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enos Aires와 Happy Together
Buenos Aires. ‘좋은 공기’라는 뜻을 가진 이 아르헨티나의 수도는 ‘남미의 파리’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무려 9번의 디폴트를 맞은 지금 아르헨티나의 상황을 보면 믿기 힘들겠지만 아르헨티나는 한 때 세계 경제 10위권 정도로 부강했던 나라였다. 그에 걸맞게,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형성한 이 도시는 우리가 남미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그런 도시와는 규모나 느낌이 다르다. 중남미 배낭여행 당시 다녀온 도시 중에서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제일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도시가 바로 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였다. 넓은 목초지에서 기른 소에서 나온 맛있는 소고기, 이탈리아인들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피자, 파스타, 젤라토와 정열적인 탱고. 그리고 특유의 여유롭고 자유로운 문화까지. 당신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것은 꽤나 많다.
해외를 여행하다 보면 다른 나라들도 부러운 것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부럽다 싶은 건 선조들의 문화유산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예를 들면 페루, 그리스 등)와 넓은 땅덩이에서 나오는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나라들(미국, 아르헨티나 등)이다. 둘 중에도 풍부한 자원을 가진 것은 한국과 정반대 되는 점이라 특히 부러운 점이다. 물론 그 많은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다른 문제이긴 하다. 제대로 활용 못해서 아르헨티나가 지금 이 지경까지 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긴 해도 가진 게 인적 자원밖에 없다면서 안 그래도 충분히 힘들게 사는 청춘들에게 노오력이 부족하다 탓하는 사람들은 없지 않을까.
물론 <해피투게더>의 아휘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청춘이다. 아휘와 보영은 홍콩에서 힘들게 돈을 모아 지구 반대편의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왔다. 그들의 사랑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그나마 비교적 자유로운 이 곳에서 마음껏 사랑하기 위한 곳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선택했다. 이렇게 힘들게 온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도 아휘는 쉬지 않고 노력한다. 보영과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달라도 너무 달랐던 둘은, 싸우고 다시 만나고 싸우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한다. 책임감이 강하고 이성적인 아휘와 자유분방하고 충동적인 보영은 서로 너무 사랑하지만, 서로 너무 사랑하기에 서로를 잃는다. 둘은 탱고를 추며 사랑을 나누고, 다투고, 함께 하지만 결국 첫 목적지였던 이과수 폭포까지는 같이 가지 못한다. 함께 할 수 있는 행복을 찾아서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왔음에도 그들은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더라도 함께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놓아주는 게 맞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들이 홍콩에 남아있었으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홍콩에서는 행복하지 않았은데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장소만 옮긴다고 행복해질 수 있지 않았을 것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이과수 가는 길 등 이국적인 풍광을 배경으로 광둥어로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는 것 자체로도 이 영화는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가 되지 않는 보영과 아휘의 관계를 받아들이게 만든, 이제는 볼 수 없는 장국영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해피투게더>는 누구에게나 망설임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영화이다. 왕가위 감독의 다른 영화 <화양연화>는 영화도 물론 명작이지만 그 단어의 뜻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단어 자체를 좋아하는데, <해피투게더>의 원래 제목도 그의 수많은 다른 작품들처럼 네 글자의 '춘광사설'이었다고 한다. 직역하면 '잠깐 비치는 봄 햇살'이라는 뜻. '보영과 아휘가 서로에게 잠깐 비치는 봄 햇살 같이 따뜻하지만 짧게 머물다 간 사람이었겠구나, 사랑이었겠구나' 생각해본다.
아휘가 보영이 아무 데도 나가지 못하게 담배를 한가득 사다 놓는 장면은 정말 이 영화의 압권이다. 보영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마음에 전처럼 떠날까 봐 불안해서 여권도 숨기고 아무 데도 못 나가게 하는 아휘. 그리고 이런 상황을 너무 답답해하지만 결국 나중에는 본인도 담배를 한가득 사 오고 마는 보영.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둘 다 너무 서툴러서 서로를 떠나게 된 건 아닐까. 결국 함께하지 못하는 그리움에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보영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랑에 관한 영화 중 제일 슬픈 영화 <해피투게더>는 그들의 행복을 마음 깊이 빌게 만든다. 행복해라, 이 세상의 모든 아휘와 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