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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rgundy Sep 17. 2020

[영화] <나비효과>(2004)와 살바도르 달리


오늘은 2004년 소개된 영화 <나비효과(The butterfly Effect)>에 나온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남자주인공인 에반(애쉬튼 커처)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치료의 일환으로 매일 일기를 씁니다. 대학생이 되고 난 뒤, 에반을 어린 시절 작성한 자신의 일기를 읽으면서 그때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처음과는 다른 결정을 하면 그 이후의 삶도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에반은 어린 시절 가깝게 지낸 세 친구 켈리(에이미 스마트), 토미(윌리암 리 스콧), 레니(엘든 헨슨) 사이에 벌어진 몇 가지 사건들을 시간을 돌려 더 나은 방식으로 수정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렇지만 그 시도는 하면 할수록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결말을 얻어내기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죠. 영화의 제목 ‘나비효과’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작은 변화가 이후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뜻이예요. 


살바도르 달리는 1904년 스페인 카탈루냐 동북부의 피게라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금기시됐던 것들에 도전하는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17세가 되던 해 마드리드의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답니다. 그에게 제 2의 고향은 파리였어요. 그곳에서 막스 에른스트, 르네 마그리트, 앙드레 부르통, 파블로 피카소 등 수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지냈어요. 그는 그가 살아있을 당시에도 최고의 그림값을 받으며 유복한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는 초현실주의(Surrealism)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초현실주의 작품은 합리주의에 반발하여 등장한 사조로, 무의식에 억제되어 있는 인간의 욕망을 다룹니다. 이성의 통제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회복하고, 인간 정신의 해방을 추구하는 사조라 할 수 있어요. 초현실주의자들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한 화폭에 그리기도 하고요, 두껍게 바른 물감을 긁어내는 그라타주 기법, 한면에 물감을 발라 접어서 찍어내는 데칼코마니 기법, 여러 참여자가 참여해 창작을 같이 하는 것, 무의식 상태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받아쓰는 자동기술법 등을 이용해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Oil on canvas 24.1x33cm 1931


영화에서는 에반의 대학교 기숙사 방 안에 달리의 작품 두 점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하나는 <기억의 영속 The Persistence of Memory>(1931)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잠(Le Semmeil)>(1937) 입니다.  <기억의 지속>은 뉴욕의 줄리앙 래비 갤러리(Julien Levy Gallery)에서 처음 소개된 작품으로 달리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어요. 그림의 뒤쪽에는 바다와 해안선 절벽이 있는데, 이것은 고향인 바닷가 마을을 모티프로 삼은 것입니다. 앞쪽에는 올리브 나무 가지에 축 늘어진 시계가 걸쳐져 있고, 그 앞에는 흐물거리는 치즈를 연상시키는 녹아내리는 또 다른 시계와 개미떼가 가득 모여있는 주황색 회중시계가 그려져 있어요. 흘러내리는 듯 보이는 이 시계들은 측정된 시간의 엄밀함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고, 개미로 뒤덮인 시계는 부패(decay)를 상징합니다. 달리는 딱딱함은 이성적인 것을, 부드러움은 무의식을 상징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시계들은 마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은 듯 합니다.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것은 인간의 형상을 간소화해서 그린 것으로, 달리의 여러 작품에서 등장합니다. 이것은 그 자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측면상의 감은 눈에는 긴 속눈썹이 있고,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살바도르 달리 <잠> Oil on canvas 51x78cm 1937


<잠>은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을 배경으로 합니다. 몸체는 생략된 채로 그려진 인간의 두상은 잠을 자고 있는 듯 축 늘어져 있는데요. 가느다란 버팀목으로 어렵게 지지되어 있어요. 마치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바닥에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보입니다. 우측 뒤편에는 성이, 좌측에는 강아지가 그려져 있는데요, 이 둘은 원근법을 이용해 아주 작게 묘사되어 있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주제인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정신분석학은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요, 그는 현실에서 용납되지 않는 욕망은 무의식에 보존되며, 그것은 대부분 꿈으로 표현된다고 했답니다. 


우리 모두에게 시간이란 돌이킬 수 없는 것이지만, 모두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과 같은 불가능한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내가 만약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 인생은 지금 더 나아져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러나 영화 <나비효과>는 애석하게도 그 대답에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줍니다. 하나를 얻게 되면, 어떤 것은 잃기 마련이고, 지금까지의 선택에 후회할 필요 없다고요. 시간 여행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에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던 달리의 작품이 기숙사 방에 걸려있는 것은 마치 필연처럼 느껴지시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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