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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배 Jun 20. 2017

일본인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Guns, Germs, and Steel(총, 균, 쇠)를 읽고


동아시아 대륙과 일본 (그림 출처 : East Asia in 1938 from alternatehistory.com 2017. 06)

 

현재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강국 중에서 그 문화와 환경에 있어 가장 특색 있는 민족은 일본이다. 일본인은 과연 누구이며, 언제 어디에서부터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를 진화시켜 왔는가? 이에 대한 물음에는 4개의 상반된 이론이 있다. 나라별로 우세한 이론은 각각 다르다.   


1. 대부분의 일본인은 일본인의 기원을 BC 2만 년 전 빙하기에 일본으로 유입된 사람들이 점차 진화한 것이라는 견해를 취한다.  

2. 중앙아시아에서 유목을 하던 기마 민족이 AD 4세기경 한국을 거쳐 일본을 정복했을 것이라는 이론도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 

3. 서구의 많은 고고학자와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이론은, 일본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지 않았지만, 일본인이 BC 400년을 전후해 한국에서 벼농사와 함께 이주한 자의 후손이라는 설이다. 

4. 이 3개의 이론에서 거론된 사람들 모두가 뒤섞여 오늘날 일본이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사실 일본인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일본인에 의하여 너무 배타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일본어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언어학 내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을 불려 일으키는 주제이며, 세계의 어떤 주류 언어도 여태껏 일본어처럼 다른 언어와의 유사성에 휩싸인 적은 없었다. 


일본은 아시아의 강국으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역사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만지작거렸다. "니니기는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손자이며 니니기의 증손자 진무가 일본의 첫 번째 왕이다." 일본 역사에서 BC 660년에 일어났다는 이러한 신화 이야기와 일본 왕실이 등장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 사이의 오랜 세월 사이를 메우기 위해여 연대기는 13명의 가공의 왕들으로 채워졌다.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유적으로 AD 300년에서 AD686년 사이에 세워진 158개의 거대한 고분군이 있다. 일본의 고대 왕가와 왕실의 유물이 보존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유적지는 여전히 왕실 유물 소유로 남아 있다. 고분을 조사하는 것은 신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금지되고 있다. 한국에서 고대 무덤들을 저들 마음대로 마구 파헤친 그들이 아닌가. '일본의 기원은 한국이다'라고 증명하는 많은 유물이 솟아져 나올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도쿄 국립 박물관에 국보로 소장되어 있는 AD 5세기 무렵의 '에다후나야마 검'은 매우 유명하다. 그런데 철제 검에 새겨진 문장 중 일부가 마모되고 유실되었다. 읽을 수 없는 문장을 일본은 미즈하와케 왕을 뜻한다고 하고 한국은 한국의 개로왕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고고학계가 냉철한 논쟁을 하기 힘든 이유는 과거에 대한 해석이 일본인의 현재 행동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를 보면,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일본인은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고학적 유물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불리한 유적을 아애 없애거나, 혹은 변조하는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현재 일본은 자기 역사의 재현에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 많은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구체적으로 고찰해 보면,  생물학적으로는  일본인은 한국인과 흡사하다. 외모로 분간할 수 없다. 일본은 서남에서부터 규슈, 시코쿠, 혼슈, 그리고 홋가이도의 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동의 홋가이도에서만 아이누족이 주로 거주한다. 아니누족은 러시아 대륙으로부터 온 사람들이다. 서남으로는 한국으로부터 북동으로부터는 러시아로 이주됐음을 알 수 있다. 


언어학 측면으로 보면, 일본어는 알타이어족 중 고립된 언어로 본다. 같은 알타이어족 중 고립어인 한국어와는 15% 정도 서로 공유하는데, 이것으로 보아 두 언어는 5000년 전에 서로 분기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니누어와 일본어는 어떠한 특별한 관계도 없다. 


유물학적 근거로 보면 고대 초상에 잘 나타나 있다. 1500년 전 고대 무덤 주위에 서 있는 입상 '하니와'의 모습은 현대의 일본인이나 한국인과 같은 동아시아인을 묘사했다. 텃수염이 덥수룩한 아니누인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기록으로 보아도 명백하다. 일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 연대기에 잘 나와 있다. AD712년과 720년부터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연대기를 작성했다. 일본은 초기의 역사를 복원하면서 지배 가문의 영화와 통치를 위하여 열심히 사실을 조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왕을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후손으로 설명하는 식이다. 


일본은 지리적 환경 때문에 독특한 문화를 유지했다. 일본 총면적은 영국의 2배이고 가장 가까운 대륙 한국에서 177Km 떨어져 있다. 영국과 대륙 프랑스와 겨우 35.4Km 떨어진 것과 대조가 된다. AD 6세기 앵글로색슨족이 유럽 본토에서 영국으로 이주함으로써 영어가 여타 게르만 언어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영국이 유럽 본토에서 4번 침략을 당하고 1066년 이후 영국은 매 세기마다 대륙에서 전쟁을 일삼았지만, 일본은 16세기와 19세기에 대륙을 침략한 경우가 전부이다. 이러한 지리적 여견 때문에 일본은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영국보다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할 수가 있었다. 


