단종되었고, 타협안으로 사 온 음료는 마시기도 불편하고, 어처구니없게 키보드에 흘려 난장판이 되었다. 가뜩이나 느린 업무용 PC는 정말 수명이 오늘내일하는지 저장 공간이 충분한데도 자꾸만 공간 부족이라며 인터넷 창도 잘 뜨지 않았고, 이래저래 속 터지는 일뿐이었다. 결국 재부팅에 수많은 창을 재로그인하고, 말도 안 되는 질문들에 답변까지 마쳤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작은 일에도 잔뜩 가시가 돋았다.


그 외에도 기타 여러 상황을 겪고 나니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집에나 빨리 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문득 어제 적어두고 내내 곱씹던 문장이 생각났다.


마른 가지도 사랑하지.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돌이켜보니 마른 가지는 나였다. 지금 바싹 말라 뾰족하고, 당장 봄맞이 새싹이 나지 않아도, 언젠간 새잎이 날. 모든 상황이 싫고 뻗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도, 결국은 이것마저 삶의 어느 순간에 제철을 맞아 뾰족한 가지 위 말랑한 새잎이 되겠거니.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ㅎ.png 아침부터 심상치 않은 상황에 남긴 친구의 말


남은 하루라도 정말 최대한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가서 맛있는 거나 먹으며 쉬어야겠다.

오늘은 좀 그래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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