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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배 Jun 20. 2017

마크툽

소설 "연금술사(Alchemist)"를 읽고

어느 스페인, 떠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양치기 산티아고는 마음의 속삭임에 따라 자아의 보물을 찾기 위하여 바다 건너 아프리카로 향한다. 첫 도착지에서 양을 판 모든 돈을 강탈당하자 크리스털 상점에서 일하며 돌아갈 돈을 번다. 그러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벌은 돈으로 마음의 표지대로 피라미드의 보물을 찾으려 사막으로 향한다.  


사막은 인간을 시험하는 미지세계였고 사막 부족 간의 전쟁터였다. 산티아고는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모든 돈을 다시 잃는다. 그곳에서 납을 금으로 변화시키는 연금술사를 만나게 되고 연금술사와 함께 보물을 찾기 위하여 사막을 휭단한다. 총과 칼을 든 군사들을 만났으나 목숨을 담보로 다시 많은 황금을 쥐게 된다. 그리고 오아시스에서 연인 파티마를 만난다.  


사막의 여자는 꿈을 찾는 남자를 막지 않는다. 마음의 표지에 따라 그는 연금술사와 다시 길을 떠난다. 도중 사막을 횡단하면서 군사들에게 모든 것을 잃고 위험에 다시 처하게 되나 결국 그의 꿈인 피라미드를 보게 된다. 피라미드를 바라보면서 산티아고는 보물을 찾기 위하여 모래 언덕을 판다. 그러나 모래 웅덩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막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마음이 그 보물(자아의 신화)임를 깨닫고 오아시스에서 기다릴 사랑의 여인 파티마를 떠 올린다. 


산티아고는 자아의 신화를 살기 위하여 만물과 대화하는 하나의 언어를 이해하고 마침내 영혼의 연금술사가 되었다. 꿈을 찾아가는 그 험난한 여정 하나하나는 납을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사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상은 남미 최고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 Brazil, 1947)의 대표작 연금술사(Alchemist)의 줄거리와 메시지이다. 


소설 내용 중 나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내용을 모아 보았다. (아래, 소설 연금술사 내용에서 인용)


"오아시스에 머물게 하는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 꿈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마음의 변덕은 마음이 부리는 술책이며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아무도 자기 마음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사막을 사랑해야 되지만 사막은 모든 인간을 시험하기 때문에 완전히 믿어서는 아니 된다." 

"사랑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사람의 길을 가로막지 않는다." 

"사막의 모래언덕은 매번 변하지만 사막은 항상 그대로 있다". 

"언제나 마음의 표지를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이미 모든 표지가 꿈을 찾는 이들에게 도울수록 되어 있는 것을, 그래 단지 모를 뿐이야, 마크툽(그렇게 써져 있다는 뜻의 아랍어)." 

"그대의 마음이 있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다."   


이제 내 이야기를 해 보자. 모든 것을 뒤로하고 10년 전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꿈을 찾아. 모든 것이 나에게는 시험이었고 위험이었다. 주변의 표지를 잘못 인식할 때도 많았으나 자주 내 마음에 귀를 대었다. 사업도 해보고 보잘것없는 여러 잡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국땅은 사막이 항상 있는 그대로 있듯이 아직도 그대로 있었다.  


많이 잃었으나 이것저것 얻기도 하였고 크게 버렸으나 좀 무엇인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이민 생활 동안 슬럼프와 실패 그리고 좌절 속에 여러 번 빠졌으나 용케 잘 해쳐 나왔다. 그러는 도중 애들이 자라자 나도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그들이 자립을 하자 툴툴 털고 고국의 길로 향했다. 마음의 소리를 따랐던 것이다, 남은 것은 별로 없지만. 이제는 하나의 꿈이 세 개가 되었다. 나는 내 꿈을 위하여 길 위에 서 있고  두 아들은 힘차게 그들의 꿈을 위해 각자 공부하면서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나는  중부 캐나다 어느 곳에 머물렸다. 그만 이곳에서 깊은 구덩이에 빠져 버렸다. 그곳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사막 구덩이이었다. 모래 바람도 세찼다. 그곳은 좀 냄새나는 곳이었다. 항상 감성적이다 보니 평소 누구보다 나에게는 시험이 많았다. 감성적인 것은 백전백패인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 자아가 마음이 가는 대로 따랐으니 그것은 당연한 시련이었다. 


세상은 험난한 그 무엇으로 생각하면 세상은 바로 험난한 곳으로 변한다. 그런 곳에는 꿈이 없다. 무엇인가 찾아 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돌아온다는 소설의 한 구절을 보았다. 사막은 항상 모든 인간들을 시험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움직였다, 훌훌 다시 털고.  


오아시스를 보고 머물고 싶다는 것은 마음의 변덕이며 그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두려움은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며 또한 고통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다. 인간의 마음은 갈대와 같으나 그 마음이 부리는 술책과 꾀를 알면 결국 그대로의 마음을 받아 드릴 수 있다는 사실도 소설 연금술사를 읽고 알게 되었다.  


사막의 모래언덕은 바람따라 변하지만 사막은 항상 그 모습 그대로이다. 사막을 사랑하되 완전히 믿어서는 아니 된다. 사막은 항상 모든 사람을 시험하기 때문이다. 고국도 캐나다도 그렇다. 하물며 인생은 어떠하라.  내일에 대하여 점을 치지 말자. 만일 좋은 일이면 즐거우나 나쁜 것이면 일어나기 전부터 고통스러울 것이다. 오늘 현재만 생각하자는 것이다. 현재가 모이면 바로 인생이 아닌가. 그리고 마음이 속삭이는 것에 솔직해지고 만물의 언어를 이해하고 나를 도워주는 표지를 마음으로 알고 그리고  나아감이 어떠한가? 


"내 마음이 있는 곳에 내 보물이 있다, 마크툽." 이 언어로 나는 날개를 달았다, 마치 내가 납을 금으로 만드는 인생의 연금술사가 된 것처럼. 아니어도 이제는 더 이상 부서질 것도 없다.  며칠 후면 아마도 나는 가방 한 개를 안고 태평양 상공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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