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원의 강사가 되어 2주간을 숨 가쁘게 보내다 결국, 그만두었다.
이유는 이렇다.
내가 다녔던 학원은, 원어민 강사 1명에 한국인 강사 2명, 총 3명으로 운영되는 학원으로 학생수가 약 150명 정도 되었다.
원무를 보는 직원이 따로 없어서 한국인 강사들이 수업을 하는 틈틈히 원무 업무를 나눠서 수행해야 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학년과 수준에 따라 20여 개 반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많은 반을 3명이 나눠서 가르치다 보니, 밥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 구조였다.
나의 수업시간은 주당 22시간이었지만, 기타 다른 업무들(등하원 관리, 채점, 숙제 내기와 검사, 기타 학원 운영업무 등)이 많아서 일하는 시간은 주당 약 35~40시간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월급은 박봉.
시급으로 따져보면 최저시급을 약간 상위하는 수준. 초등부터 고등 학생까지 영어를 가르칠 정도의 수준을 연마했는데, 이건 좀 심하지만, 이 학원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암튼.
150명의 아이들의 이름을 외는 것은 꿈도 못 꾸었고(물론 2주 차가 되자 약 10여 명의 이름은 외웠고, 20여 명은 특징을 구분할 수 있었다.) 수업시간 보다 기타 잡다한 업무에 치여 정작 수업에는 신경을 쓸 수 없었다.
궁금증이 생겼다.
난 이렇게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나의 전임자는 이 많은 일은 어떻게 해낼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인수인계를 위해 전임자의 수업을 참관했을 때 즉각 알 수 있었다.
전임자의 수업은 형편없었다. 차라리 인강을 듣는 게 훨씬 나은 수준. 학생들은 혼자 풀어도 되는 문제집을 굳이 학원에 와서 풀고 강사는 문제를 읽고 답을 불러주었다. 설명이라곤 책의 글귀를 읽는 게 전부였고, 단 한 번도 "질문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종종 틀린 내용을 말하기도 했는데, 강사는 인지하지 못했고, 학생들 역시 그저 받아 적을 뿐이었다. 다행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받아적지도 않았다.
전임자는 그랬지만, 나는 그러지 않으면 되지! 다짐하며, 나도 수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힘들었다. 수업을 하고 나오자마자 학원으로 걸려온 전화에 응대를 해야 했고, 등하원 차편이 지체되거나 타야 하는 학생이 타지 않은 경우 일일이 학생 혹은 학부모에게 전화 또는 카톡을 날려야 했다. 좀 전에 끝난 수업의 숙제를 전용사이트에 올려줘야 했고, 다음 수업시간에 볼 시험지를 인쇄해야 했다.
이런 분주한 정신 상태로 다시 수업에 들어가면 '영어를 학생들 머리에 아주 쉽게 쏙쏙 넣어주리라' 다짐했던 나의 마음은 스르륵 무너졌다.
물론 수업 준비는 미리 하거나 수업이 모두 끝난 후 하면 된다. 그러나 수업은 밤 9시가 넘어서 끝났다. 그리고 기타 다른 할 일들(아이들이 제출한 학습지를 채점하고, 시험지를 채점하고, 전용 학습노트를 만들고, 학부모에게 보낼 문서들을 만들고 등)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내 시급은 1만원을 깨고 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생각했다.
이러다 나도 곧 전임자처럼 되겠구나!
학생들이 불쌍했다.
월 25~30만 원에 주 4~5시간씩 공부할 수 있으니, 학부모 입장에서는 꽤 경제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에 관심이 없거나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강사들은 그들을 수업에 참여시킬 수 없았다. 그들을 참여시켰다가는 진도를 뺄 수 없고, 괜히 수업을 지체시키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학생들은 인강을 듣는 게 훨씬 저렴하고 도움이 많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학원이 인강이 해주지 않는 것들을 해주긴 한다. 매일 시험을 치고, 숙제를 내고, 답안지를 뺐었기에 채점까지 해준다. 채점을 해서 점수가 좋지 않으면 남아서 공부를 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실수로 똑같은 시험을 2번 보게 한 적이 있는데, 결과는 처음 본 시험과 같았다. 시험을 보고 나머지 공부를 시켰지만 공부는 전혀 되지 않은 거다.
당연하다. 애들은 스스로 공부를 하지 않고, 그저 학원에 다녀왔다는 그 사실로만 위안을 삼기 때문이다. 학부모도 같은 마음일 거다.
차라리 학생의 수준에 맞게 진행하는 1:1 과외가 낫지 않을까?물론 비용은 학원보다 비쌀 거다.
어쩌면 현재의 학원 방식에 잘 맞는 아이들도 있을 거다.
내가 일했던 학원은 원어민 선생이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원어민 선생님 덕분에 학생들이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덜한 건 확실히 느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원어민 선생님의 역할을 십분 활용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이상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학원이라는 시스템을 슬쩍 본 나의 체험기다.
모든 영어학원이 이렇지는 않을 거다.
다만, 혹시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낼까 생각 중인 학부모들은 학원의 수업을 꼭 참관해 보길 바란다. 반드시 그러길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