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나후아토(Guanajuato)와 코코(Coco)
이 영화 이야기하기만을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왜냐하면 직접 찍은 과나후아토 사진을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를 매우 재미있게 보기도 했다.
사실 나는 애니메이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코코>가 멕시코 죽은 자의 날에 관한 내용이 아니었으면 아마 이 영화를 쳐다보지도 않았을 터이다. 대학생 때 교환학생으로 멕시코에서 보냈던 1년의 시간을 아직도 매우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에 <코코>도 보기로 결정을 한 것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의 시청 완료 목록에 뜰 일은 없었을 듯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멕시코 특유의 정서와 문화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어서 멕시코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안 봤으면 후회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당연히 이와 별개로 <코코>는 멕시코에 대한 그리움 따위는 일절 없는 사람이라도 재밌게 볼 수 있을 만큼 재미있는 영화이긴 하다.
<코코>는 멕시코의 가장 큰 기념일 중에 하나인 죽은 자의 날(혹은 망자의 날)을 배경으로 한다. 죽은 자의 날(스페인어: El Dia de los Muertos)은 우리나라 문화랑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제사를 지내는 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죽은 가족이나 친구들을 기리면서 그들의 명복을 비는 날이다. 한국 사람들만큼이나, 혹은 한국 사람들보다도 더 멕시코 사람들도 가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만 한국의 제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처럼 엄숙한 분위기라기보다는 즐거운 축제의 날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핼러윈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호박이 핼러윈의 상징이라면 죽은 자의 날의 상징은 해골이다. 이 귀여운 해골은 멕시코의 대표 상징으로도 꼽혀서, 해골 테킬라부터 시작해서 해골 모양이거나 해골 무늬가 들어가 있는 멕시코 기념품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코코> 영화에서 등장하는 사후세계의 캐릭터들도 이 해골 얼굴을 하고 나온다!
주인공 미겔은 노래를 너무 좋아하고 가수가 되고 싶은 꿈도 있지만, 온 가족의 맹렬한 반대로 오디션에 참가하는 것마저 쉽지 않다. 오래 전 미겔의 고조할아버지가 노래를 하겠다고 가족을 뒤로하고 집을 떠난 과거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후 이 집에서는 노래의 노자도 꺼낼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흔적은 철저하게 지워졌다. 죽은 자의 날을 맞아 동네에서 열리는 노래대회에 참가하고 싶은 미겔은 고조할아버지로 추정되는 전설적인 가수 델라크루즈의 기타를 연주하고 죽은 자들이 모여있는 사후세계로 가게 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족의 축복을 받아야 하는데, 이왕이면 고조할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면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에 다른 가족들을 피해 본인을 델라크루즈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헥터와 함께 델라크루즈를 찾기 위한 길을 떠난다. 델라크루즈는 사후세계에서도 엄청 큰 집을 가지고 파티를 열며 생전의 부귀영화와 유명세를 여전히 누리고 있다. 이런 부귀영화와 유명세를 위해서 그는 가족을 버리고 떠났던 것일까? 그렇다면 고조할머니인 이멜다의 분노와 원망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미겔은 프리다 칼로의 도움을 받아 델라크루즈가 여는 파티에 잡입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델라크루즈에게 본인의 이름을 밝히며 축복을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아뿔싸. 델라크루즈는 고조할아버지가 아니었다. 미겔의 '찐' 고조할아버지는 델라크루즈가 아니라 헥터였고, 심지어 델라크루즈는 헥터의 노래와 목숨을 빼앗고 뒤통수를 친 나쁜 XX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이 다같이 힘을 모아 델라크루즈를 응징하는 모습에서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오해 때문에 사이가 멀어졌지만 오해를 풀고 모두가 함께 화해하는 스토리가 너무 전형적인 디즈니 가족 영화 같긴 해도 가족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시간이었다. 실제로 친구 중에 한 명은 아버지랑 싸우고 나면 <코코>에서 미겔의 증조할머니이자 헥터의 딸인 코코 할머니가 Papa?(아빠?) 부르는 부분만 다시 본다고 한다. (읭?)
하지만 나는 내용보다도 OST의 노래들이 좋았는데 과나후아토라는 아름다운 도시를 떠올리면 가족 모두가 음악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기에 충분한 도시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멕시코에 있었던 게 벌써 8~9년 전인데도 <코코>를 보면서 직접 보았던 과나후아토의 광경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1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을 멕시코에 있으면서 과나후아토를 2번이나 다녀왔다. 예를 들어 같은 영화를 두 번 보거나 똑같은 설명을 다시 하는 것 등 어떤 것을 반복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타입인데도 두 번이나 갔을 정도로 과나후아토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름다운 곳이다.
멕시코를 여행하다 보면 멕시코의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마리아치(스페인어: Mariachi)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마리아치는 여행자가 멕시코와 그 도시의 Vibe를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노란 조명 아래서 음악을 연주하는 마리아치를 만나면 누구나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의 음악에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그런 마리아치의 모습으로 노래하는 헥터를 보니 과나후아토 골목에서 보았던 마리아치의 모습이 떠올랐다. 노랗고 따스한 느낌의 조명과 이국적인 건물들 사이에서 마리아치의 ‘버스킹’을 들으면서 여행지의 밤을 보내는 것보다 로맨틱한 장면은 찾기 힘들다. <코코> 제작진 중 누가 과나후아토를 배경으로 하자고 아이디어를 냈는지는 몰라도 정말 탁월한 선택이라고 칭찬한다.
무역에 유리한 해안가도 아니고, 수도도 아닌데 뜬금없이 중부에 있는 작은 동네인 과나후아토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될 수 있었는지를 알고 나면 사실 마음이 아프기는 하다. 과나후아토는 주변의 산에서 매우 많은 은 매장량이 발견되면서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세계 최대의 은 생산지로 번영하게 되었던 것이다. 덕분에 경제적으로 부유했었기 때문에 작은 도시 크기에 비해 바로크 양식 등의 화려한 건축물들이 많다. 이 화려한 건축물들에 힘입어 과나후아토는 스페인 식민지 중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많은 은 매장량이 뜬금없는 위치에 있는 이 작은 도시가 번영하고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지만 아마 스페인 사람들이 은 광산을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과나후아토는 지금의 과나후아토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들이 스페인의 식민지였었기 때문에, 이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의 문화와 스페인의 문화가 섞여서 유럽의 웬만한 도시보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곳들이 많다. 하지만 그만큼 과나후아토처럼 가슴 아픈 배경을 가진 곳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남미 사람들은 특유의 흥과 느긋함으로 아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 모습이 한국과도 비슷하기에 더욱더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음악을 잘 모르더라도 자연스럽게 음악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도시, 과나후아토에 대한 이야기와 도시가 더 궁금하다면 나중에 꼭 직접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아 물론, 가기 전에 <코코>는 꼭 보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