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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캔두 Dec 27. 2020

의외의 곳에서 발견한 여성들의 연대

멕시코시티(Mexico City)와 로마(Roma)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Roma)>. 멕시코 배경 영화라고 들었는데 왜 제목이 <로마>인 거지? 그리고 Rome도 아니고 Roma? 넷플릭스에서 처음 영화를 찾아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그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채 일단 재생 버튼을 눌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증명해낸 <로마>.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로마>는 작품성이 뛰어날지는 몰라도 재미있는 영화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화면이 흑백인 데다가, 이야기의 전개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지지도 않는 탓이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남의 일기를 엿보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문외한이라 그 근거를 일일이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매우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이고 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감정과 생각의 폭을 넓고 깊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촬영기법과 화면이나 소품과 장면들의 메타포에 대해 분석한 많은 영상이 있다.)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1년을 잊지 못해 멕시코가 제2의 고향이라 말하고 다니는 만큼, 넷플릭스에서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새로 나왔다는데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얼마나 인정받는 감독인지,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어떤 상을 수상했는지, 그리고 이 영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로서 영화계에 어떤 의미를 던졌는지 등은 내게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들은 아니었다. 단순히 멕시코가 나온다고 해서 보기 시작한 이 영화는 예상보다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렸다는 이 영화는 1970년대의 멕시코시티로 우리를 데려간다. 멕시코에서 1970년대에 있었던 민주화 운동도 짧게 등장하긴 하지만 영화는 어떤 사회적 시대상보다는 한 가족의 이야기에 더 집중한다. 멕시코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보모 겸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인디오* 클레오와 그녀가 일하는 가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과장하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고 담담하게 따라가며 보여준다.

*인디오(Indio): 중남미의 원주민을 일컫는 말.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한 유럽인들이 인도인 줄 알고 인디안(Indian)으로 부른 것에서 유래해 스페인식으로 인디오가 됨. 


 클레오가 일하는 혹은 살고 있는 집에는 네 명의 아이들과 엄마, 아빠, 할머니, 그리고 클레오와 함께 일을 하는 아델라가 함께 지내고 있으며, 네 명의 아이들은 모두 클레오를 친엄마나 친누나처럼 따른다. 클레오가 차고를 청소하거나, 아이들의 음식을 챙겨주고 학교에 데려다주는 장면들처럼 딱히 특별해 보일 게 없는 장면들을 계속 보여주면서 영화는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어느 날 아이들의 아빠는 미국으로 장기 출장을 떠나고 집에는 할머니, 엄마, 아이들 그리고 클레오, 아델라만이 남는다. 아직 어린 아이들과 여자들만 남은 이 집에서 엄마 소피아는 이제 가장의 역할을 해야만 한다.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숨기고 있었지만 사실 아이들의 아빠는 출장을 간 게 아니라 외도로 다른 여자와 함께 살기 위해 집을 떠난 것이기 때문이다. 소피아는 이제 양육비도 보내주지 않는 아이들 아빠의 도움 없이 홀로 서야만 한다, 본인뿐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도. 소위 경단녀였던 그녀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클레오 또한 남자친구 페르민에게 큰 상처를 받는다. 사실 페르민은 임신 사실을 고백하자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도망가버리는, 남자친구라 부르기도 민망한 인간이다. 클레오는 임신 때문에 소피아에게 해고당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불러오는 배를 언제까지고 숨길 수 없기에 소피아에게 본인의 임신 소식을 사실대로 말한다. 그런데 클레오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소피아는 클레오를 꼭 안아주면서 병원 검진까지 예약해준다. 두 인물이 서로를 안아주는 이 장면은 도망가버린 구 남친(aka. 똥차)의 반응과 대비되면서 클레오와 소피아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줬다.  


 글 제목에 거창하고 건방지게도 여성연대라는 말을 붙였지만, 엄청 거창하게 무엇인가를 해야지만 여성들의 연대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여자들끼리 힘을 합치고 함께한다면 그게 여성연대가 아닐까. 그 이후에도 클레오와 소피아는 함께 병원에 가고, 휴가를 떠나고 시간을 보내며 힘겨운 시간들을 서로에게 의지하며 이겨낸다. 아빠+엄마+아이들, 이렇게 이루어진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만이 가족이 아니라 제도나 혈연으로 묶여있지 않아도 클레오, 소피아, 아이들은 이미 한 가족이었다. (feat. 한국의 <가족의 탄생>, 일본의 <어떤 가족> 등)


 아마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그의 유명세만큼 이 영화에도 많은 의미와 은유들을 숨겨놨을 것이다. 하다못해 영화의 처음과 끝에 나오는 옥상에 누워서 보는 비행기와 '죽은 척 놀이'만 해도 그에 대한 수많은 해석들이 있다. 그 많은 은유들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여성의 강인함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1년간 있으며 겪었던 멕시코가 그다지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이라거나 양성 평등의 환경이 제대로 갖춰진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다룬 이러한 영화가 나왔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외였다. 요즘도 그러하다면 50년 전에는 더 심했을 테니까 말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러한 상황들이 더 좋지 않아서 할 수 있는 한 남은 여성들끼리 힘을 합쳐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기 전 처음에 품었던 궁금증은 완벽하게 해결이 되었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주인공의 집이 있는 지역으로 ROMA 거리 표지판을 보여주기 때문에, '아 그런 이유로 영화 제목을 ROMA로 지었나 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ROMA 철자를 반대로 하면 스페인어로 사랑, AMOR가 된다. 그래, 이 영화는 AMOR,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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