일본의 기후는 강수량이 많아 세계에서 가장 습한 지역이다. 높은 강수량과 여름의 집중 호우 덕분에 높은 수확량을 보인다. 전 국토의 80%가 산지이고 강수량 덕분에 녹음이 우거진다. 식량 생산지는 14%뿐이어서 인구 밀도가 매우 높다. 비옥한 토지, 풍부한 수량, 그리고 어종이 풍부한 바다는 수렵 채집 생활을 오랫동안 계속 고집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대륙으로부터 고립과 먹을거리가 풍부하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일본의 원주민들은 12,000년 동안 수렵 채집 생활을 계속하여 왔었다. 빙하기에는 일본은 북으로는 러시아 본토로 이어지고 남으로는 황해와 동중국해 그리고 한반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일본의 모든 섬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육지로 통해 일본으로 걸어 들어갔다. 13,000년 전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일본은 살기 좋은 기후로 변했고, 오늘의 일본 섬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때 토기를 사용하면서 BC 400년경까지 수렵 채집 생활을 하여 왔었다. 이때 사람들을 빗쌀무늬 토기를 사용였다하여 '조몬인'이라 칭한다.  


BC 400년경 이때 중국 대륙에서는 분열된 제국 시대였고, 고대 한국에서도 왕국이 다스리는 시대였다. 즉 대륙과 한국에서는 이미 철기와 집약 농업에 관한 고도로 발전된 기술과 정치 조직을 가지고 있었는데 반면 일본 원주민(조몬인)들은 이때까지도 수렵 채집 생활을 하고 있었다. 13,000년 전부터 수렵 채집 생활을 해오던 일본인들은 BC 400년경에 이르러서야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농경문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때를 '야노이 문화'라 한다. 야노이 문화의 많은 요소들은 확실히 한국적이었다.  


과연 조몬인은 한국에서 온 이주민으로 대체된 것일까? 아니면 일본 원주민 조몬인은 그대로 일본 사회를 지배하면서 이주민으로부터 한국 문화를 받아들이고 배운 것에 불과할까? 어느 쪽을 택하던 한국인과의 깊고 많은 연관성을 배재하기는 힘들 것 같다. 


첫 번째 학설은 조몬 시대의 수렵 채집인 자체가 점차 현대 일본인으로 진화했다는 의견이다. 이는 한국과의 관련을 싫어하는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몇몇 현대 일본인들에게 설득력을 갖는다. 

두 번째 학설은 야노이 시대에 어마어마한 수의 한국인이 한국의 농업 기술과 문화, 그리고 유전자를 가지고 이주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일본인에게는 환영받지 못하는 학설이다. 

마지막 학설로는 한국에서 이주가 이루어졌다는 증거는 인정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규모였다는 견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규모 이주 없이도 한국인이 현대 일본이 조상이 되는 것이다.  


제삼자가 보는 견해로,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학설이 더 타당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다. 분자 유전자 분석이다. 이에 따르면, 조몬인은 아이누인과 닮았고 현제 일본인과 다르다. 반면 야요이인은 현재 일본인과 한국인과 닮았다는 것이다. 비록 엄청난 이주는 아니었다는 일본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한국으로부터 이주는 현대 일본인들에게 정말로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1,000년 후인 AD 712년 마침내 일본은 첫 번째 연대기를 완성했다. 일부는 신화이고 일부는 실제 사실을 고쳐 쓴 것이지만 말이다. 그때의 언어와 사람은 현재 일본어이고 일본 사람이다. 오늘의 일본인은 2400년 전 한반도에서 대량으로 이주한 한민족의 후예이며, 일본어는 한반도에서 통용되던 고구려어가 변화된 것이다, 오늘의 한국어는 고구려어보다 신라어 쪽에 가깝다. 


저자(Jared Diamond)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아랍인과 유대인의 경우처럼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피를 나누었으면서도 오랜 시간 서로에 대한 적의를 키워왔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수긍하기 힘들겠지만 그들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와 같다." 맞는 말이다. 한국인들은 수용할 것이다. 반면 기겁하면서 일본인들은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쌍둥이 형제라면 일본은 막 되어 먹은 동생이리라.   


옛적부터 침략은 일본이 일방적으로 저질렸다. 역사를 일방적으로 왜곡하고 문제가 생기면 상대 탓으로만 돌렸다. 더구나 지금도 일본은 한국 땅을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탐욕마저 부린다. 한국은 고대로부터 문화를 전달해준 나라인데, 오히려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당하였던 피해자인데 말이다. 일본은 여전히 제국주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오직 동아시아의 패권과 정복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나라로만 보이는 것이다. 


일본인이 아닌 다른 민족의 기원에 관한 비슷한 의문이 발생했다면 냉정한 논의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질문을 일본인에게 향할 때에는 그렇지 않다. 일본은 이미 세계의 강국이고 19세기 후반부터 자신의 전통을 유지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일본어가 다른 언어와 관련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곧 문화적 정체성의 함락이라고 스스로 여긴다. 일본은 문화적 정체성 문제에서는 비정상적으로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저자는 진실을 매우 완곡하게 표현했다. 그는 어느 쪽을 편들 수는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러나, 냉철히 객관적으로 보면 금방 일본의 주장은 허실임을 쉽게 알 수가 있다. 그것도 전적으로 의도적이다.  


이 글은 본인이 'Guns, Germs, and Steel(총, 균, 쇠)' 그리고 논문 'Janpanese Roots(일본인의 뿌리)'을 읽고 정리한 것으로, 일부 개인적인 의견이 첨가되었습니다. Guns, Germs, and Steel는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교수인 Jared Diamond의 저서이고, Janpanese Roots는 그의 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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