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때 나
금요일 석양이 질 때면 서울과 속초를 오가며 생활하던 때가 떠오른다. 금요일 저녁 6시 40분 속초행 금강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양양고속도로를 달리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통보를 받자마자 남편과 나는 속초로 이사를 강행했다. 더 이상 돈에 끌려 다니다 삶을 망쳐버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곧 끝날 것 같았던 내 프로젝트는 도무지 끝이 나지 않았다. 10년 넘게 일한 회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내가 시작한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감, 이 두 가지가 내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매일 한 줌의 약을 삼키며 비틀비틀 간신히 버텼다.
꽉 막힌 올림픽도로를 느리게 주행하던 버스는 남양주 톨게이트를 지나자마자 쌩쌩 달리기 시작했다. 그랬지. 내게도 이처럼 막힘 없이 쌩쌩 달리던 때가 있었지. 모두가 잠든 버스 안에서 나는 혼자 깨어 생각에 잠겼다.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했지. 일터에서 때론 집안에서. 그러다 드디어 내 몸에도 문제라는 게 생겨버렸지. 휴우. 신호등이 없는 고속도로처럼 쉬지 않고 참 열심히도 달려왔구나!
서울-양양고속도로엔 터널이 참 많았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그간 내가 겪은 일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이제 곧 인제-양양 터널이다. 터널 입구에는, 이 터널은 매우 기니 유의하라는 듯 총길이가 쓰여 있었다. 10,965m.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다고 했다. 10분 넘게 백두대간을 관통하고 있자니 끝이 보이지 않는 내 프로젝트가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니! 아무리 길고 답답한 터널일지라도 끝은 있으니 힘을 내야지. 나는 허리를 세우고 다시 앉아 기운을 차렸다.
버스는 어느새 동해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이제 20km만 더 가면 속초다. 버스의 우측 창 너머 저 멀리 어디쯤엔 바다가 있다.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집이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