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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캔두 Nov 12. 2020

요리나 블로그를 시작하면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f. 줄리앤줄리아(Julie&Julia)

 사실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굉장히 엉뚱하다.

 친구 집들이에 초대받아갔는데 친구가 줄리앤줄리아 영화에 나오는 요리를 만들어줬다. 그전까지는 이 영화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다는 부끄러운 사실. 친구가 '와인크림닭(찾아보니 정식 명칭은 Poulet au Porto, Rost Chicken Steeped with Port Whine, Cream, Mushrooms)'을 만들어줬는데 너무 맛있어서 여러 번 감탄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영화에 나왔던 요리라면서 요리법을 소개하는 유튜브 링크를 보내줬다. 대체 무슨 영화길래 사람들이 영화에 나오는 요리를 따라 할까 단순한 호기심에 영화를 찾아봤는데 결과는 대성공!


 만약 이런 계기가 없었다면 이 영화 포스터나 줄거리만 보고 내 취향 아니라면서 평생 안 봤을 텐데 친구 덕분에 운 좋게도 좋은 영화를 하나 더 볼 수 있게 되었다.

 

줄리앤줄리아에서 줄리가 와인크림닭을 요리하는 장면

 다시 봐도 군침도는 와인크림닭 사진.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해서 나도 직접 한 번 해 먹어보려고 한다.

 

 이제 먹는 얘기 그만하고 원래 글을 쓰기 시작한 목적인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는 두 여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실존했던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와 그녀를 매우 존경해서 그녀의 요리를 따라 만들며 블로그에 기록한 줄리. 감독은 그들이 살고 있던 파리와 뉴욕이라는 서로 다른 도시, 그리고 서로 다른 시간을 아주 자연스럽게 교차하면서 두 매력적인 여성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친다.

 특히 줄리아를 연기한 메릴 스트립은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내 뇌리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의 모습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었는데 이제는 줄리아 차일드를 연기한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메릴 스트립이 될 것 같다. 줄리아의 특유의 억양, 큰 키 등을 과하지 않으면서도 유쾌하게 잘 표현했다고 느꼈다.


 영화는 처음에 줄리아와 그녀의 남편 폴이 파리에 도착하는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폴은 대사관에서 일하기 때문에 근무지 이동이 잦은 편이다. 줄리아는 본인의 직장을 그만둔 후 파리에 남편과 같이 왔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던 요리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녀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재능이 없다고 또 여자라고 무시당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근성으로 졸업을 해낸 것과, 요리책을 출판하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지만 결국 출판해낸 것을 보면서 어떤 일을 완수하는 데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요즘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물은 100도씨에서 끓는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포기하는 때가 98도씨, 99도씨라고 하는 이야기이다. 조금만 더 하면 물을 끓일 수 있는데 그 직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

 

 평소에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가 어떤 것이 되었든 어떤 하나에 미쳐있는 덕후들이다. 오타쿠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지만 어떤 하나에 미쳐서 한 분야의 준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 아닌가. 나는 열정이 부족해서 그런지 이것도 정도껏 좋고, 저것도 정도껏 좋은 그런 상태라 어느 하나에 미쳐서 깊게 파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줄리아는 정말 요리에 미쳐서 항상 요리만을 생각하는데 저런 사람에게 무엇을 하기 좋은 나이라는 게 뭐가 중요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결혼도 늦었고 요리도, 책 쓰기도 늦게 시작한 것으로 영화에서 그리고 있음). 그리고 그녀는 요리를 통해 그녀의 인생도 바꾸었다. 무료한 일상에 요리를 배우고 레시피를 개발하면서 스스로의 자존감도 높이고 아이를 가지지 못했던 상실감을 채운 게 아닐까.


 또 다른 주인공인 줄리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원래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정부 기관에 취직을 했다. 민원을 처리하는 일을 담당하는데 진상 민원인들을 상대하느라 항상 지치고, 30살이 됐는데 나만 빼고 친구들은 다 잘 나가는 것 같다는 자격지심도 있다. 너무나 평범한 우리 주변의 인물이다. 그래서 나는 줄리아 보다는 줄리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작가가 되고 싶기는 하지만 출판은 뭐 아무나 하나. 그런 줄리에게 남편 에릭은 블로그를 추천한다. 블로그는 출판사가 없어도 작가가 될 수 있으니까. 사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브런치를 많이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누구나 본인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은 욕망이 있을 테고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블로그 주제를 고민하던 줄리는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에 나와있는 524개의 요리를 365일 동안 다 만들어보는 도전을 시작한다. 줄리아 차일드도 좋아하고 요리도 좋아하는 그녀에게 딱 맞는 주제가 아니었을까.


 이 부분에서 블로그나 브런치 글을 올리면서 남들이 좋아할 것 같은 이야기, 남들이 많이 볼 것 같은 이야기를 써야 된다고 생각했었던 스스로를 돌아봤다. 물론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올려야 처음에는 조회수가 높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관심도 없는 화장품이라든지, 아이돌이라든지 이런 걸 올린다고 진정한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파워블로거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생각하는 작가는 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처음에 블로그나 브런치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줄리처럼 지친 나의 일상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은 해놓고 방치만 해놨었는데 이번에 줄리앤줄리아를 보면서 다시 한번 꾸준히 글을 써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전에는 내가 글을 올렸는데 조회수가 0이면 어떡하지? 막연한 고민도 했었지만 아무도 내 글을 안 읽으면 어떤가.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줄리의 인생은 블로그를 쓰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블로그를 기점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를 받고, 신문사와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1년 동안 524개의 레시피를 올리는 그 쉽지만 어려운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작은 성취를 해낸 사람은 큰 성취도 해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운다. 오늘 나의 작은 성취는 줄리앤줄리아를 보고 느낀 감정과 감동을 이 글에 녹여내 완성한 것으로 정합니다. 오늘 하루 마무리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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