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를 읽고
5,000년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았다. 한반도에서는 고조선 시대 이후 삼국으로 분열되었고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물리치고 한반도를 통일하였며, 그 후 고려 조선으로 바통을 이으면서 여러 번 왜적의 침입을 받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굳건히 한반도에서 우리를 지켰다. 근대에 와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아픔과 동족 전쟁을 겪었지만 우리는 다시 대한민국을 건설하였다. 이제 우리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번영을 누리면서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반면 반만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많은 제국과 나라들이 외침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외침에 항상 철두철미하게 대비를 해 왔던 결과일까? 그래서 우리는 끈질기게 잘 유지되어 왔을까?
우리가 사는 이곳의 지리 환경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한반도는 중국 대륙의 북동에서부터 연결되어 남동쪽 태평양으로 길게 뻗은 반도이다. 그리고 이 반도는 대부분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도의 북쪽일수록 산맥은 험하다. 길이 아닌 곳은 사람뿐만 아니라 말도 다니기에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누군가 이 반도를 침략하면 우리는 저항하다가 여이치 않으면 산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다. 산에는 풍부한 물과 최소한 먹을거리는 있었다. 최소한 살아남을 수는 있었던 것이다.
반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마저 뚜렷하다. 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매섭게 춥다. 침략자들은 이 반도의 겨울을 나면서 주둔하기는 매우 어렵다. 본국의 깊숙한 대륙까지 돌아가야 하는 데 잘못하다가는 돌아가다가 추워서 혹은 굶어서 죽는다. 우리는 산에 숨어서 장기적으로 견디고 견디면 결국 적군은 퇴각하게 되는 것이다. 게릴라전은 이 반도에서는 최고의 전술이다. 그 옛날 만주에 살았던 여진족과 거란족이 따뜻한 계절에 몇 개월을 보내며 힘들게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한반도를 침략하였다. 그러나 되돌아가는 여정은 더 고달팠다.
설령 침략자가 한반도를 점령은 하였다 하더라도 조공을 받는다는 약속을 받고는 되돌아가야만 했다. 여기 반도는 그들이 보기에는 대륙에서 떨어진 외진 곳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가 조공의 약속을 어겼다 하더라도 대륙에서 쉬이 다시 침공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시 대대적인 준비를 하고 먼 길을 나서야 했고 가 본들 저항은 컸다. 설령 많은 피해를 무렵 쓰고 이겼다 하더라도 모두들 산으로 섬으로 도망가 숨어 버렸다. 한반도는 지리 환경적으로 천혜의 요새가 되었던 것이다.
한반도의 먼 북쪽에 사는 만주족들이 이러한데, 중국 본토에서 한반도를 침공한다는 것은 더 어려웠다. 중국 본토는 대륙 중앙이다. 대륙 중앙과 한반도는 황해가 가로막고 있다. 중국 제국인 한, 송, 명, 원이라는 나라가 한반도를 침공하기 위해서는 북쪽에 있는 만주로 북상한 후 다시 한반도로 남하하여야 한다. 만주국이 한반도를 침공할 때보다 더 멀다. 그래서 한반도 사람들은 그때그때 중국 대륙 제국을 섬기는 척하면서 독자적 나라로 지켜왔다. 거란족 여진족이 쳐들어왔을 때, 세계 최강의 몽고 제국이 쳐들어왔을 때도 한반도는 쑥대밭이 되었으나 결국 그들은 되돌아 갔고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땅과 우리의 생존을 지켰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리 민족의 남다른 특별함이 있었을까? 아니다. 나는 지리 환경적 요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한반도는 지리적 여건이 대륙과 판이하게 다르다. 한반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배로 황해를 건너든가, 아니면 굳이 북쪽으로 이동하여 다시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야 한다. 교류와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당연 가장 빠른 뱃길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대군을 이끌고 침략할 때는 오직 한 가지 멀고 힘든 육로를 이용해야만 했다. 침략자들은 대륙에서 먼 길을 지나 한반도에 들어서면 다시 첩첩산을 계속 넘어야 한반도 중심에 올 수가 있다. 여름에는 무더운 더위와 홍수를 겪어야 하고 그러다 조금 머물면 바로 매서운 겨울 추위가 기다린다.
반면 유럽과 아시아 대륙은 평지가 많고 기후가 좋아 사람과 말이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언제나 쉽게 사방으로 들락날락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아이니걸하게도 먹고 먹히는 침략 전쟁의 중심지가 되었다. 칭기즈 칸이 유럽, 남러시아, 남아시아 전역을 점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이점, 즉 말을 타고 쉽게 갈 수 있는 접근성과 기후 때문이었다. 몽골 제국이 제일 마지막으로 침략한 나라는 바로 한반도인 것도 대륙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반도라는 지리 환경적 요인 때문이었다.
