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구원하는 것은 벌이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by 영찬

내가 읽은 책중에서 가장 두꺼운 책이었다.

내용이 난해하거나 어렵진 않지만 러시아 이름이 이렇게 어려운지는 미처 몰랐다.

한 사람당 이름이 3~4개로 불리니까 이게 지금 누구를 말하는 건지 너무 헷갈렸다. 심지어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데 2주에 한 번씩은 반납을 해야 하니까 빌릴 때마다 출판사가 달라서 로쟈를 로댜와 같이 다르게 번역되어 나오니까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죄와 벌을 읽는다면 다음과 같은 인물 관계도를 펼쳐놓고 읽는 것을 추천한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yunoom/223045121653

이름이 너무 헷갈려서 인물 간의 관계가 너무 어지럽다 보니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어도 어느 순간 눈을 감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불면증이 있다면 강추한다.

결국 나무위키와 유튜브 자료들을 좀 찾아보면서 내가 이해한 내용과 놓친 부분들을 퍼즐조각 맞추듯 그렇게 읽었다.


그럼에도 살인을 하는 장면, 살인직후 정신적 피폐, 포르피리의 압박수사로 느끼는 정신적인 압박, 소냐에게 고백하는 장면 등의 섬세한 감정묘사에 몇 장을 넘겼는지도 모르게 빠져들게 했다.



세상에는 범인과 비범인이 있다.
우선 범인의 특징은 그들에게 법률을 뛰어넘을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면, 비범인의 특징은 그들이 법률을 뛰어넘을 권리를 가졌다는 것이다. 비범인이 무조건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비범인은 모종의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의 관습, 도덕, 종교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양심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현실의 장애물을 뛰어넘을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 「죄와 벌」 라스콜니 코프의 논문 中
모든 인간은 평범하다. 인간은 또한 저마다의 신념을 가진다.
단 하나라도 절대적인 신념을 관철시키려는 의지는 옳든 그르든 인간을 평범함에서 분리시키려는 최초의 계기가 될 것이다. 신념이란 결국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다

모든 도덕적인 인간들은 법률아래 존재하니, 법률을 초월할 권리 같은 것은 없다. 오직 책임만이 뒤따르게 된다. 당신의 모든 행동이 진정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면 어떠한 악행이든 어떠한 선행이 든 간에 그 행위는 더 이상 '해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니며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게 된다.
만약 자신의 양심 앞에 한치의 후회 없이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심판대에 오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평범함을 초월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런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초인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신념과 의지에 대해 떠들면서도 고통에는 침묵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신념에 대한 찬양이기보다 경고의 선언에 가깝다.
당신이 신념에 대한 마땅한 책임을 진다면 당신은 비범함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발자국뿐, 당신은 절대로 평범함을 초월할 수 없다.

- 나의 사상에 대해 라스콜니코프처럼 논문처럼 한번 써본다면

라스콜니코프의 초인사상은 이 책의 주제이며 정체성 그 자체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은 초인사상과 나의 사상을 동시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작품이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원칙을 죽인 것이다! 나는 원칙을 죽였지만, 도저히 그것을 뛰어넘을 수가 없어서, 아직 이쪽에 남아 있는 것이다......
다만 죽일 줄만 알았을 뿐이다. 아니 그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라스콜니코프는 살인을 저지르고 열병에 시달린다. 당연하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보통사람에게는 감정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가 견딜 수 없던 것은 자신의 영웅적인 행보에 그렇지 못한 감정적인 동요가 이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자신이 비범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포르피리의 압박수사만 없으면 완전범죄였던 이 사건에서 후에 라스콜니코프는 소냐의 조언대로 자신의 죄를 자수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의 신념은 자수를 하고도, 책의 챕터가 끝나고도 꺾이지 않는다.


열병이 조금은 가라앉은 후 거리를 다니던 라스콜니코프는 마차에 치여 다친 마르멜라도프를 발견해 직접 간호하고 장례식과 그 비용을 처리해 주었는데, 마르멜라도프의 딸이었던 소냐는 감사의 뜻을 전하러 라스콜니코프의 집에 방문하게 된다. 그의 남루한 방을 본 소냐는 없는 형편에 자신들을 도와준 로쟈(라스콜니코프. 쓰다 보니 이름이 너무 길어......)에게 압도적인 고마움을 느낀다.

그녀는 부모에게 '지금 이 시대에 순결한 여자가 순결하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겠냐'며, '몸이란 것이 뭐가 중요하냐'며 매춘을 강요받았음에도 자신의 식솔들을 위해 매춘부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있는 것에 서 감사함을 느끼고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사랑은 그런 것이다.


그녀의 사랑은 괴로워하는 로쟈의 감정을 동하게 하였고 끝내 자수하게 만든다.

아니, 아니 지금 온 세상을 통틀어 당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
이미 오랫동안 맛보지 못한 감정이 파도처럼 그의 영혼 속으로 밀려 들어와 순식간에 영혼을 부드럽게 해 주었다. 그는 그 감정에 저항하지 않았다.


이 책의 모든 서사, 빌드업은 에필로그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자수는 정상참작이 되어 감형받은 채로 시베리아에서 유형살이를 하게 된다.


나의 행동이 무엇 때문에 그들에게 그토록 추악하게 여겨지는 것일까? 그것이 악행이기 때문에? '악행'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
그자들은 그 걸음을 견뎌 냈고 그랬기에 그들은 옳았던 반면 나는 견뎌내지 못했고 그랬기에 나는 스스로에게 그 걸음을 허용할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유형살이를 하면서도 자신은 비범한 사람이었으면 가져서는 안 될 감정들을 가진 것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한편 소냐도 그를 따라 시베리아에 가서 같이 생활했는데, 그녀는 같은 유형수들에게 거의 성모 마리아와 같은 존재였다. 로쟈는 사람들이 소냐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어느 날 그는 꿈을 꾸는데, 온 세상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상을 가지는 전염병이 퍼지며,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며 싸우는 끔찍한 미래에 대한 꿈이었다. 그가 식은땀을 흘리며 꿈에서 깨어난 후 로쟈는 소냐와 함께 형용할 수 없는 감정과 함께 눈물을 흘린다.


「죄와 벌」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복잡한 사상이나 신념 같은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사상에 사로잡힌 라스콜니코프를 구원한 것은 '인간성'이었다. 책은 사랑만이 세상을 부활시킬 수 있고 무한한 생명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아직 유형살이를 안 해봐서 그런가.. 할 생각도 없지만

나는 아직도, 그래도 신념이 중요하고 로쟈의 영웅관이 100%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포르피리가 내 글을 읽고 나를 의심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철학이나, 사상을 다루는 책을 읽으면 끝에 가서는 맨날 사랑타령으로 결론이 나곤 해서 식상하긴 한데, 질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나중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란 작품도 읽고 싶었는데 러시아어에 공포가 생겨서 아마 최소 몇 년은 못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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