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돌담길을 걷는 이유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by 영찬

연휴동안 할 거 없을 거 같아서 도서관 철학코너에서 만만한 길이의 인상 깊은 제목을 가진 책을 골라왔다. 오랜만에 읽은 철학서적이라 3번 정도 다시 읽은 것 같다. 다행히 긴 내용이 아니라 읽을만했던 것 같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 ou(없는)와 topos(장소)를 합친 단어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뜻하며 우리는 이것을 '이상향'이라고 부른다. 푸코는 현실에서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유토피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개념으로서 '헤테로토피아'를 제안한다. 헤테로토피아는 heteros(다른)와 topos(장소)를 합친 신조어이다.

가령, 아이들이 솜이불을 뭉게구름 삼아 퀸사이즈 하늘을 날아보기도 하고, 먼지 쌓인 다락방을 인디언텐트 삼아 캠핑할 때, 묘지, 극장, 박물관 같이 분명 현실에 존재하지만, 그 기능이 일반적과 다르게 작동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과학(작가는 분명 과학이라고 부르고 있다)이 '헤테로토피아'이다. 그리고 이 과학을 연구하는 것을 '헤테로토폴로지'라고 부르고 있다.


시대에 따라 기능이 변하는 경우

18세기 전까지 묘지는 굉장히 흔한 것이었다. 도시 중심의 교회 앞마당에 흔하게 분포해 있었고 아무런 거리낌 없었지만, 19세기 무신론이 퍼지며 해골을 개별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의미 부여하고 그것을 위해 도시 외곽에 따로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20여 년 전부터 유럽국가들은 사창가를 없애려고 노력하였지만, 인터넷이라는 더욱 촘촘한 네트워크로 대체되었다.


서로 다른 공간을 합치게 되는 경우

극장에서 뮤지컬을 감상하든, 영화를 보든 우리는 그 작품세계 속으로 빠져드는 경험을 한다.

정원을 가꾸거나 마당을 꾸미는 것은 자연, 숲을 나만의 공간에 실현한 것이다.


특정한 시간경험을 만들어내는 경우

박물관은 과거의 특정 시간대를 퍼즐조각처럼 떼어온 것이다. 도서관 역시 모든 시대의 축적된 글들을 모아놓은 장소로 우리는 그 시대의 경험을 체험할 수 있다.

2년 전에 마라톤을 뛴 적이 있다. 평소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 한중간을 뛰고 있음에 희열을 느낀 적이 있는데, 이런 경우 역시 헤테로토피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실공간을 비추거나 뒤집는 경우

푸코는 거울을 대표적인 헤테로토피아로 꼽았다.

1853년 오티스 사는 세계최초로 안전장치가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개발하였고, 고층빌딩에 설치되었다. 안정성은 확보되었지만, 당시 기술력으로 엘리베이터의 속도를 높이는 데는 불가능했다.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민원이 폭주하자, 엘리베이터에 거울을 달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민원은 귀신같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들은이야기로는 천장에 거울이 달린 모텔이 그렇게 재밌다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미셸 푸코는 왜 이런 개념을 제시했을까?

그는 공간의 배치 관점이 현대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젤먼저 떠오른 게 <셜록현준> 채널이다. 왜 서울에는 벤치가 별로 없는지, 왜 우리나라는 광장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는지 등 건축공학과 교수의 관점으로 사회를 이해하고 현상을 설명하는데 한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헤테로토피아 활용하기

앞서 말한 헤테로토피아를 이해했다면, 우리도 직접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를 들어 '나는 돌담길을 좋아한다. fps게임에서 적의 위치를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사주경계(360도 경계)를 하기 마련인데, 돌담길에 딱 붙어 다니면 최소한 3 방면만 경계하면 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안정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럴싸한 스토리텔링을 붙이면 나름대로 매력포인트가 된다.

외부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그 사람의 능력이니까..


나는 술 마시고 취하면 기분이 좋다는 게 이해가 안 됐었는데, 내가 모르는 술자리와 관련된 어떤 헤테로토피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이해에 한 발자국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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