재래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그의 저서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에서 인류는 <사회가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 때문에 각 대륙마다 다르게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의 책을 읽고 많은 교감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생각을 우리 한반도가 가지고 있는 지리 환경적 특별함에 대입해 보았다. 우리는 한민족의 특별한 생물학적 특별함 덕분에 생존하여 왔다고 하기 보다 지리환경적 요인 덕분에 오늘 우리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한 국가가 한 동안 주변 세력과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는 있으나 열강 사이에서 5,000년 동안 줄곧 계속 유지하기는 어렵다. 5,000년 동안 줄곧 전투적이고 방위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5,000년 생활이 곧 전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강의 몽골 제국도 쇠퇴했다. 생활 자체가 전투적인 유목 민족인데 말이다. 그와 반대로 한반도는 전쟁과 어울리지 않는 대표적인 농경 사회였다. 재래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생존되고 유지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지리 환경적 여건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우리는 대륙 침략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대륙으로부터 침략만 막으면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물과 산으로 막힌 굳건한 성에 사는 사람들이 굳이 성 밖으로 나서서 공략하지 않는 이유처럼 말이다. 티베트가 산맥 위에서 생존하고, 러시아가 한대의 북아시아에서 터전을 잡고, 일본이 섬에서 존재해 왔던 이유도 이와 같다.
나는 학교에서 세계 지리를 공부하였다. 그러나 세계 지리를 머리로만 알았다. 그 후 캐나다에 살아보고, 미국과 유럽을 여행해 보고 나서야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계절이 뚜렷함의 의미를 알게 되고, 왜 금수강산이라고 불렸는지도 알게 되었다. 6.25 전쟁의 전술과 지리산 게릴라전을 이해하게 되고, 한반도에는 한국형 전차를 도입해야 한다는 이유를 알게 되고, 하늘에서 비행기로 우리의 산을 쉽게 공격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폐쇄적인 북한이 무장을 하면서 큰소리로 자기 갈 길만 가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특히 재래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가 주장하는 "사회가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 때문에 각 대륙마다 다르게 발전했다" 이론을 접하고부터는 나의 생각은 명료해졌다. 우리는 요새 같은 한반도에 살아왔기 때문에 생존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는 과거의 이야기이다. 현재로 돌아와 보자. 이제는 그런 한반도의 지리환경적인 이점은 사라졌다. 비행기와 배가 옛적의 말의 신속성보다 훨씬 뛰어나다. 대륙에서 1시간이면 한반도에 오고 간다. 한반도 내에서도 1시간이면 전국 어디에도 왔다 갔다 한다. 그뿐인가. 인터넷과 무선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어 국가는 마치 옆집에 있는 것 같고 세계가 한 테이블에 마주 보고 있는 꼴이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태평양에서 한반도를 초토화시킬 수 있고, 미국 본토에서 미사일로 우리나라를 불바다로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전기와 통신을 교란시켜 한반도를 암흑의 세계로 만들 수도 있고 땅굴에 숨어도 땅 속까지 폭탄을 침투시켜 파괴할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이와 같은 사례를 경험했었다. 100여 년 전 바다로 일본이 우리 한바도를 침략하여 삼켰던 일이다. 총과 군함이 발전하면서 한반도의 지리 환경적 이점은 근대 제국 시절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5000년 동안 우리를 지켜준 한반도의 지리 환경적 이점은 완전히 사라졌다. 스스로 그리고 매일 줄곧 우리가 우리를 지켜 나가지 않으면 언제 유린당할지 모른다. 우리를 지켜준 한반도라는 단단한 성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주변 열강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나라는 매우 작고 약체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국가라는 것은 어차피 뺏고 뺏기는 관계이다. 오직 적자생존의 법칙만 존재한다. 대륙과 해양의 길목인 한반도에 군침을 흘리는 주변 열강의 힘겨루기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매일매일 전투와 같은 생활을 해야 할까. 자유 복지 국가로 나아가는 현실이다. 일본으로부터 행방 후 우리는 똘똘 뭉쳐 잘 살아 보자고 열심히 일하였고 이제 좀 살만 하니 궁핍의 과거를 잊어가고 있다. 또한 풍족함을 맛보고 나니 많은 사람들은 세상을 추상적으로 생각한다. 부국 강성을 고집했던 과거를 부정하기도 한다. 특히 젊은 세대는 더욱 그렇다. 부모가 만들어 놓은 제물로 즐기자 라는 풍조가 대세이다. 좌측에 선 사람들은 더 특별하다. 정치인들은 나라보다 포퓰리즘에 더 열심이다. 촛불이 대통령이다는 말이 국민을 현혹시킨다. 오늘도 시위를 하고 촛불을 든다. 풍요가 오자마자 우리는 파티를 하고 삼페인을 트털이고 있는 것이다. 주변 열강들은 부국 강성을 위하여 더더욱 중앙집권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문득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뉴스가 떠오른다. 작은 나라 작은 민족이 한반도에서 이제는, 태초부터 우리의 안위를 지켜준 한반도라는 지리 환경적인 이점이 사라지면서 비행기와 배 그리고 인터넷으로 세상은 확 열려 버렸는데, 우리는 과연 우리의 영원한 안존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물음에서 북한의 핵정책이 돋보인다. 미국을 비롯하여 서방의 강력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을 마음대로 쏠 수 있는 능력, 이것이야 말로 우리를 영원히 지켜주는 것이다 라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준 한반도의 지리 환경적 이점이 이미 사라졌음을 깨닫고, 그 대신 최고의 파괴력이 우리를 영원히 지켜준다는 핵의 막강한 물리적 이점을 북한 스스로 창조하려는 것으로 나는 보았다. 영원히 살아남아야겠다는 몸부림이며 그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다. 이는 비굴하게 풍족스럽게 살다가 침공에 의해 한 순간에 멸망하는 것보다 천배 만배 나을 수도 있다. 과거 시절에는 그렇게 살았어도 한반도가 지켜주었다. 이제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먼 훗날 세계가 재편되고 난 뒤에는 살아남은 국가가 더 현명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