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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캔두 Dec 13. 2020

과연 짐승이라 불려야 하는 쪽은 누구인가

이과수(Iguazu)와 미션(Mission)

 이과수 폭포를 가본, 아니 한 번이라도 사진을 찾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다들 이과수의 웅장하고 경이로운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이아가라 폭포,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꼽히는 이과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이렇게 세 나라의 국경에 걸쳐 위치하고 있다. 각 방향에서 보는 폭포의 광경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이과수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보통 다들 국경을 넘나들며 어느 한쪽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나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양쪽을 다니며 이과수의 모습을 눈에 담았는데 매우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찍은 이과수의 모습

 원주민인 과라니족 언어로 'igu'는 물, 'azu'는 장대하다는 뜻으로 말 그대로 엄청 큰 물이라는 뜻이다. 이과수의 장대함을 설명하기 위한 일화 중 하나로 항상 등장하는 게 루스벨트 대통령 부인이 이과수를 보고 'Oh, Poor Niagara!'라고 외쳤다는 이야기인데, 나름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나이아가라 폭포가 불쌍해 보일 정도로 이과수 폭포가 대단하다는 뜻이다. 아마 루스벨트 대통령 부인은 나이아가라를 먼저 가보고 이과수를 나중에 갔나 본데 나는 반대로 이과수 폭포를 먼저 보고 나중에 나이아가라 폭포를 갔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며 감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드러내 놓고 표현은 못했지만 '에계, 이게 다야?'라는 생각이 드는 수준이었다.  


 남미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이과수 폭포에 가기 전까지도 수많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고 깊이 감탄을 했었지만, 이과수는 정말 차원이 다른 경지였다. 이과수 폭포의 장대함과 아름다움을 훌륭하게 설명하고 표현하기에는 내 글솜씨가 부족한 것이 속상할 따름이다.


 산이나 호수, 폭포가 다 거기서 거기일 거라고 생각한 오만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든 이과수. 신이 한 땀 한 땀 빚었다는 표현이 절로 나오는 그곳을 배경으로 한 1986년 영화 <미션>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개척이 한창이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과수 원주민 과라니족에게 다가갔던 예수회 신부들을 중심으로 노예상과 주교, 식민지에 파견된 정복국가의 귀족들이 등장하여 그 시대상을 짐작하게 해 준다. 유럽 사람들은 원주민들을 그들의 교화해야 할 미개한 대상으로 본다. 실제로 영화에서 노예상은 원주민들을 가리키며 거리낌 없이 동물이라는 단어를 쓴다. 하지만 오히려 더 잔인하고 인간성을 상실한 것은 그 당시의 유럽인들이다. 낯선 침입자들을 편견 없이 받아들인 원주민들과 그 원주민들을 짐승처럼 다루며 돈을 받고 거래한 것도 모자라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원주민들을 몰살시킨 유럽인들 중에서 짐승이라 불려야 하는 쪽은 과연 어느 쪽인지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다.

 

 개봉한 지 시간이 꽤 지난 영화인만큼 <미션>은 지금은 대배우가 된 로버트 드 니로, 제레미 아이언스, 리암 니슨의 젊은 시절 모습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로버트 드 니로가 원래는 노예상이었다가 참회하고 예수회에 들어가는 로드리고 역할을 맡았는데 이 로드리고의 서사가 의미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 자신의 죄를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원주민 마을로 가는데 그 과정에서 과라니족에게 용서를 받고 짐을 폭포로 떨어트려버린다. 또한 그는 원주민을 잡던 칼로 원주민을 구하기 위해 싸운다. 로드리고는 처음에는 짐승에 가까운 삶을 살았었지만, 반성을 통해 진정한 인간이 되었다.

영화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한 편에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토 분쟁이 계속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토에서 추기경이 온다. 추기경이 둘러본 선교지는 신의 이념에도 부합하고 매우 훌륭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추기경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많은 고민을 하지만 결국 식민지 지배자의 손을 들어주고 과라니족을 쫓아내도록 결정하기에 이른다. 과라니족을 쫓아내기 위한 위협에 맞서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항하려는 로드리고와 폭력은 안된다는 가브리엘 사이에서 의견 차이가 발생하지만 그들 둘 다 끝까지 과라니족과 함께하며 최후를 맞는다. 서로의 마지막을 확인하면서 눈감는 모습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얼마 전 타계한 영화음악계의 거장 ‘엔리오 모리꼬네’의 가브리엘 오보에가 <미션>의 신비스러움과 신성함을 배가시켜준다. 영화는 안 봤어도 이 곡은 한 번씩은 들어봤을 텐데, 이 오보에를 연주를 통해서 과라니족이 선교사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고 감명을 주는 선율의 곡이다. 언어와 종교, 인종을 뛰어넘는 음악처럼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는 인류애를 발휘한 예수교 신부들은 진정한 인간성을 지닌 사람들이었지만, 그와 반대로 조금 다르다고 해서 같은 인간을 짐승으로 취급해버린 다른 이들은 인간으로 불려도 될지 의문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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