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per Vessel with 'Dancing Krisha'
힌두교에는 3개의 큰 신(삼주신, Trimurti)이 있지요. Brahma, Vishnu, Shiva가 그것입니다. 브라하마는 창조의 신으로 5세기 이전까지 인도에서 전통 브라하마 교의 최고의 신이었습니다. 비슈누는 유지의 신으로 5-6세기 이후 힌두교 시대에서 시바와 함께 최고의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시바는 파괴의 신입니다. 삼주신의 하나인 Vishnu에는 10 화신(Ten Avatars of Vishnu)이 있지요.
1 Matsya : 큰 물고기, 물고기로부터 홍수 이야기를 미리 듣고 산으로 피했다.
2 Kurma : 거북이, 홍수 때 거북이가 되어 바다 밑에서 산과 대지를 지탱했다.
3 Varaha : 멧돼지, 땅이 바다로 침몰할 때 멧돼지가 되어 이빨로 물고 대지를 지탱했다.
4 Narasimha : 반인간 반사자, 악마를 퇴치했다.
5 Vamana : 난쟁이, 우주 삼계를 창조했다.
6 Parasrama : 용사, 도끼를 휘두르고 교만한 왕족을 넘어뜨리고 브라만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7 Rama : 구원의 영웅, 최고의 신으로 간주되었다.
8 Krishna : 피리를 부는 목가의 주인공, 쾌활한 아이, 혹은 활달하고 호색적인 목동으로 묘사되었다. 인도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가 높다.
9 Buddha : 불교의 개조, 부다가 되어 악마를 파멸시켰다. 불교에서 왔다.
10 Kalki : 불칼을 들고 백마를 타고 나타나는 미래의 화신, 즉 미래의 구세주이다.
말머리가 너무 길었나요? 다름 아니라 크리슈나를 설명하기 위해서 구절구절 늘어놓았습니다. 참으로 인도에는 신 종류가 많습니다. 삼주신 중 비슈누에만 10 신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불교의 부다를 그들의 신으로 만든 것을 보면 그들의 다양성과 친근성은 알아줄만합니다.
저는 10 신 가운데 유독 여덟 번 째의 신 Krishna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열렬히 사랑합니다. 크리슈나를 알기 전에는 저는 부다만 알고 있었지요. 근엄하고 인자하고 자애합니다. 그 앞에 나 자신을 내려놓고 108배를 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미술관에서 Dancing Krishna(춤추는 크리슈나)를 보고는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한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10년을 한결같이 사랑한 여인을 버리고 첫눈에 반한 여인에게 내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던져버린 것이지요. 내 신을 부다에서 크리슈나로 바꿔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내내 춤추는 크리슈나는 내 가슴에 머물렸습니다. “나도 그렇게 되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하였던 모양이지요. 아마도 가부좌 자세로 명상에 잠긴 붓다보다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고 있는 크리슈나가 더 매력적으로 저에게 다가왔나 봅니다. 어쨋던 배신입니다. 불교에서 dancing Krishna를 부처의 하나로 모시면 나의 배신이 승화되겠죠. 부처의 포용을 기대해 봅니다.
붓다는 좀 인위적입니다. 치장을 하고 권위적으로 우리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슈나는 진정 자연스럽습니다. 누가 보든 말 든 그냥 추고 있습니다. 명상을 하고 있는 붓다입니다. 크리슈나는 춤을 추고 있습니다. 서로 둘은 많이 달라 보이지만 각각 다른 방법으로 최고의 경지에 올라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방법으로 해탈이라는 궁극 목적에 도달한다고 생각됩니다. 둘 다 인도에서는 유명한 신입니다. 지금은 크리슈나가 더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모양입니다.
무아에서 붓다는 자애롭게 앉아 있고 크리슈나는 신이 나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크리슈나가 더 마음에 다가옵니다. 보니 막 추고 싶거든요. 인생의 춤을… 내가 크리슈나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크리슈나는 초원에서 피리를 붑니다. 여인들이 그를 보고 황홀경에 빠집니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들과 놉니다. 초원에서 춤을 추고 피리를 불며 무아가 되다. 그리고 사랑하다.” 이것, 얼마나 좋습니까? 크리슈나는 그중에서 Radha를 가장 사랑했습니다. 인간의 이야기가 신들의 이야기가 됩니다. 신도 사람과 비슷해야 공감이 가는 모양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디자인이 생각났습니다.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그냥 동판을 자르고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매혹적인 형태의 잔과 뚜껑이 탄생되었습니다. 뚜껑에 빙빙 도는 Dancing Krishna를 그려 넣었습니다. 작업을 할 때만큼은 나도 인생의 춤, 즉 무아에 있었습니다. 나는 맨 정신에 춤 추기가 어려웠습니다. 술 한잔하면 춤을 잘 추었습니다. 그것은 술에 의존한 망각이었습니다. 현실에 타협한 맹종이었습니다.
맨 정신에 춤을 추고 싶었습니다. 맨 정신에 인생을 추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뜸 한뜸 동판에 그것을 새겼습니다. 그냥 새겼습니다. 나는 이 작업을 할 동안만은 정말 진정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Dancing Krishna처럼. 내 삶 모두를 이렇게 춤추며 살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이미 부처인걸,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천상의 세계에 기대고 싶지만 오늘을 내일로 미루는 겁쟁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춤추는 "크리슈나"처럼 춤추는 "나"이고 싶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