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내가 사지 않은 물건들이
있다.
그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다 얻은 것들
까실까실 차렵이불
무거운 걸 싫어했던 시아버지가
이불 2개를 겹쳐 덮던 것
남편과 나, 한 채씩
블랙 앤 그레이 등산모자
사방에 달린 챙의 기럭지가
어쩜 그리도 내게 딱 맞는지
유난히 따가운 2024년 햇빛
선블록 없어도 안심
아빠, 땡큐~
어둑해지는 책 읽는 눈
시아버지가 남긴 돋보기를 걸치고
책 읽다 잠 오면 손 뻗어
야트막하고 매끈한 베개를 집어
무거운 머리를 받친다.
내가 하지 못한
아빠의 마지막 숨결을 지켜낸
그걸 베면 아주 잠시
꿈 없는 잠에 빠진다.
그리고 또
우산, 목도리, 로션, 가방, 지갑...
사놓곤 아끼다 써보지 못한
라벨도 떼내지 않은
양말, 바지, 그리고 또...
망인의 유품을 꺼려
모조리 태워 없애는 자도
있다지만.
우산 없이 걷게 될 나를 걱정해
내리는 비를 멈추게도 하는
이제는 별이 된
나의 수호천사
그들의 물건은
창과 방패가 되어
고된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내겠지.
두려워 마라
괜찮다 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